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셋톱박스 시장에서 후발업체의 선전이 두드러지고 있다. 90년 중반부터 셋톱박스 시장을 주도했던 선발업체의 실적이 주춤한 반면 뒤늦게 시장에 뛰어든 후발업체가 국내와 해외 시장에서 발군의 사업성과를 올려 화제다. 특히 이들 업체는 선발업체의 아성을 위협하면서 휴맥스로 대변되는 1세대 선발업체의 뒤를 잇는 ‘포스트 휴맥스 세대’로 떠오르고 있다.
◇선발업체 성장세 ‘주춤’=휴맥스·한단정보통신·현대디지탈테크 등 그동안 국내 셋톱박스 시장을 주도했던 이른바 ‘셋톱 3인방’의 성장세는 한풀 꺾인 상태다. 지난해까지 해외 시장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던 이들 업체는 올해 잇따라 목표치를 하향 조정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98년 이후 연평균 100% 이상씩 성장하던 휴맥스는 올해 잘해야 30% 정도 성장에 그칠 전망이다.
휴맥스는 비상 경영 체제를 선언하고 경영과 업무·물류 효율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단정보통신도 기대에 못미치는 실적으로 고심하기는 마찬가지다. 한단은 3분기 매출총액은 작년보다 증가했지만 채산성 면에서는 오히려 악화됐다. 영업이익과 순익이 지난해보다 각각 3%, 2% 정도 줄어 들었다. 이에 당초 목표 매출을 하향조정하고 외형과 수익 확대를 위해 고부가 제품 위주로 새롭게 주력 제품군을 재편하고 있다.
◇후발업체의 ‘맹공과 선전’=반면 이엠테크닉스·토필드·디지피아 등 후발업체는 선발업체에 뒤지지 않는 마케팅 능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초고속으로 성장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중동과 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 탄탄한 네트워크를 갖춘 선발업체를 제치는 이변을 속출하고 있다.
2000년 4월 창업한 이엠테크닉스는 지난해 1257만달러에 이어 올해 4000만달러의 수출 실적을 기대하고 있다. 셋톱업체 가운데 창업 2년 만에 1000만달러를 돌파하기는 이 회사가 처음이다. 이엠테크닉스는 최근 코스닥에 안착해 또 한번의 성공 신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토필드도 선발 업체가 개발하기 힘든 개인비디오저장기능(PVR)을 갖춘 셋톱박스를 개발해 유럽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이 제품은 복수 채널을 동시에 저장할 수 있는 첫 제품으로 유럽 셋톱박스 전문지가 선정한 ‘월드베스트’상을 수상했다. 토필드는 올해 작년보다 400% 성장한 360억원 정도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이 밖에 디지피아가 MPEG 인코딩이 가능하고 감시용 카메라를 연결하면 보안 장비로 활용할 수 있는 다기능 셋톱박스를 개발해 유럽 시장에서만 올해 200억원의 수출을 예상하고 있다. 또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디지털 라디오 시장을 겨냥해 제품 개발을 끝마친 상황이다.
◇전망=방송과 통신 시장이 디지털과 광대역 기반으로 급속하게 재편되면서 셋톱박스도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단순 위성과 케이블 지원 기능에서 PVR·홈서버·디지털라디오 등 다양한 기능을 지원하는 고부가가치 제품이 잇따라 출시되는 추세다.
후발업체가 국내외 시장에서 선전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기술과 시장 트렌드에 발빠르게 대응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초기 다소 부족했던 해외 마케팅과 네트워크가 서서히 자리를 잡으면서 선발업체를 뛰어넘는 성과를 잇따라 올리고 있다.
특히 내년 경영목표 역시 선발업체는 보수적인 데 반해 후발업체는 공격경영을 기치로 내걸어 셋톱박스 시장의 세대 교체가 활발하게 이루질 것으로 보인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