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팅방에서 상대방이 한 욕설 때문에 심한 상처를 받았어요.”
“우리 아이가 인터넷 서핑하다가 매일 밤을 지새요. 인터넷 중독이 아닐까요.”
“새로 나온 게임을 빨리 복사해서 나눠주면 친구들한테 인기 많아져요.”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1000만 시대를 열며 세계 최강의 정보 인프라를 자랑하는 IT강국 한국의 위상 뒤에는 사이버범죄, 인터넷·게임 중독, 저작권·프라이버시 침해 등 각종 그림자들로 얼룩져 있다.
현재 정부산하기관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청소년 유해매체물 지정제도, 불건전 정보 신고제도, 청소년 권장사이트 발굴, 인터넷 내용 등급제, 온라인게임 사전 등급제 등 다양한 조치를 실시하고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방법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몇몇 제도들은 ‘국가검열’ ‘산업발전 저해’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정보화 윤리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문명의 이기인 컴퓨터와 인터넷은 결국 인간이 어떻게 쓰느냐에 달린 것이므로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정보화의 이기들을 올바르게 활용할 수 있도록 윤리의식을 길러줘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교육이 가정, 학교, 사회 3자의 역할이 중요하듯이 정보화윤리 교육도 부모의 지도, 정부나 사회단체의 계도만으로는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특히 날로 높아지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초중고 교육과정에서부터 정보화 윤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리나라 초중고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정보화 윤리교육은 사회적 요구에 비해 부족한 편이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 정보화교육, 컴퓨터교육이 6차 교육과정에 비해 강화된 것은 눈에 띄는 변화지만 관련 교과과정이 ‘컴퓨터로 글쓰기’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래밍’ 등 기능 습득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피교육자인 학생들이 정보화시대에 걸맞은 정보화 윤리의식을 함양하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김민석 국회의원(국민통합21)은 지난해 제7차 교육과정을 분석한 ‘초중등학교 정보화교육의 문제점’이라는 리포트를 통해 “정보화 윤리교육은 전체 교과내용이 2.5%에 불과하다”며 “기술교육 위주에서 벗어나 정보윤리 교육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류경호 실장은 정보화 윤리교육 비중이 낮은 것에 대해 “제7차 교육과정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던 시기인 97년만 해도 정보화교육이 가장 큰 화두여서 정보화 윤리교육은 상대적으로 적게 다뤄졌다”면서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 제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일종의 문화지체현상”이라고 말했다.
양재고등학교 김현준 교사는 “최근 서울시 교육청이 ‘고등학교 창의적 재량 지도’라는 별도의 자료를 배포해 정보통신 윤리교육을 실시하도록 지침을 내린 것은 정보화윤리 교육이 새로운 교육적 과제로 부상했음을 의미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학생들이 정보통신윤리를 체화하기 위해서는 몇 시간 정도의 수업을 통과의례식으로 배우고 지나가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컴퓨터 교과목은 물론, 윤리, 도덕, 국어 등 관련 교과목에 정보화 윤리를 적극 반영하는 입체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한다”고 말했다.
관련 교과목 분야에 제대로 된 교사를 양성하는데 인색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교련, 가정, 기술, 회계 등이 선택과목으로 변하면서 이들 과목을 담당하던 교사들이 두달 정도 연수 후 대거 컴퓨터과목 교사로 변신하고 있다. 이렇게 양성된 교사 중 일부는 단편적인 지식만 습득하고 있어 소프트웨어 활용 등 컴퓨터 활용지식만 전달하는데 급급한 경우가 많다. 또 교사 스스로가 정보통신 윤리에 대한 마인드가 부족해 프로그램 불법복제를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면서 정보통신윤리를 가르치는 자가당착에 빠지기도 하며 컴퓨터, 게임, 인터넷 등과 관련된 문제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생들을 이해하는데 피상적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한양대 안미리 컴퓨터 교육학과 교수는 “교사 수급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과목 전공자들을 한꺼번에 컴퓨터 관련 교사를 양성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하면서 “타과목 전공 교사가 컴퓨터 교사로 대거 채용됨에 따라 컴퓨터 교육을 전공한 예비교사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임용고시를 치러야 하는 불합리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통신윤리위 류 실장은 “교사가 되기 위한 교육도 중요하지만 교사가 된 이후의 교육이 더욱 중요하다”면서 “컴퓨터와 인터넷만큼 빠르게 변하는 것이 없는 만큼 교사가 된 이후에도 연수를 통해 정보통신과 관련된 지식과 윤리적 문제를 끊임없이 업데이트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보화윤리를 학교 교과과정에 적극 반영하고 관련 교사를 양성하는 것 이외에도 정보통신윤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즉 교수방법에 대한 연구도 심도있게 진행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윤리시범학교로 지정된 천성초등학교 연구 사례는 새로운 교수방법 도입의 필요성을 잘 말해준다. 이 학교는 지난해 10월 시범학교 운영보고서를 통해 “CD롬 타이틀, 웹사이트 등으로 교육한 결과, 학생들은 자신이 직접 겪게 본 정보통신윤리 문제를 체험할 수 있어 교육에 효과적이었고, 교사들은 학생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정보통신윤리 제문제를 발견할 수 있어 교습방향을 잡는데 좋은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교수학습개발센터 조난심 소장도 “교사가 일방적으로 훈화하는 방식의 교육보다는 아이들이 스스로 윤리문제를 발견하고 자율정화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정부는 관련 인사 4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1000만 돌파를 축하하는 기념식을 가졌다.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1000만 돌파가 대외적으로 정보화 선진국 코리아를 알리는 자랑거리만 되어서는 안되며 각종 사회적, 윤리적 문제들을 되돌아보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전환점이 돼야 한다. 정보화 윤리교육은 사회적, 윤리적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정보화시대에 성공적으로 진입할 수 있는 정석이자 가장 빠른 길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이에 대한 교육에 소홀해서 안됨은 두말할 나위없다.
◆기고
-한양대학교 컴퓨터교육학과 교수 안미리
컴퓨터교육은 컴퓨터 소양교육도 아니고 컴퓨터 활용교육도 아닌 다른 개념의 교육이다. 컴퓨터 소양교육과 활용교육은 체계적인 컴퓨터교육과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을 동일하게 인식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특히 2005년에 제시될 8차 교육과정에서는 컴퓨터교육을 통합교육으로 바꾸면서 교과를 해체한다는 어불성설도 있고, 결과적으로 컴퓨터 교사 임용이 더 어려워진다는 말도 있다. 이는 컴퓨터교육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는데서 오는 발상이며 교육부가 정보 선진국의 추세와 동향조차도 파악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70년 중반에 실업계열 고등학교에서 도입되기 시작한 컴퓨터교육은 95년 이후 교육정보화를 시점으로 오늘의 IT기반을 확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학교현장의 IT 인프라와 인터넷은 ‘교실의 벽을 허무는’ 현상을 가져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수업의 질 향상을 꾀하는 교육환경으로 변했다. 또 7차 교육과정에서 요구하는 공통 교과목에서 10% 이상의 정보통신기술(ICT) 활용강화는 교수방법의 새로운 혁신적 돌출구를 찾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컴퓨터교육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어 IT 전문인력양성과 신IT문화를 형성하는데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잘못된 믿음은 첫째, 컴퓨터와 인터넷을 연결하면 컴퓨터교육은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둘째, 컴퓨터에 대한 소양교육과 컴퓨터 활용방법에 대한 교육으로 컴퓨터교육은 완성된다. 셋째, 학교 컴퓨터 교사는 컴퓨터/정보공학과 교육학의 전공지식이 없어도 컴퓨터교육을 충분히 할 수 있다. 넷째, 현 컴퓨터 교사들은 학교의 마당쇠다. 수업도 하고, 학교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관리하며, 정보관련 공문처리, 동료교사 연수, 프린터 수리, 게시판 관리 등 사이버 경찰이자 곧 팔방미인이다. 다섯째, 전국 컴퓨터교육과에서 매년 양성되는 약 600명의 예비 컴퓨터 교사를 컴퓨터 전공교사로 채용하기보다는 ‘한문’ 혹은 ‘가정’ 등 부전공교사를 130시간 교육시켜 학생을 가르치도록 하면 충분하다. 어차피 학생들이 교사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여섯째, IT 전문인력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 체계적인 컴퓨터교육을 통해서 육성하기보다는 외국인력을 활용하거나 대학과 대학원에서 컴퓨터 전공자를 키워도 충분하다.
이런 잘못된 믿음 때문에 요즈음 학교에서는 교사가 오히려 컴퓨터에 대해 아는 척 하면 과다 업무로 고통스럽다고 한다. 컴퓨터 관련 교사는 새로운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배우는 것도 어려운데 정보통신 관련업무 담당, 네트워크 관리, 교사 연수 등 신체적으로 지친 상태에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교사는 연수를 받았어도 컴퓨터에 대해 모르는 척 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진다.
여기에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컴퓨터교육을 전공한 교사보다는 기술, 회계, 가정, 한문 분야 교사들이 100여시간의 부전공 연수를 받고 컴퓨터 교사 발령을 받아 교실수업을 하고 있다. 물론 전공자보다 더 훌륭한 부전공 컴퓨터 교사도 있지만 그러나 부전공 교사들은 자신의 상황에 만족하지 못해 교육 열의가 떨어진다. 이러한 교육에 학생들이 만족하고 달가워할 수 있겠는가.
컴퓨터교육은 전산관련 기초과목, 교육과 철학, 교수방법 및 교재개발, 정보통신윤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교육을 받은 컴퓨터교육 전공 교사가 담당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은 정보통신의 이기를 피상적으로 활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프로그래밍, 모델링 등 고차원적인 사고의 기반을 마련하고 정보화 윤리의식도 키워나갈 수 있다.
외국의 사례를 보자. 미국은 주마다 교육과정에 대한 자율성을 확보하고 있어 중앙집권적인 체제보다 유연하게 사회변화에 맞춰간다. 최근 미국에서도 컴퓨터교육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기 위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독립교과로 개설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일본 역시 새로운 교육과정이 제안되면서 컴퓨터교과를 독립교과로 발전시켜 깊이 있고 연계된 컴퓨터교육을 설계하고 있다. 인도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컴퓨터를 선택과목으로 제공하지만 학년마다 2∼3개의 컴퓨터관련 독립과목이 개설되어 있다. 초등학생들은 그 수준에 맞는 프로그래밍을 배우며, 고등학교에서는 대학에서 전공하려는 학생들이 C++, 자바, 운용체계 등 선택과목을 수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어느 정보 선진국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우수한 인프라를 구축했으며, 학교 현장은 ICT로 인해 학교혁신과 수업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이제라도 컴퓨터교육을 우리의 미래 IT 산업과 연결해 조명해보아야 한다. 특히 컴퓨터교육을 전공하고 사이버세상을 이해하고 공유하여 도덕적 교육을 받은 우수한 컴퓨터 교사를 양성 또는 채용해야 한다. 훌륭한 교사는 훌륭한 학생을 만들듯이 체계적인 컴퓨터 교육과정과 전문성을 갖춘 컴퓨터 교사를 활용하여 IT 재능을 가진 미래의 전문인력을 조기 발굴하고 키워나가야겠다.
mlahn@hanyang.ac.kr
<류현정기자 dreamsho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