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언어정보처리를 남북회담 의제로

◆변정용 동국대 컴퓨터학과 교수 

 지난 8월 초 베이징에서 남북언어정보산업 표준에 관한 학술모임이 있었다. 회의 주제는 우리말 규범을 비롯해 자판·문자코드·전문용어·언어처리 등의 분야로 베이징대학의 조선문화연구소가 주관하고 ‘남북언어정보산업표준위원회’와 북한의 사회과학원 언어연구소 등 남북한 및 중국의 학자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회의 분위기는 최근 남북교류의 진전을 보듯 눈에 띄게 부드러웠으며 남북 양측의 참석자 가운데 30대의 젊은 학자들이 참여한 점도 고무적이었지만 지난 94년부터 인연이 있던 분들이 포함돼 있어 회의를 원만하게 진행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

 이번 학술회의는 몇 가지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남한 측의 대표성 문제 부분에 대해 지난해 언어처리 관련 5개 학술단체의 공동발의로 창립된 ‘남북언어정보산업표준위원회’와 정부 차원의 활동을 위해 기술표준원 산하에 설치된 ‘언어정보기술표준연구회’가 회의를 주도했다는 점이다. 또 보다 실질적인 학술회의를 진행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비록 작은 일이나마 남북이 공동으로 실질적으로 쉽게 펼칠 수 있는 과제 도출에 노력했다는 점이다. 아울러 남북 기술교류의 수월성을 위해 언어정보산업 표준화 사업이 앞으로 실질적 남북 경제협력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함께 인식하는 기회가 된 점도 들 수 있다.

 다섯 개 분야에서 도출된 과제로는 △남북 언어규범의 차이를 연구하는 일 △‘ISO2382’를 중심으로 두 차례에 걸친 남북 정보기술 용어사전 편찬에 이어 앞으로 산업 전반의 전문용어 표준화로 확대하는 일 △문자 입력에서 남북 공동자판을 완성하는 일 △정보교환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문자코드 변환 프로그램을 공동개발해 남북 정부의 인증 아래 남북 워드프로세서와 전자우편 서버 모듈에 장착하게 함으로써 정보교환의 벽을 없애는 일, 그리고 △언어정보산업 전반의 공동발전을 위해 언어처리 관련 분야를 표준화하고 이를 토대로 상호협력하는 일들에 관해 4박 5일간 진지하게 논의했다.

 여기서 이끌어낸 일들을 남북 관련 기관들이 가담해 실질적으로 추진해나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이들 사업을 완수함에 있어 국제적 관례와 정당한 절차를 준수하는 일들이 중요하다. 또 여기에 남북 분단의 현실을 감안하고, 동포애를 윤활유로 삼아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철학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아울러 여기서 도출된 공동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본 위원회의 적극적인 활동과 함께 남북 당국간 협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번 회의는 언어정보의 남북간 차이를 보다 심도있게 탐구하는 측면에서 사회과학원의 언어연구소와 학술회의를 했으나 앞으로는 이를 바탕으로 조선과학원 및 조선과학기술연맹 등을 중심으로 한 언어정보산업의 핵심기관들과 보다 실질적이며 구체적인 일들을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아직 남북의 실정법상 직접 교류가 어려운 점이 있어 중국 등 제3국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점은 개선돼야 할 것이다.

 남북회담의 정식 의제에 포함시켜 직접적인 교류로 전환해야 경제적 효율을 높일 수 있으며 실질적인 교류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침 이달 초 내한한 북한 경제시찰단이 IT기관을 방문하는 기회가 있었다고 하니 이에 관한 발전적 논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또한 남북언어정보산업표준위원회는 남북한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실질적인 위원회가 돼야 할 것이며 이를 중심으로 남북의 역량을 결집해 언어정보산업이 민족기술로서 우뚝 설 수 있도록 중추적 역할을 기대한다.

byunjy@dongg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