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B]`알토란 IT 수요잡기` 특명 떨어졌다

“우리는 한국 중소기업(SMB:Small & Medium Business)시장에 타깃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11월 중순 SMB시장에 특화된 데스크톱PC인 ‘디멘션’을 출시할 예정입니다. 인원을 보강해 마케팅과 인터넷 인프라 등도 강화할 계획입니다.” 지난 10월말 방한했던 델컴퓨터의 마이클 델 CEO는 한국 시장의 타깃 시장을 SMB로 꼽았다. 지난 97년에 이어 5년만에 한국을 찾은 델 CEO는 SMB시장 공략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귀국했다.

 “SMB시장은 전세계적으로 볼 때 전체 IT시장의 42%로 3000억달러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IBM 전사적으로 볼 때 지난해 20% 정도를 차지했던 SMB 매출을 그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IBM의 중장기 핵심 과제입니다.” 지난 10월말 국내 SMB시장과 한국IBM의 사업 현황을 살펴보기 위해 방한한 IBM 마크 라텐바흐 SMB 사장 역시 SMB시장 확대가 IBM의 핵심 전략임을 강조했다.

 최근 들어 방한한 다국적 기업의 CEO와 임원들을 만나면 한결 같이 SMB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각 기업의 전략과 시장 위치에 따라 강약에서 차이는 있지만 SMB가 향후 IT시장을 견인할 것이며 이 부문의 수요 개척이 각사의 핵심 과제임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한다.

 굳이 외국 IT 업체 임원들의 목소리를 빌리지 않아도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 IT 기업들의 움직임을 보면 SMB가 핵심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하면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를 지칭하는 SMB는 업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통상 종업원 기준 1000명 미만 기업의 IT 수요를 발굴하자는 개념이다. 그동안 SMB시장은 줄곧 존재해 왔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하드웨어와 솔루션 등 분야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강 잡아 전체 IT시장의 30∼40%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다국적 메이저 기업들이 목소리를 높여 강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경기 위축에 따른 새로운 시장 개척의 필요성 때문이다. 그동안 IT 수요를 견인해온 대기업들의 투자 여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자 그 대체 시장으로 SMB시장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SMB가 침체한 IT 업계의 새로운 젖줄로 여겨지는 데는 이 시장 자체가 무시할 수 없는 규모로 성장해 있다는 점 외에도 이익 측면에서 장점이 많다는 것도 작용하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 고가의 제품을 대량으로 판매할 수 있지만 ‘가격 협상’ 과정을 거치면서 상당한 할인율을 적용하게 된다. 더욱이 IT 투자가 얼어 붙은 현재 상황에서 공급자들은 덤핑에 가까운 가격을 제시하는 일이 다반사다. 결국 대기업 대상의 비즈니스는 갈수록 어려워질 뿐 아니라 영업이익 측면에서 기대만큼의 실익을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SMB시장은 1회 발생할 수 있는 매출 규모는 적지만 영업이익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닷컴 거품 이후 매출 확대보다는 수익률 제고가 최대 관심거리인 현 상황에서 SMB는 이래 저래 매력적인 시장이 아닐 수 없게 됐다.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IT 메이저 업체들은 IT경기가 좋을 때는 틈새시장 정도로 여기고 쳐다보지도 않던 SMB시장의 개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IBM·HP·마이크로소프트·오라클·SAP·EMC 등 IT 공룡 기업들은 본사 차원에서 내년까지 평균적으로 전체 매출의 30% 이상을 SMB 부문에서 올린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각국 현지법인들에게 이의 달성을 독려하고 있다.

 이 시장 공략에 가장 적극적인 한국IBM(대표 신재철)은 내년부터 오는 2005년까지 SMB 분야에서 3조원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특히 한국IBM은 경쟁업체의 시스템을 드러내는 윈백 영업을 통해 이 목표를 달성한다는 전략이어서 SMB시장이 다국적 기업들이 윈백을 되풀이하는 전쟁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본사로부터 현재의 15% 수준에 머물고 있는 SMB시장의 매출을 내년 5월까지 30%로 끌어올리라는 주문을 받은 한국HP는 컴팩코리아의 인프라 활용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HP는 IA서버 위주로 사업을 벌여온 컴팩코리아의 ‘e코리아’ 프로그램을 유닉스 서버까지 확대할 계획이며, 유통·건설과 한국IBM이 강한 제약 등을 집중 공격할 계획이다.

 수성의 위치에 있는 한국썬(대표 유원식)은 제품 라인업이 강력하고 간접 판매 방식의 영업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이 시장에서의 리더십을 자신하고 있다.

 이 회사의 천부영 전무는 “SMB는 한국썬이 국내 시장에서 뿌리를 내리게 된 토대였던 만큼 우리처럼 이 시장을 잘 알고 지원할 수 있는 업체는 없다”고 전제하고 “한국썬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만큼 이 시장을 절대 양보할 수 없다”며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스토리지 분야에서는 SMB를 타킷으로 한 전용 스토리지 ‘클라릭스 CX600’ 시리즈의 라인업을 마치고 본격적인 레이스를 시작했다.

 네트워크 장비 업계에도 SMB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의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들의 네트워크 투자가 증가하면서 과거 기간통신사업자 및 대기업만을 대상으로 사업을 전개해온 대형 외산업체들까지 SMB시장에 가세하면서 중소기업 대상 사업에 주력해온 기존 SMB 시장의 터줏대감들과 한판 대결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SW 및 솔루션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한국오라클·SAP코리아·한국CA 등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공룡 기업들은 향후 이 시장에서 전체 매출 가운데 적게는 20%, 많게는 절반 정도를 벌어 들인다는 목표를 세우고 다양한 제품 및 영업 프로그램, 차별화된 가격정책, 고객 서비스 전략을 내놓고 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 오피스 패키지를 파격적으로 싼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제품일괄구매정책(EA)’의 대상기업을 PC 50대 이상 보유 기업으로 끌어내려 중견기업은 물론 소규모 기업의 수요까지 싹쓸이하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SMB가 국산 하드웨어 및 솔루션업체들의 텃밭이었다는 점에서 이 부문에 대한 다국적 기업의 공세는 국산 업체들에는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단기적으로 볼때 외국계 기업들에 시장을 빼앗길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한국 업체에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중소 중견 기업들의 경우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국 특유의 기업 환경이 뿌리박혀 있어 상당 부문 커스터마이징이 필요하고 외국계 기업들은 중소기업을 타깃으로 한 솔루션이 부족한 만큼 국내 업체가 적절히 대응한다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사위는 던져졌으며 국내 IT기업들이 어떻게 대응할지는 새로운 숙제로 남겨졌다.

<이창희기자 changh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