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달 마무리된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에 이어 다음 협상 대상국으로 싱가포르를 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황두연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6일 “최근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칠레 이후 우리의 FTA 협상 대상국으로 싱가포르를 택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미 비공식적으로 싱가포르로부터 FTA 추진의사를 타진받은 상태”라면서 “산업구조상 농업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국가인 만큼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황 본부장은 이를 위해 14, 15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리는 세계무역기구(WTO) 미니 통상장관회의에 참석, 싱가포르 통상장관과 양자회담을 추진할 예정이다.
그는 이 양자회담에서 FTA에 대한 양국간 공식 의사를 확인한 뒤 구체적인 FTA 추진방법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의 FTA 추진에 대해서는 “아세안 전체와 추진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세밀한 연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FTA 공동연구가 진행중인 일본에 대해서는 “1년 정도의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일본이나 싱가포르와 협상을 개시할 경우 어느 곳이 먼저 마무리될지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지난해 싱가포르에 40억8000만달러 어치를 수출하고 30억1000만달러를 수입, 전체 수출과 수입에서 차지하는 싱가포르의 비중은 각각 2.7%와 2.1%였다.
한편 한국은 난항 끝에 타결된 칠레와의 FTA 협상 후속작업과 일본과의 FTA 공동연구에 주력중인 나머지 아세안 국가들과의 FTA 협상에는 실기(失機)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회담에 참석한 김석수 국무총리가 한국-아세안간 FTA 추진 검토의사를 밝히는 등 몇차례 ‘러브콜’을 보냈으나, 중국·일본과 같은 가시적 성과는 없었다. 특히 현지 외신에 따르면 김 총리는 각국 정상과의 회담에서 “한국과 아세안은 농업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FTA를 체결할 때가 아니다”라고 언급, 참석한 아세안 정상들을 어리둥절케 한 것으로 전해졌다.
KOTRA가 최근 싱가포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 등 아세안 주요 4개국에서 우리나라 상품과 중국 제품의 경합 동향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45개 품목에서 우위를 지키고 있으나 51개 품목에서 이미 중국에 밀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경합을 벌이고 있는 주요 IT제품 등 29개 품목 역시 중국에 곧 우위를 뺏길 것으로 우려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중국이 화교권이 대부분인 아세안과 FTA로 묶인다면 아시아권에서 한국상품의 입지는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이미 싱가포르와 FTA를 체결해 놓고 있는 일본 역시 중국 못잖은 위협이다. 아세안 각국에 풀려있는 자본의 상당량은 일본서 유입된 것이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정인교 FTA연구팀장은 “이미 연구단계에 있는 일본과의 FTA작업을 가속화하되 아세안, 중국 등 타경제권과의 협상도 순차가 아닌 ‘동시’의 개념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