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회의가 한창 진행 중인 대기업의 한 회의실. 발표자가 사업전략을 파워포인트로 프레젠테이션하고 있지만 회의 참석자들은 예전과 달리 노트나 수첩, 필구도구를 준비하지 않았다. 그 대신 참석자들은 자신이 가져온 태블릿 PC에 직접 펜 입력으로 첨부설명을 적고 이를 바로 파워포인트 자료에 덧붙였다. 또 무선랜을 통해 회의실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로 상급자에게 통보하고 상급자 지시사항을 피드백해 새 의견을 제시한다.
새로운 컴퓨팅 환경이 도래하고 있다.
5000년 이상 인류에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던 필기 입력이 이제 컴퓨터의 새로운 입력방식으로 화려하게 재등장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8일 정식으로 필기입력 기능이 운용체계(OS) 차원에서 지원되는 ‘윈도XP 태블릿 PC 에디션’을 발표한다.
이에 맞춰 한국HP·한국후지쯔·오엔씨테크놀로지(에이서 총판) 등도 자사의 태블릿 PC를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태블릿 PC 마케팅에 착수한다. 전세계적으로는 도시바·NEC·컴팔·퀀타 등 20여개 PC업체가 관련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나 삼성전자·삼보컴퓨터·LGIBM 등 국내 주요 PC업체들은 당분간 시장을 관망한다는 입장이다.
태블릿 PC는 기존 노트북 PC와는 달리 펜 입력을 통해 문자나 그림을 워드파일이나 오피스에 입력할 수 있으며 무선랜을 통해 어느 곳에서나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새로운 플랫폼의 모바일 PC다.
무게는 노트북 PC보다 1㎏ 이상 가벼운 1.5∼2㎏ 내외이며 키보드는 개발업체에 따라 기본으로 장착되거나 옵션으로 제공된다. 당분간 국내 출시 제품에서는 적용되지 않고 있지만 미국의 경우 음성인식 기능도 지원된다. 마우스·키보드로 대변되는 PC 입력방식이 펜 입력, 음성인식 등으로 바뀌는 전환기에 접어든 셈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태블릿 PC 담당 알렉산드리아 롭 부사장은 “이르면 3년 늦어도 5년 이내에 대부분의 노트북 PC가 태블릿 PC로 교체될 것”이라며 “태블릿 PC는 새로운 제품군이 아니라 노트북 PC의 새로운 발전형태”라고 설명했다. 태블릿 PC는 여러 산업현장에서 새로운 컴퓨팅 환경을 제공하게 된다.
회의가 빈번한 사무 근로자의 경우 수첩이나 노트없이 태블릿 PC 하나로 회의 내용을 정리할 수 있으며 회의록의 사인도 태블릿 PC에 직접하면 된다.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태블릿 PC를 활용해 엑스레이 등의 차트를 더욱 효율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건축 엔지니어들은 건설 현장에서 잘못된 도면을 바로 수정하거나 수정사항을 기록해 실시간으로 본사에 보낼 수 있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장 전문가들은 태블릿 PC 미래에 대해 유보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 우선 가격대가 기존 노트북 PC보다는 최소 50만원가량 높아 일반 소비자들이 접근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음성인식이나 문자인식률이 아직까지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어서 기능적으로도 소비자에게 아직까지 어필하기 어렵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장벽은 20여년 동안 키보드에 길들여져 있는 소비자들의 습성일 듯하다. 이러한 습성을 소비자들이 얼마나 빨리 깨트릴 수 있느냐가 태블릿 PC 성공을 가늠하는 가장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한국후지쯔 이재홍 상무는 “태블릿 PC 초기시장은 일반 사용자보다는 솔루션과 결합된 형태로 보험이나 건설 등 특정시장을 중심으로 수요가 발생할 것”이라며 “가격이 내려가면 일반 시장접근도 시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태블릿 PC를 미리 접한 업계 한 관계자는 “처음 접할 당시에는 사용하기에 불편함을 느꼈지만 이제는 노트북 PC를 사용하면 더욱 불편하다”며 “습관을 바꾸면 생활이 즐거워진다는 광고카피가 딱 들어맞는 제품”이라고 밝혔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