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IC카드 이벤트인 ‘카르테 2002’가 열리고 있는 파리 파리노르드 빌레핑 전시장.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관람객들이 몰리고 있었다. 전반적인 IT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IC카드에 대한 열기는 변함이 없다. 칩 메이커에서부터 전문솔루션 업계, 통신사업자, 금융기관에 이르기까지 ‘마그네틱’에서 ‘칩’으로 전환하는 역사의 현장을 보려는 기대가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400여개 전시업체와 1만3000여 관람객이 등록함으로써 이번 카르테는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하지만 질적으론 기대에 못 미친다는 게 참여업체들의 중론. 카드제조·엔지니어링·컴퓨터·보안·통신사들의 면면도 평범하지만 특별한 이슈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유럽이동통신방식(GSM)용 가입자식별모듈(SIM)카드, 금융 칩카드(EMV), 보안 등 늘상 거론돼 온 주제들 인데다, 눈길을 끄는 참신한 솔루션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만 현재의 시장추세를 뚜렷이 가늠하게 하는 것은 자바카드와 스마트카드관리시스템(SCMS).
자바카드는 미래의 개방형·보급형 IC카드 환경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는 점에서, SCMS는 국내외 스마트카드 보급규모가 이미 대중화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사업자들의 행보가 집중되는 분야들이었다.
○…그러나 한국 업체들의 참여 열기와 수준은 그 어느때보다 높았다는 게 한결같은 평가다. 3개 안팎의 업체가 참가했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13개의 국내 기업들이 독자 부스를 선보여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칩에서 첨단 SCMS에 이르기까지 눈에 띄게 향상된 기술력도 선보였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하이스마텍·스마트카드연구소·사이버넷 등이 출품한 모바일 결제 솔루션. 하이스마텍과 스마트카드연구소는 이동통신사와 더불어 세계 최초로 적외선(IR)결제 및 고주파(RF) 결제 솔루션을 상용화한 업체들.
사이버넷은 비자인터내셔널의 협력업체로 RF 방식의 EMV 카드단말기를 개발한 기업. 세계시장에선 워낙 생소한 분야인 탓에 이번 행사에서도 크게 시선을 끌지는 못했지만 한국기업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강조하는 대목이었다.
삼성의 전방위적인 스마트카드 행보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삼성전자·삼성SDS·에스원은 각각 독자부스를 마련해 칩에서부터 솔루션,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라인업’의 면모를 보였다. 특히 삼성전자는 GSM용 칩카드 시장의 5대 메이커로서 향후 고급형(32·64 급 메모리)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파리 현지법인까지 총출동, 전사적인 역량을 투입했다.
현장에서 만난 에스원 관계자는 “내년부터는 삼성그룹의 전체 스마트카드 비즈니스를 한데 묶어 공동의 부스를 만들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밖에 KDE컴·GIC 등 국내 단말기 제조사들은 유럽의 고정 거래선을 뚫기 위해 수년째 카르테에 참가하는 성실함을 보였다.
○…괄목상대할 기술향상에도 불구하고 ‘우리들만의 잔치’라는 분위기가 역력해 국내 업계의 고질적인 마케팅 역량 부재는 여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주최측이 매년 선정하는 ‘세사미 어워드’. 이번에는 스마트카드연구소가 휴대폰 플러그인콤비를 신청했지만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국내 업계의 탁월한 기술력과 아이디어가 유럽권이 주도하는 세계시장의 분위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인 셈이다.
<파리=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