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창흠 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경영연구부 부연구위원
정보통신과 디지털기술의 변화가 진행되면서 물리적 공간과 디지털 공간이 결합된 새로운 공간개념으로서 유비쿼터스(ubiquitous) 공간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모든 곳에 동시에 존재한다’라는 라틴어의 의미 자체에서 보듯이 유비쿼터스 공간은 그동안 물리적인 속성보다 기술분야와 같은 비물리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돼 왔다. 간혹 유비쿼터스 도시론을 제시한 경우는 있었지만, 개별적인 정보서비스의 체계화나 네트워크화와 같은 기술적인 측면에 치중해 왔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유비쿼터스 공간’ 구현이 실제 가능해지면서 이를 실제 공간에 적용시키려는 노력들이 등장하고 있다. 가상현실체험관이나 디지털영상자료관, 휴렛패커드가 조성한 HP 쿨타운(Cooltown) 등이 그 예다. 그러나 이 사례들은 도시생활과 분리된 실험실의 성격을 지닌 공간이며, 시설규모도 개별시설물이나 단일 건축물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서울시가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 내에 조성하고자 하는 디지털미디어스트리트 계획은 실제 가로를 대상으로 디지털 환경과 물리적 환경을 결합하는 유비쿼터스 공간을 조성하고자 하는 최초의 시도다. 특히 디지털미디어시티는 디지털 미디어기술에 기반한 복합개념의 신도시를 계획적으로 조성하고자 하는 데 의의가 있다. 이 신도시는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산업(M&E)이라는 복합적 산업군의 유치를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문화콘텐츠 산업과 디지털기술을 결합한 디지털미디어시티는 단순한 디지털미디어 산업의 집적지 수준을 넘어 디지털 기술혁신을 창출하는 산학연 센터, 이를 유통하고 소비하는 도심형 비즈니스센터의 기능을 동시에 보유하는 복합도시의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미디어시티내 핵심블록의 동서축과 남북축에는 디지털미디어스트리트가 조성된다. 디지털미디어스트리트를 포함한 중심가로는 디지털미디어시티내 도시활동과 네트워크의 중심축이 된다. 특히 디지털미디어스트리트는 건물의 외관과 가로계획, 가로시설물 계획을 종합적으로 추진해 24시간 생동감이 넘치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이같은 디지털미디어스트리트 계획은 디지털미디어시티의 중심가로를 대상으로 유비쿼터스 공간을 조성하고자 하는 실험적인 프로젝트다. 이 계획은 새로운 디지털기술 변화를 반영해 물리적 환경과 디지털 환경을 결합하는 새로운 시도이기 때문에 여러 측면에서 풀어야할 과제들이 많다.
우선, 활용기술의 결정 문제다. 디지털 기술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어 이를 공간계획과 연계시키는 경우 채택할 수 있는 기술을 미리 확정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디지털 기술은 복제하기 쉽다. 때문에 새로운 기술은 미리 공개되기 어려운 반면, 현재 활용되는 기술을 적용할 경우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실험장이나 전시장으로서의 위상이 훼손되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근본적인 원리가 변화하지 않는 예측가능한 미래기술을 바탕으로 전시물을 구성하되, 기술변화를 수용할 수 있도록 계획의 유연성을 고려해야 한다.
둘째, 디지털미디어스트리트에 적용되는 다양한 서비스의 개발과 활용을 위해 기술을 표준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현재 각 부처별로 추진되고 있는 정보화사업에는 정보통신부의 스마트타운(SmarTown) 시범서비스 사업 외에 행정자치부의 종합재해정보관리서비스사업, 건설교통부의 지능형교통정보서비스사업, 보건사회부의 휴먼테크21사업, 환경부의 원격자동환경감시서비스사업 등으로 다양하다. 이러한 정보서비스들은 각각 상이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서비스의 상호교류나 기술적 호환에 한계가 있다. 이같은 문제는 응용소프트웨어를 통합할 수 있는 기술적 표준을 설정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각 정보서비스사업들을 실험하고 검증하는 시범도시의 선정과 조성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디지털미디어시티와 이 도시의 선도사업인 디지털미디어스트리트가 새로운 디지털기술의 전시장이자 실험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셋째,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디지털 기술을 물리적 도시환경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도시계획자체가 유연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신도시계획이 청사진식 종합개발계획 방식이었다면 유비쿼터스 공간을 구현하기 위한 계획은 외부환경 변화를 지속적으로 수용하면서 발전해 가는 진화하는 계획(evolving planning)의 성격을 지녀야 한다. 대지규모, 건축물의 용도 및 규모 등에서 여건변화에 따라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설계지침이 마련돼야 한다. 또한 가로시설은 디지털 기술을 전달하는 중요한 매개체의 역할을 담당하므로 도시개발의 발전 수준을 고려해 가로시설의 위치와 규모를 결정해야 한다.
넷째, 다양한 주체가 참여할 수 있는 수익모델의 개발이 시급하다. 디지털미디어스트리트 조성계획에는 도시설계가, 디지털기술 개발자, 산업디자이너, 조경설계가, 사업성 분석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계획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디지털제품 개발업체, 광고업자, 금융전문가, 건축회사 등 더욱 다양한 주체들이 참가해야 한다. 만약, 이 사업이 수익성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공공부문이 모든 부담을 안게 되는 문제를 초래한다. 따라서 다양한 민간업체들이 첨단기술과 제품을 실험하고 홍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또 민간 건축주들이 자기소유 빌딩의 전면이나 벽면을 디지털제품이나 기술을 시현할 공간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건축설계나 기반시설 지원, 세제상의 혜택, 각종 부담금의 면제 등의 조치도 검토돼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비쿼터스 공간계획은 그 자체가 지역혁신 창출의 계기로 작용해야 한다. 이 계획에는 디지털기술 분야, 디지털콘텐츠의 개발 및 활용, 산업디자인 및 설치예술, 도시설계 및 건축 등 도시의 물리적, 기술적 환경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 주체들이 함깨 조성하게 될 유비쿼터스 공간은 그 자체의 성과보다도 이 공간이 지역혁신의 새로운 계기로 작용한다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 도시내에 새롭게 개발된 디지털 콘텐츠나 기술을 전시함으로써 지역 시민과 기업들이 이를 실제로 경험하고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결국, 유비퀴터스 공간은 그 자체가 첨단기술의 실험장이자 전시장이라 할 수 있다.
◆디지털미디어시티 조성 계획
디지털미디어스트리트 조성계획은 첨단 디지털 기술의 실험장이라는 디지털미디어시티의 비전 구현을 위한 프로젝트다. 이 사업은 디지털미디어시티 중심가로에 전자적으로 매개된 환경을 조성해 첨단 디지털 기술의 중심지라는 디지털미디어시티의 상징성 제고와 새로운 디지털 환경을 체험하는 공간조성이라는 두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특히 새로운 디지털 환경 체험을 위한 유비쿼터스 공간을 계획적으로 조성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
디지털미디어스트리트 조성의 공간구성 원칙은 크게 ‘투명성(transparency)’과 ‘경계허물기(breaking the boundaries)’로 제시된다. 여기서 투명성이란 디지털미디어스트리트 주변의 연구공간, 엔터테인먼트공간, 사무공간 등에서 이뤄지는 제반 활동을 디지털미디어스트리트로 끌어낸다는 의미다. 이 개념은 디지털미디어스트리트를 중심으로 주변지역 전체를 유비쿼터스 공간으로 구축하는 기본적 원리가 될 것이다. 경계허물기란 이러한 공간구축의 과정에 도시계획 전문가는 물론 디지털 콘텐츠 기획자, 가상현실기술 전문가, 네트워크 기반시설 전문가, 도시문화 연구자 등 다양한 분야의 학제간 공동작업을 수행한다는 대전제를 의미한다.
디지털미디어스트리트 조성계획의 작업과정은 우선 디지털미디어스트리트에 조성할 공간과 이에 적용가능한 기술 목록(inventory)을 작성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를 위해 서울시정개발연구원, KAIST, MIT 등이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국내외 워크숍을 통해 각 분야 전문가의 참여도 이끌어낼 계획이다.
현재 예시적으로 제안된 것으로는 가로 주변의 영화나 카페 정보 등을 전송받는 시스템, 조명을 스스로 조절하는 지능형 첨단가로등(intelights), 다양한 가상공동체로 접속할 수 있는 디지털 키오스크(kiosk ochards), 도시의 데이터 전송을 가시화하는 어반 오더미터(Urban Odometer), 자매도시를 실시간으로 방영하는 시스터월(Sister Wall), 디지털미디어시티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기록시스템(Who-When DMC), 이상형을 찾아주는 메이트 스페이스(mate space) 등을 비롯해 첨단방범방재시스템, 정보가전기기, 원격의료 및 교육시스템 등이 있다. 기술 및 공간목록이 완성되면 이것에 대한 타당성 검사와 공간 적용 가능성을 검토해 일반차원의 요소(what)들을 구성하게 된다.
다음으로 디지털미디어스트리트의 장소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디지털미디어스트리트는 디지털미디어시티 활동의 중심이므로 산업 클러스터의 개방공간이자, 의사소통의 기본 축이다. 또한 디지털미디어시티의 주력 업종이 될 M&E(Media and Entertainment) 산업의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M&E업종 종사자의 특성과 관련 업체의 성격과 구성원의 특성이 적극 반영돼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채택된 디지털미디어스트리트의 특수한 (기술, 공간) 아이템에 대해 이를 추진할 주체와 방식에 대한 검토를 진행하게 된다. 경제성이 낮고 우선 순위가 높은 사업은 공공부문이, 경제성이 높은 수익성 사업은 민간이, 그리고 그 사이에 위치한 사업의 경우 민관 합동으로 추진하는 방식이 채택될 예정이다. 또한 현재 작성중인 물리적 설계지침과 디지털 공간설계지침을 디지털미디어스트리트의 비전 유지를 위한 가이드라인으로 삼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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