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한 연구실. 기억자로 돼 있는 10여평 정도의 연구실에서 두 명의 연구원이 일하고 있지만 들어가려면 한 사람이 간신히 다닐 수 있는 복도를 지나야 한다. 주위에 가득찬 실험기기 때문이다.
연구실까지 들어간다 해도 연구공간은 의자가 간신히 회전할 정도의 반 평 남짓한 곳으로 복잡한 실험기기와 창문 하나 보이지 않는 누런 벽이 사방을 가로막고 있다.
생명공학연구원도 연구실 사정이 비좁기는 마찬가지다. 복도마다 실험기기가 즐비하고, 특히 지하 실험실에는 시설보수물품과 연구실이 뒤섞여 창고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지질자원연 등 지하실을 연구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은 대부분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따르면 대덕연구단지관리본부와 국립중앙과학관을 제외한 출연연 및 국책연구기관 17곳에서 9945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은 전체 건축 연면적 대비 1인당 평균 76㎡인 것으로 나타났다.
표면상으로는 1인당 건축면적이 적지 않은 편이지만 이 면적은 실험집기·복도 면적 등을 모두 포함한 것이기 때문에 대형기기 설치가 불가피한 기관의 경우 이보다 훨씬 더 좁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연구원들이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면적은 한 평에서 반 평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곳 연구자들의 얘기다.
이 중에서도 특히 연구실이 가장 좁은 기관은 ETRI인 것으로 나타났다. ETRI는 1인당 평균 19㎡로 전체 평균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반도체·원천기술연구장비 등이 대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열악한 수준이다.
또 1인당 평균연면적이 33㎡로 출연연에서 두 번째로 협소한 정보통신연구진흥원은 자체 건물도 없이 셋방살이를 하고 있다.
이밖에 생명연이 1인당 평균 52㎡, 슈퍼컴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54㎡로 뒤를 잇고 있다.
그러나 한정된 예산으로 인해 출연연에서는 연구공간을 늘리는 데 난색을 표시하고 있어 과로와 열악한 환경으로 인한 연구원들의 건강악화 등이 문제점으로 드러나고 있다.
출연연의 한 연구원은 “감방도 이보다 넓을 것이라는 느낌으로 생활하고 있다”며 “연구원의 어려운 살림살이를 알고 있고 나만 이런 곳에서 연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험실 공간을 더 요구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출연연 관계자는 “정부가 아무리 과학입국을 떠들어대더라도 환경개선 없는 기술개발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며 “우선 시스템부터 정비한 뒤 그에 상응한 환경을 구축하는 일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편 민간연구소의 경우 쌍용중앙연구소가 1만7402㎡에서 35명이 근무하고 있어 1인당 평균 497㎡를 차지하고 있으며 SK대덕기술원은 1인당 평균 211㎡, 한화석유화학중앙연구소가 1인당 평균 164㎡ 등으로 출연연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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