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덕연구단지 정부출연연구소의 젊은 과학기술자들이 스트레스 등으로 잇따라 사망하면서 연구원들 사이에 과로사 비상이 걸렸다.
이공계 기피현상 속에서도 묵묵히 일해온 유능한 과학자들의 죽음에 대해 대덕연구단지뿐만 아니라 과학기술계 전체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질자원연구원에서는 최근 미국 텍사스주 A&M대 출신으로 프런티어사업단에서 중책을 맡던 L박사(39)가 실험실에서 일하다 갑자기 쓰러져 숨을 거둔 사건이 발생했다.
또 항공우주연구원과 표준과학연구원에서도 지난달 2명의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쓰러진 뒤 일어나지 못했다. 호흡기 관련 질병으로 사망한 우주시험 연구그룹의 L박사(39)는 아리랑1호 등 11년 동안 우주개발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활동을 벌여 표창까지 받은 우수 연구원으로 아리랑2호 프로젝트에서도 핵심 역할을 맡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표준과학연구원의 K박사(47)는 졸음운전방지시스템 등 다양한 연구실적을 갖고 있던 인간공학연구그룹의 베테랑으로 연구에 몰두하다 쓰러져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또 지난 5월에는 지질자원연의 J박사가 숨을 거둔 바 있다.
지질자원연의 L박사와 같은 부서에서 일해온 한 연구원은 “L박사가 숨지기 전 국가기술지도 작성을 위해 사흘간 합숙하는 등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과제를 수행하다 숨져도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과학기술자들의 사기가 말이 아닌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사건이 잇따라 터지자 출연연에서는 “과학자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체계적인 관리와 처우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들은 IMF 금융위기 이후 연구단지에 불어닥친 구조조정 바람과 PBS제도, 불안정한 신분 등 불안감에 과로와 스트레스가 겹쳐져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과학기술계의 한 관계자는 “대덕연구단지의 젊은 과학자들이 최근 잇따라 쓰러지고 있는 것은 연구환경 악화에 따른 과로와 스트레스가 주원인일 것”이라며 “촉망받는 젊은 과학자들의 죽음은 연구의 단절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조속한 대책 마련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출연연 측은 “과로사에 대한 대책을 논의 중이나 산업재해 처리 수준 이상의 대안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추가 인력 및 예산을 지원해주는 방법 외에는 현실적인 대안이 없는 실정”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