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IT문화를 만들자](41)전자정부 신IT문화 확산 계기로 삼자

사례 1.

 모 컴퓨터 영업사원인 이준규 대리(가명·33)는 최근 쓰레기 투기건으로 벌금을 내라는 통지서를 받았다. 재활용 비닐봉투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편지봉투가 나왔다는 것이다.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지라 일명 ‘파파라치’들의 고의성이 짙다는 판단하에 이의신청을 하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인터넷으로 이의신청을 하기 위해 컴퓨터를 켰으나 이와 관련한 업무는 직접 시청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선 의아해했다. ‘인터넷 시대인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처럼 직접 버리지 않았어도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권리를 찾아주겠다는 소박한 시민의식으로 시청을 찾아가 담판을 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의 직장은 강남 테헤란로에 소재하고 있었으며, 집은 경기도 광명시에 있다. 매일 출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으로서는 고민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오후 짬을 내 광명시청을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선 항의한 것은 이의신청을 인터넷을 통해 하면 편리할텐데 굳이 찾아오도록 만들었느냐고 따졌지만 ‘관례’라는 이유 때문에 웃음거리만 됐다. 물리적인 시간 손해를 보며 두서너번 시청을 들락거리며 이의신청을 했지만 며칠 후 날아온 것은 재판에 출두하라는 통지서였다.

 중견 건설회사에 다니는 홍영석씨(가명·31)는 가끔 호적등본 등 행정 서류를 떼기 위해 회사에 늦게 출근한 경험이 있다. 맞벌이를 하는지라 자신이 직접 찾아다녀야 했던 것이다. 물론 요즘에는 회사 근처에 있는 동사무소에 가면 업무를 처리할 수 있지만 이것도 그리 쉽지는 않다. 생각지도 못했던 업무가 터지는 데다 급히 서류가 필요할 경우 이미 행정기관의 업무가 끝난 다음이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이쯤되면 누구나 내 안방이나 사무실에서 인터넷을 통해 각종 서류를 조회하거나 신청하면 좋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행정기관은 디지털과는 거리가 먼 별천지의 세상처럼 느꼈던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초고속인터넷 사용자가 1000만명을 넘어서고, 인터넷 쇼핑몰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데 비해 대부분의 국민이 피부로 느낄 만한 행정업무는 변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희한한 일이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러한 걱정은 추억 속으로 묻혀질 것으로 보인다. 바로 전자정부 덕분이다. 정부는 지난 12일 김대중 대통령과 관계부처 장관을 비롯한 170여명의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전자정부기반 완성보고회’를 개최하고 전자정부의 공식 출범을 선언했다.

 전자정부 출범은 행정업무 전자처리 등으로 인해 생산성·투명성을 높이는 등의 직접적인 효과도 드러나겠지만 ‘신IT문화’의 본격적인 확산 계기가 될 것이란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그동안 신IT문화에 다소 소외됐던 중장년층 등을 끌어들여 정보격차 해소를 줄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신IT문화 확산이 가능해질 것이란 이유 때문이다.

 사실 인터넷 사용자가 늘고 있지만 중장년층에게 인터넷은 단순한 취미생활 정도였다. 하지만 자신의 일상생활에 밀접한 행정 서비스를 직접 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인터넷을 포함한 신IT문화를 향유하게 된다. 그동안 상당한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정보격차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행정 서비스 차원에서 인터넷을 활용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는 점점 커지게 된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새로 장만해 인터넷을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보자. 인터넷을 활용하게 되면 자동차를 새로 장만해 등록절차를 밟기 위해 구청 창구에 머무르는 시간은 길어야 10분으로 줄어든다. 등록세·취득세 등을 인터넷을 통해 서울시에 낸 뒤 영수증을 뽑아가고 해당구청 홈페이지를 통해 등록신청서를 미리 내면 된다. 구청에서 하는 일은 구내 은행에서 채권을 사고 금세 나온 번호판을 다는 것. 인터넷을 통해 이러한 절차를 밟지 않으면 북적대는 창구에서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번호판을 받을 수 있다.

 이뿐만 아니다. 실제로 전자정부 웹사이트를 이용하면 주민등록 등초본, 납세증명서 등 393종에 달하는 주요 민원을 인터넷으로 신청할 수 있고 사업자등록증명 등 40여종의 민원은 전자파일 형태로도 발급받을 수 있게 됐다.

 전자정부에서 더욱 주목할 것은 내년부터 추진할 ‘차세대 모바일 정부’ 구현이다. 정부는 이미 75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전자정부서비스를 고도화하겠다는 발표를 해놓았다. 이쯤 되면 신IT문화의 첨병으로 떠오른 이동통신단말기의 활용도가 점차 높아질 전망이다.

 벌써 휴대폰을 갖고 직접 결제를 한다든가, 모르는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나침반 역할을 하는 등 단순한 통신수단에서 벗어난 지는 오래다. 문제는 중장년층이다. 상당수의 중장년층은 여전히 휴대폰을 통화수단으로만 여기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신청한 행정정보 등을 문자메시지로 받는 등 다양한 모바일 행정 서비스를 이들이 맛보게 된다면 이동통신단말기로 대표되는 신IT문화의 확산은 시간 문제다.

 특히 전자정부는 신IT문화를 지원해주는 제도적·법적 기틀 마련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처럼 신IT문화가 확산되지만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원인 중 하나는 공무원들의 마인드 부재다. 전자정부로 공무원들이 IT에 대한 마인드 변화를 겪게 되면서 제도적·법적 지원책 마련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사용자인 시민들의 입장에서야 백본망이 어떻게 바뀌었든 프런트엔드 부분에서의 편리함만 느끼면 그만이지만 공무원 입장에서는 백본망의 변화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피부로 느끼는 신IT문화의 변화는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부동산을 구입해 소유권 이전 등기를 신청하는 경우 현재는 토지대장등본, 건축물대장등본, 개별공시지가 확인서, 주민등록등본, 신청서부본, 과세시가표준양식, 등록세영수필증 등 9종의 서류를 가지고 동사무소 등 8개 기관을 12번이나 방문해야 한다. 그러나 전자정부 서비스로 인해 검인계약서 등 2종의 서류만 구비해 등기소 등 3개 기관을 4번만 들르면 그만이다.

 건설업 등록 신청이나 사업자 등록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지금은 등기소 등 4개 기관을 6번씩 방문해야 하지만 전자정부가 구현되면 단 한번의 세무서 방문으로 모든 작업이 끝난다. 부동산등기부 등본, 법인등기부등본 등 8종의 구비서류도 허가증 사본 등 5종으로 줄어든다. 이러한 정부의 G4C(Governmet for Citizen)서비스를 경험하는 시민도 알싸한 느낌을 받겠지만 이를 시행하는 공무원은 감회가 더욱 남다를 것이다.

 행자부의 김영선 행정정보화담당관은 “민간부문의 정보화를 이끌고 선도한다는 점에서 국가정보화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며 “전자정부 실현으로 행정 프로세스 개선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인터넷 활용이 점차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는 점에서 이를 신IT문화 확산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자정부 출범은 온라인을 통한 기업간(B2B)거래를 확대해 기업 문화의 모습도 바꿀 전망이다. 기업 입장에서 B2B는 IT가 가져다 준 기업 문화 중 가장 눈에 두드러지는 분야다. 구매업무 절차를 간소화할 뿐만 아니라 투명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비용절감 효과가 뚜렷하다는 점에서도 관심이 높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기업이 올해 전자구매시스템(e프로큐어먼트) 구축에 투자를 해왔으며 이를 활용하는 데 머뭇거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전자구매시스템 등을 통해서 자신의 협력업체와만 거래를 한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B2B시대를 맞이했다고 하기에는 아직 거리가 멀다.

 업계에서는 전자정부의 국가종합전자조달(G2B) 시스템은 B2B를 확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커지고 있다. 지난 9월 12일 서비스를 시작한 G2B는 모든 공공기관에 별도 업체 등록없이 입찰에 참가할 수 있다. 입찰, 개찰 등 여러 업무의 전자화, 표준화를 실시해 조달업체가 관공서를 방문해야 하는 횟수를 줄여줄뿐만 아니라 업무처리 절차도 크게 간소화됐다.

 정부가 이러한 효과를 656개 표본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조2800억원의 예산이 절약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모든 공공기관으로 환산하면 연간 3조2300억원의 예산이 절감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미 G2B는 10월에만 1069개 기관이 1만2695건의 입찰을 공고했고 112만5239명이 인터넷을 통해 입찰에 참가했다. 이를 통한 전체 계약금액은 1조3500억원에 이른다.

 이 같은 G2B의 확산이 B2B의 활성화로 이어질 전망이다. 오프라인 기업들이 그동안 B2B의 효과를 알면서도 직접 시행하지 않은 이유는 ‘과연 B2B를 할 수 있을까’라는 스스로의 의구심과 더불어 면식을 통해 거래하던 기존 방식의 변화에 대처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와 직접 온라인으로 거래를 하면서 B2B 시행효과를 경험할 수 있고, 온라인 거래를 하더라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B2B에 대한 불신감이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화학 e마켓인 케미즌닷컴의 문영수 사장은 “정부의 G2B를 실제 활용한 기업은 B2B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될 것”이라며 “여러 기업이 온라인에서 거래를 할 수 있는 e마켓의 활용도도 점차 높아져 B2B업계의 활성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일렉트로피아의 이충화 사장도 “G2B는 B2B 활성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 B2B업체들도 G2B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위해 협력체제를 갖추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전자정부는 기업의 신IT문화인 온라인 거래를 통한 업무 프로세스 혁신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산업의 경쟁력 제고와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병희기자 shak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