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여 전부터 중국과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류열풍’이 거세다. 한국 가수들이 진출해 인기를 끄는가 하면 국산 드라마와 영화가 방영되면서 한국 배우들도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부상하고 있다. 이는 곧 한국의 국가브랜드 이미지 제고로 이어져 이들 지역에서의 한국산 제품 판매확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화콘텐츠 수출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 같은 ‘한류열풍’은 지난 2000년 각각 1311만1000달러와 705만4000달러에 불과했던 방송과 영화 수출액이 지난해에는 각각 1892만달러와 1125만달러로 급증하는 성과로 나타났다.
애니메이션·캐릭터·게임·출판만화·음반 등의 수출액도 지난 2000년 총 3273억원(약 2억7275만달러)에서 지난해 3773억원(약 3억1442만달러)으로 크게 늘어난데 이어 올해는 4555억원(약 3억7958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애니메이션·캐릭터·게임·출판만화·음반 등의 문화콘텐츠를 중심으로 그동안의 자료를 수집해 분석한 내용이다. <표참조>
여기에 아직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방송과 영화의 경우도 지난해 전년대비 각각 44.3%와 59.5%라는 급신장세를 보여 이같은 추세대로라면 올해 방송과 영화를 포함한 국내 문화콘텐츠 수출은 총 5160억원(약 4억3000만달러) 규모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한 수치다. 세계 문화콘텐츠 시장은 모바일 및 인터넷 콘텐츠를 제외하고도 올해 약 3557억달러(약 426조8000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시장이 올해 약 50억달러 규모로 세계 시장의 1.4%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그만큼 국내 시장의 협소함으로 인한 한계가 있음과 세계 시장으로 나가야만 앞으로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광활해짐을 의미한다.
더구나 한국의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으며 초고속인터넷 인구 1000만명이라는 막강한 배경을 갖고 있다. 이같은 디지털 인프라는 상대적으로 이제 막 시작단계로 접어든 세계적 문화콘텐츠 시장에서 우리가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원군 역할을 톡톡히 해줄 것이 확실하다.
여기에 문화콘텐츠는 한 분야에서 성공하면 이를 바탕으로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원소스 멀티유스’ 효과가 커 타산업에 비해 적은 비용으로 많은 수확을 거둬들일 수 있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앞으로 우리의 수출전선을 이끌어갈 핵심 전략산업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이미 해외에서는 이같은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을 비롯해 영국·미국·일본 등 세계 200여국에서 47개 언어로 번역돼 출간된 조앤 K 롤링의 소설 ‘해리포터’는 총 1억7000만부가 판매되는 성공을 거두면서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게임·캐릭터 등의 연관분야에서도 수익을 재창출, 총 20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다.
그러나 문화콘텐츠 수출이 쉬운 일은 아니다. 유럽의 경우 ‘인포2000’이라는 문화콘텐츠산업 육성책을 들고 나왔으며 일본도 ‘e-japan’과 더불어 멀티미디어 콘텐츠산업 육성에 나서는 등 이미 세계 각국에서 자국의 문화콘텐츠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각종 시책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을 중심으로한 이른바 문화콘텐츠 선진국이 ‘문화’ 분야를 세계무역기구(WTO) 협상 대상으로 끌어들여 세계 각국의 문화산업 개방을 촉구하고 있다.
후발국들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문화시장에 대해서는 다자간 협상으로 몰고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는 문화콘텐츠산업의 경우도 세계 시장에서 선진국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 높은 경쟁력을 갖춰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문화관광부에서도 한국콘텐츠산업진흥원을 통해 다양한 수출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문화콘텐츠 마케팅 지원을 위한 해외 투자로드쇼를 비롯해 해외공동제작 지원, 현지어 버전 제작지원, 우수 파일럿 프로그램 제작지원, 문화콘텐츠 프로듀서 및 마케터 해외연수, 해외사무소 운영을 통한 정보수집 제공 등이 그것이다.
우리 문화콘텐츠 상품에 대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같은 다양한 지원을 바탕으로 수출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세계 시장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바탕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진행할 단계별 접근전략이 가미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우리의 문화콘텐츠 수출은 중국과 동남아 지역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로서는 우리의 문화콘텐츠가 가장 잘 먹혀들 수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세계 문화콘텐츠 시장은 미국과 일본·영국 등 3개국이 전체의 9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정부나 기업이 국산 문화콘텐츠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이들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위함이다.
또 세계 곳곳에 ‘한류열풍’을 일으킬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이 요구되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한류’를 토대로 많은 성과를 거둬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문화콘텐츠는 단순한 상품이 아닌 ‘문화상품’인 만큼 이제는 ‘한류’도 일방적인 수출확대 차원보다는 상호 ‘교류’ 차원으로 한단계 더 발전해야 한다.
문화는 세계 각국이 길게는 수천년에 이르는 오랜 세월을 쌓아온 것이라 어느 나라는 나름대로의 문화장벽이 존재한다. 따라서 교류와 상생이라는 원칙이 없이는 장기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최근 WTO의 문화산업분야 DDA(이하 개발아젠다) 협상에서 대다수의 국가들이 이 문제를 ‘문화정책을 위한 국제 네트워크’라는 명칭의 세계문화장관회의를 통해 ‘공동제작협정’이나 ‘공동교류협정’ 체결을 추진하는 등 국가간 문화교류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풀어가려 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최근 중국에서 만난 재중 한국대사관의 유재기 문화참사관도 “한류라는 용어 사용을 자제하고 대신에 ‘문화교류’라는 용어를 썼으면 좋겠다”고 당부한다. 예전에 국내에 일본 문화가 범람하던 시절에 ‘왜풍’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꺼려했듯이 ‘한류열풍’의 근원지인 중국에서도 이에 대한 경계심을 표출하고 있어 양국의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소지가 많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재중 문화참사관의 발언은 그가 중국에 ‘한류열풍’을 일으키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해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중국의 경우 최근 들어서는 이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면서 이런 저런 제재를 가하고 있어 ‘한류열풍’이 점차 시들해지고 있는 상태다. 예년 같으면 톱가수나 톱배우로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한번씩은 중국공연을 기획했던 국내 연예인들의 중국행이 최근 들어 뜸해진 것이 그 단적인 예다. 또 올초부터 진행돼온 온라인게임에 대한 사전등급분류제 추진을 계기로 국산 온라인게임의 최대 수출시장이었던 중국이 온라인게임에 대한 수입 및 서비스에 대해 강력한 제재의 칼날을 들이댈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최근 세계적으로도 미래의 핵심전략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문화콘텐츠 산업의 수출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세계 시장에 ‘한류’와 같은 일시적인 붐을 조성하려는 전략보다는 이를 ‘문화교류’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선행돼야 한다.
국가간의 지속적인 상설 협력기구를 만들어 공동관심사에 대해 정기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 협력커뮤니티를 구축하고 공동협력사업을 발굴해 추진하거나 전문인력간의 상호교류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하는 등 문화콘텐츠 관련 전문 인력과 기술 및 정보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는 민간차원의 교류지원도 그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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