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in The News]시스윌 박영일 회장

 남대문시장 바로 옆 건물에 있는 두평 남짓한 방. 늦가을 오후 따스한 햇살을 한켠으로 받으며 만난 시스윌 박영일 회장(61)의 첫인상은 편안함 그 자체였다.

 회장이라는 직함에는 좀 작아 보이는 이 방이 벤처기업 시스윌을 170명의 직원을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킨 시스윌 박 회장의 사무실 겸 접견실이다.

 박 회장은 방이 작기도 하지만 소파를 놓으면 직원들이 들어와 얘기를 나누기가 불편할까봐 편한 둥근 테이블을 놓았다며 자리를 권했다.

 정보통신부와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장을 거치는 30여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지난해 초 과감히 컴퓨터통신통합(CTI) 업체인 시스윌로 자리를 옮긴 박 회장은 이제 공직의 냄새는 다 털어버린 듯했다. 또 60을 넘긴 나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그의 얼굴은 무럭무럭 성장하는 시스윌처럼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먼 청년과도 같은 인상을 준다.

 여러 공기업 및 대기업으로부터의 유혹을 뿌리치고 굳이 벤처기업을 택한 배경을 묻자 박 회장은 “벤처기업을 위해 뭔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말을 시작했다.

 “소프트웨어진흥원에서 항상 국내 SW산업을 어떻게 육성할까하는 문제를 고민했었습니다. 그리고 SW의 개발도 개발이지만 판로확보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공직생활의 경험을 이들 업체에 던져주고 싶었습니다.”

 아울러 대부분의 SW업체들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이 20∼40대로 젊은 기업에서 젊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시스윌의 역동성과 창조성이 맘에 들었고 이 기업은 해볼 만하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마침 시스윌의 김 사장이 찾아왔고 과감히 옮기게 됐습니다. 그때가 2000년 9월이었지오.”

 당시 시스윌은 700번 ARS로 증권정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고 소프트스위치와 UNPBX 등 통신SW와 관련된 앞선 기술을 지닌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스윌이 판로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본 박 회장은 시스윌과 함께 팔을 걷어붙이기로 한 것.

 실제로 그가 들어온 뒤부터 시스윌의 매출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99년 당시 74억원이던 매출이 2000년에는 240억원, 지난해에는 300억원으로 껑충 뛰었으며 올해도 450억원의 매출목표를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시스윌에 온 뒤로 곧바로 집중했던 사업이 벨소리 다운로드 서비스였죠. 이 서비스를 이동통신 3사에 집어넣는데 온힘을 쏟았고 한국통신과 전산원 등 공기업에서 나오는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서도 백방으로 뛰었습니다.”

 그러나 한평생 공직에서 보낸 박 회장이 살기등등한 기업사회에서 느끼는 낯설음도 만만치 않았다.

 “공직은 질서정연한 조직으로 상하 위계와 책임소재가 분명해 한번 지시하면 이것이 곧바로 실행되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기업은 명령복종의 관계보다는 신뢰의 관계로 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회사에 들어와 노력을 제공한 만큼 보수를 받는 것은 당연하고 이것이 안되면 당장 직원들은 회사를 떠나는 것이죠.”

 따라서 박 회장은 과감히 자신의 이미지를 바꿔야 할 필요성도 느꼈다. 공직생활에서 몸에 밴 권위로 회사를 이끌어서는 안된다는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우선 그는 젊은이들처럼 머리를 갈색으로 물들였다.

 “직원170명 정도가 되는데 직원들의 90%가 20대에서 40대 초반입니다. 이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다 머리에 물을 들였습니다. 저는 이곳에 도와주려고 온 것이지 군림하려고 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박 회장은 매주 돌아가면서 전직원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젊은 직원들의 생각을 거르는 작업 없이 듣고 있다. 바쁠 때는 젊은 직원들과 함께 밤을 세운다.

 위기도 있었다. 지난해 3월쯤 벨소리 다운로드에 세계 50개 국가의 애국가를 올렸는데(10초정도) 그 중에 북한 국가가 있었다. 물론 지금에는 별 문제가 안될 수도 있으나 조사기관에서 조사가 나오고 거래처에서 서비스를 중단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상황은 심각해졌다.

 박 회장은 결국 그동안 살아오면서 알게 된 자신의 모든 인맥과 경험을 동원해 서비스를 원상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어쩌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중소기업 입장에서 거래가 중단되고 벌금이라도 맞는 날에는 기업의 생사여부와 직결된 상황이었습니다. 그 일을 해결한 뒤로부터 아마 직원들은 우리 회장이 그래도 밥값은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박 회장은 그 당시가 생각나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최근 박 회장은 시스윌을 위한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닥쳐온 코스닥 심사를 마무리한 뒤 무선 인터넷과 관련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에 대한 계획이다. 또 부가가치가 높은 게임SW와 모바일 게임으로도 역량을 모을 계획이다.

 “모바일 게임은 우리나라가 종주국으로 이 시장만 지난해 400억원에 달했으며 올해는 1000억 시장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일본과 중국, 유럽 등으로 수출이 시작되고 있어 앞으로 황금알을 낳는 산업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큽니다.”

 놀라운 것은 2년 가까이 이처럼 쉼없이 달려오다 보면 건강에 무리도 갈 법한데 박 회장은 지난 15년간 감기 한번 안 걸렸다. 그는 일에 대한 의욕만큼이나 건강관리 또한 철저하다. 15년째 하고 있는 단전호흡이 20대에 뒤지지 않을 수 있는 박 회장의 건강비결이다. 하루 24시가 모자랄 정도로 일에 매진하는 열정도 이 같은 건강에서 비롯됐다는 게 박 회장의 생각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박 회장은 국내 SW와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이 대폭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SW업체가 21세기 국가발전에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첨단기술이 다 여기서 나오고 고용도 여기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죠. 사실 대기업이라 해도 벤처기업의 땀 밴 개발이 없으면 이익을 창출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정부와 업계 모두가 나서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을 적극 육성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약력

 △41년생 △63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졸업 △65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수료 △89년 국방대학원 수료 △99년 KAIST AVM 과정 수료 △68년 체신부 재경 사무관 △90년 강원체신청장 △91년 체신부 공보관 △91년 체신부 통신정책실 통신정책심의관 △93년 체신부 체신금융국장 △95년 정보통신부 전파방송관리국장 △98년 정보통신부 관리관 △2000년 한국소프트웨어 진흥원장 △2002년 경희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겸임교수, 시스윌 회장, 미래포럼 고문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