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비메모리 반도체산업](1)도약이냐, 퇴출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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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램에 편중된 기형적인 반도체산업 구조를 극복하고 부품국산화와 핵심기술 확보를 위해 정부와 산·학·연이 역량을 집중해온 비메모리반도체(시스템LSI 또는 주문형반도체)산업 육성전략이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진앙지는 다름아닌 120여개의 반도체 설계 벤처기업들이다. 고진감래끝에 상용제품을 내놓았지만 시스템업체들의 차가운 시선과 마케팅 능력 부재로 판로를 차지 못한 채 겉돌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상당수 업체들이 개점휴업인 상태라는 것이 업계의 관게자들의 하소연이다. 반면 시스템업체들은 고급인력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시스템온칩(SoC)시장으로 발을 넓히려고 해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기업과 벤처기업이 쌍곡선을 나타내는 비메모리산업계의 문제점을 긴급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내년 또다시 구조조정 바람이 일면 1차대상은 반도체 설계 벤처들이 될 것입니다. 바른 평가를 통해 옥석을 가려낸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애써 개발한 기술과 훈련된 전문인력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중국이나 대만 등 제3국으로 넘어간다면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반도체 설계기술 인력은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총망라하는 정보기술(IT)시스템기술의 총아입니다.”

 최근에 만난 한 반도체 설계 벤처기업 사장의 하소연이었다. 비교적 일찍 창업해 핵심칩과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그였지만 시장이 개화되지 않고 매출이 발생하지 않자 임금마저 지불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직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이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불가피하게 인력조정에 나서야 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반도체 설계 벤처기업들이 생사의 기로에 섰다. IMF 구조조정과 반도체 빅딜을 겪으면서 자의반, 타의반 창업의 길에 나서야했던 이들이 ‘상용화’와 ‘자금난’이라는 이중고로 인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수십억원의 자금을 투입해 밤낮없이 기술개발에 매달려 상용 가능한 칩을 내놓았지만 정작 고객이 되어야 할 시스템업체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글로벌 소싱을 통해 값싸고 품질 좋은 외산 칩들로 이미 제품을 개발하고 있는데 애써 벤처들의 칩을 써줄 이유가 없다는 것. 물론 몇몇 벤처들은 기술력을 인정받아 상용화를 이뤘지만 대기업에 집중된 우리 산업구조는 벤처를 동등한 동반자로 평가하기보다는 하청업체나 외산품을 겨냥한 가격협상용 카드 쯤으로 여긴다.

 사정이 이러한데 코스닥 등 시중 자금시장은 꽁꽁 얼어붙어 이들의 목을 죄고 있다. 후속제품 개발을 위한 개발비는 고사하고 회사 운영자금조차 마련하기 어렵게 된 것.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반도체 설계 벤처기업수는 120여개. 시장과 산업규모 등을 따져보면 그다지 많은 수는 아니다. 그러나 대다수가 설립된 지 5년 미만에 선순환구조의 자금을 갖춘 기업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ASIC설계사협회(ADA)가 내놓은 ‘2001년도 IT SoC 산업동향 및 기업현황’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69개 업체 중 75%가 종업원수 30명 이하이고 82%가 매출액 50억원 미만의 업체였다. 반도체 벤처기업 특성상 수십억원의 개발비와 양산비, 후속제품을 개발할 인력풀이 필요한데 규모의 사업구조를 갖춘 업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영세한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벤처기업들의 활동이 활발한 미국이나 대만, 심지어 후발 반도체국인 중국에 비해 제도적인 뒷받침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에 상생(相生)을 위한 벤처기업간의 자발적 인수합병(M&A)의 물꼬는 꼭 막혀있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긴 어둠의 터널을 벗어나고 싶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