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선율에 실려오는 두 가지 색깔의 필름.
피아니스트라는 동일한 제목을 가진 두편의 영화가 국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은 미하일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La Pianiste)’, 또 다른 작품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The Pianist)’. 각각 오는 11월 29일과 내년 1월 3일 국내 관객을 찾아간다.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제목의 영화가 개봉되는 것은 드문 일. 두 영화 모두 피아니스트라는 동일한 소재를 채택한 것이나 영화를 이끌어가는 부분에서 스토리만큼이나 피아노 선율이 큰 역할을 하는 것도 닮은 꼴이다. 최근 홈페이지인 피아니스트러브(http://www.pianistlove.co.kr)와 더 피아니스트(http://www.the-pianist.co.kr)를 앞다퉈 개설한 것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두 영화 모두 칸영화제 수상작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는 올해 열린 제55회 칸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수상작. 미하일 하네케의 피아니스트 역시 제54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등 3개 주요상을 휩쓸어 만만찮은 작품성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두 작품의 색깔은 보색관계 만큼이나 선명하게 차이가 난다. 미하일 하네케의 작품이 완벽을 추구하는 피아니스트의 내면적인 불안정성과 숨겨진 욕망을 표현했다면 로만 폴란스키의 작품은 2차 세계대전의 유대인 학살당시 실존했던 유대인 피아니스트를 통해 삶과 예술의 의미를 되묻고 있다.
우선 미하일 하네케의 피아니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피아니스트와 젊은 제자 사이의 파격적인 사랑이 주된 골격이다. 마흔살 독신녀 에리카는 차갑고 도도한 피아니스트로 음표하나, 피아노 페달의 강약하나 틀리지 않는 완벽한 연주를 고집한다. 그러나 그녀가 완벽하게 조율할 수 있는 것은 피아노뿐이다. 사랑을 한 적도 사랑을 받은 적도 없는 그녀는 밤이면 섹스숍이나 자동차극장에 들러 다른 사람의 정사장면을 훔쳐보는 등의 변태적인 방식으로 숨겨진 욕망을 배설한다. 그녀에게 아름다운 제자 클레메가 나타나고 연주에 대한 그의 독창적인 해석에 완고하던 그녀의 내면 세계가 흔들린다. 슈베르트의 소나타 선율이 이 둘의 위험하고도 치명적인 사랑을 더듬는다.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는 2차 세계대전 유대인 학살 당시 유대계 폴란드인이자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는 39년부터 45년까지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유대인 강제거주지역)에서 공포와 광기에 맞서 생존을 위한 외로운 투쟁을 벌였다. 수많은 죽음의 위험 속에서 스필만은 자신의 예술적 재능으로 가까스로 살아나고 이 극적인 경험은 낙관적인 희망을 낳는다. 이 영화에서 피아노 선율은 전쟁과 평화, 동지와 적군의 경계를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
<조인혜기자 ih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