사용자가 3000만명을 상회하는 휴대전화는 이제 생활필수품이라기보다 신체의 일부나 다름없는 아주 긴요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젊은 층은 웬만한 일을 휴대전화로 처리할 정도다. 틈만 나면 누군가와 통화하고 게임을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느라 연신 손가락으로 누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얼마나 엄지손가락으로 조작했으면 엄지세대란 말이 생겨났을까.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휴대전화를 잃어버리거나 집에 놔두고 밖에서 활동할 때 난감했던 적이 한 두 번은 있을 것이다. 혹시 누군가 중요한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 긴급히 연락할 일이 발생할 때 어떻게 할까 답답해하는 등 심리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그만큼 이제 휴대전화가 우리의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에서 휴대전화 도청문제가 불거지면서 기업은 물론 일반 휴대전화 사용자들까지 도청 노이로제에 걸려있다. 과연 내 휴대전화는 마음놓고 사용해도 되는지, 누군가가 통화내용을 엿듣고 있지 않는지 불안해하고 있다. 휴대전화를 두 대 이상 가진 사람이 많고 도청방지산업이 특수를 맞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휴대전화가 없거나 갖고 있어도 걱정이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도청공포가 확산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 그리 건강하지 못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현재 휴대전화의 도청가능 여부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의견과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공중망의 경우 도청이 전혀 불가능할 경우 어느 나라든 사용허가가 나지 않는다는 점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CDMA방식이 GSM방식에 비해 도청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이미 도청기가 개발돼 은밀히 거래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도청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마다 정기국회가 열릴 때면 야당측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고 시정을 촉구한다. 또 관련기관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할 뿐 시간만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감감무소식이다.
선진국에서도 도청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청사건으로 대통령의 사임까지 한 미국의 경우 국가안보국이 통신감청시스템인 에셜런(echelon)을 구축, 유무선전화, 팩스, e메일 등 지구상의 모든 통신을 감청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도청문제가 정치쟁점화되거나 일반인까지 도청공포에 시달릴 정도로 사회문제화된 사례는 별로 없다. 선진국에서는 도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보다 법에 의해 허용된 범위 내에서, 그것도 국익을 위해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 정치권이 도청문제를 정치 정략적으로 이용하거나 의원 개인의 비밀을 유지하려는 노력에 머물기보다 차제에 우리사회의 통신의 비밀과 자유가 어느 정도로 보장받고 있는지를 집중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미흡하다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는 대책마련과 법치국가를 확립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정보시대에 휴대전화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필요 있든 없든 간에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려면 휴대전화로 서로 연락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정보사회에서는 무엇보다도 통신이 가장 중요한 생활수단인 터에 남이 들을까봐 두려워 통신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을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긴 하지만, 남들과 전화 한통 마음놓고 못하는 세상이라면 그 사회는 그야말로 죽은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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