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스토리](40)쥬라기원시전(2)

창작애니메이션을 해 본 사람이라면 자금 조달의 어려움에 적어도 한번쯤은 치를 떨어본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라온의 창사 4개월만에 닥친 첫 위기도 마찬가지였다. 선판매 후제작이라는 계획아래 어렵게 추진한 외국 배급사와의 양해각서(MOU)가 자금조달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서 자금압박을 받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 8개월에 걸친 자금압박은 우리에게 그야말로 산삼과 같은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라온의 의지에 대한 시험이기도 했고 우리나라 창작애니메이션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현실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기도 했으며 또한 라온이 ‘정도를 가자’라는 신념아래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좋은 시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 글을 읽고 있는 후학들이 있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중단 없는 전진을 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의지의 표상이기도 하며 또한 자금조달의 절대조건 중 하나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의 의지에 대한 시험기간이 끝나고 창투사로부터 투자를 받은 후, 우리는 이제 메인 제작을 원활히 완료하겠다는 생각으로 투지를 다시 재충전할 수 있었다.

 그렇게 메인 제작을 하던 날, 필자는 메인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할 기회가 있었다. 많은 얘기가 오가던 중에 한 애니메이터가 필자에게 쥬라기는 기획이 잘된 것 같다는 표현을 한 후 필자의 기분이 좋아지기도 전에 “그런데 왜 작업비용은 조금밖에 안주나요”라고 묻는 것이었다.

 참으로 난감한 질문이었다. 사실 우리는 10분짜리 26편을 제작하면서 책정한 총제작비 22억5000여만원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또한 모든 금액을 순제작비로 투명하게 투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제로 풍족한 금액을 지불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적다고 불평이 나올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상황이라 더욱 난감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애니메이터가 실제로 받고 있는 금액은 라온이 산정한 작업비용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렇듯 라온의 의지나 행동양식과 차이를 느끼게 되는 문제들은 작업비용에 대한 문제뿐만이 아니라 제작시스템이라던가 또는 제작참여자들의 마인드 등 참으로 많은 부분에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중에서 특히 가장 당황하게 만든 것은 바로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변화하지 않고 다른 이들이 변화해주기만을 바란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런 문제들은 메인제작을 진행하면서 결코 쉽지 않은 길을 가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메인제작을 진행한 지 벌써 11개월이 지나고 있다. 그 동안 상기된 문제점들은 때때로 우리에게 황당과 허무를 가져다 주기도 하였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라온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산업에서 우뚝 서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바를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도 생각이 된다. 결코 짧은 시간내에 해결이 될 문제는 아니겠지만 아무리 단단한 돌이라도 두들기면 깨지듯이 변화를 바라거나 또는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이러한 문제들은 점차적으로 해결되어 나가리라 믿는다.

 어쨌든 기획전문사라는 라온의 입장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메인제작시스템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이 가능하였다는 것은 차기 작품을 기획하여 제작할 때 좀 더 나은 경쟁력을 가지기 위한 경험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메인제작에 참여하신 분들에 대한 불만이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 라온식구들은 언제나 그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슴속에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라온은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하는 곳이다 보니 관계나 기준들에 대한 모호성으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점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런 문제들을 해결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라온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있기에 멀지 않은 미래에 해결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라온픽쳐스 이상주 PD chiwoo@raonpictur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