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정책통, 어느 분야든 맡기만 하면 전문가로 탈바꿈하는 지식형 전문관료, 공학 전공을 자랑스레 내세우는 서울대·KAIST 출신의 과학기술정책 브레인….’
최근 부임한 국립중앙과학관 이헌규 관장(49)을 따라다니는 말들이다. 그는 과학기술부가 인력체계상 승진이 빠른 구조임을 감안하더라도 40대의 나이에 1급 공무원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한 과학기술부의 선두그룹에 속한다.
일에 관한한 치밀하고 성실한 전문관료라는 평을 받고 있지만 그에게는 남들보다 강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독특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처음 그를 마주하면 무특징이 특징일 정도로 평범하다. 그러나 그 평범함 속에는 초상승 무공의 경지에 오른 무림 고수가 내공을 갈무리해 일반인처럼 보이듯 한 그 무엇이 느껴진다.
바로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내는 그만의 독특한 독심술과 처세술이다.
“우선 상대방의 생각을 읽어 처한 입장을 이해하려 합니다. 누구나 판단과 행동에는 나름대로 저마다의 논리를 가지고 있는데 일방적으로 무시된다면 대화가 될 리 없을 것입니다. 사려깊은 행동과 분별력을 가진 처신이야말로 적마저도 동지로 만들 수 있는 지혜가 아닐까요.”
과학관장 발령 한달을 이제 갖 넘긴 그는 과학기술부 선두그룹답게 벌써 과학관 전체의 업무는 물론 직원들의 성향까지 모두 파악을 끝내고 임기가 끝나는 2005년까지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3년간의 경영계획을 수립해 놓았다.
“최근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이공계 기피현상은 과학기술자에 대한 사회적인 대우와 위상, 입시위주의 교육과정 등에 원인이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자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 시스템을 개선함과 동시에 초·중·고생들에게 과학에 대한 마인드를 심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까지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을 맡아 청소년의 이공계 진출 촉진을 위한 세부방안을 수립하는데 관계부처간 업무조정 역할을 해왔던 그답게 우리나라의 이공계 기피현상에 대한 진단 결과를 토대로 과학관의 역할과 방향을 설정하고 나름대로의 처방전을 내놓는다.
청소년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마인드가 곧 과학입국으로 가는 지름길이고 그 중계 역할을 바로 국립중앙과학관이 해야한다는 것.
과학관 이용관람객 270만명 유치, 사이버과학관 방문객 350만명 달성, 연구원 1인당 보고서 3건 이상, 고객만족도 90점 이상, 과학관 회원 3만명 모집 등의 목표달성을 통해 오는 2005년까지 과학관의 위상을 완전히 바꿔 놓겠다는 것이다.
그는 또 서울과학관의 경우 최첨단기술을 이용한 체험의 장으로 활용하고 대전 본관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전시물을 이용, 국내외 과학사를 조목조목 들여다볼 수 있는 박물관 기능을 가진 전시·연구관으로 활용할 계획을 짜 놓았다.
스스로를 CEO라고 일컫는 데 주저하지 않지만 정부기관 경영마인드는 기업 CEO와는 다소 달라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경영철학. 정부기관의 경우 자체 수익기반을 마련하되 공공성을 감안한 경영효율화를 구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과학관 운영방침도 이러한 경영기조 아래 설계했다. 과학관을 이공계 기피현상의 대안으로 리모델링하기 위해선 과학적인 기초조사부터 새로 해야한다는 판단 아래 입장객 체류 유형, 관람객 재방문 횟수, 시설에 대한 반응 등 체계적인 조사 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다. 또 내년에 예산이 편성돼 구입할 예정인 과학관 옆 3500평의 부지에는 주차장과 자연탐사시설을 건립할 복안도 세워 놓았다.
직원들의 성과관리제도를 도입하고 마케팅을 통해 전체 예산의 12% 정도는 충당할 수 있는 자체 체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대안마련도 모색중이다.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공직자의 길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는 그도 지난 99년 원자력국장 시절 원전사고가 터져 옷을 벗을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에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출발하는 좋은 기회가 됐다.
“이공계를 선택한 것은 중학교 때 어머니의 결정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이공계 시대가 올 것이라는 판단을 하셨던 듯합니다. 그때 그 말씀이 이공계의 길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는 전환점이 된 듯 싶습니다.”
자녀의 진로선택에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그는 그래서인지 자녀들의 진로에 대해 자신들의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가능하면 여러 분야로의 진출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은 이공계를 지원하라고 추천하는 등 이공계 예찬론자다.
“다른 길은 거의 생각해본 적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사무관 시절 공부에 대한 동경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주위 친구들 대부분이 유학을 떠나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며 자괴감을 가진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다는 말처럼 관료의 길이 곧 내 인생이라고 정리하고 일에 매진하게 됐다는 그는 특히 공무원이 좋은 점이 있다는 것과 사회적인 인식도 ‘생각보다’ 괜찮다며 후회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강조한다.
“나이가 좀 빠르게 승진해 걱정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존경하는 분의 충고 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고 현재 최선을 다한다면 반드시 미래가 열릴 것이라는 신념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 모르는 일로 염려하기보다는 오늘을 충실하게 보내는 삶을 추구하겠다는 그의 신념대로 중앙과학관의 미래가 달라지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약력>
△54년 출생 △77년 서울대 전기공학과 졸업 △76년 제12회 기술고등고시 합격 △77년 과학기술처 인력담당관실, 원자력안전과, 기술정책실 등 근무 △81년 한국과학기술원 전기전자공학과 석사 △87년 주EC대표부 과학참사관 파견근무 △92년 과학기술처 연구기획과장 △97년 과학기술부 원자력실 안전심사관 △99년 원자력국장 △2000년 과학기술정책실장 △2001년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 △2002년 국립중앙과학관장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