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가 정보기술(IT) 이후 국가경제를 이끌어갈 핵심 전략산업으로 생명기술(BT)을 적극 육성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결론은 실망스럽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최근 BT산업계는 투자시장 위축과 첨단제품 허가제도 부재 등으로 고사위기에 놓이면서 정부의 산업지원정책에 한가닥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올들어 제시된 정책들이 말만 무성할 뿐 실질적으로 추진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상당기간 실현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정부에 대한 업계의 불신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정부정책 왜 겉도나=산자부를 비롯한 복지부, 과기부 등은 앞다퉈 BT관련 정책을 내놓았으나 아직까지 이렇다할 진전이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는 관련 부처가 산업의 육성보다는 주도권을 잡기에 혈안이 돼 있었기 때문이란 지적이 팽배하다. 한마디로 실질적으로 산업에 미치는 혜택을 고려하지 않고 백화점식으로 정책을 나열해 놓았다는 지적이다.
특히 각 부처가 그동안 예산확보와 관련 부처 협의는 뒷전으로 하고 화려한 청사진을 늘어놓기에 바빴다. 이렇다 보니 나중에 가서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 “관련 부처와 협의를 해야 한다”는 등의 핑계를 대며 슬그머니 발을 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부처들은 정책을 입안하는 초기부터 꼼꼼한 사전조사나 전략 없이 일부 관련자의 의견만을 듣고 무책임한 지원책을 만들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정책을 집행하기 위해 구성한 전문가 회의도 졸속으로 구성되는 바람에 제대로 운영하지도 못하고 중도하차하기까지 했다. 또 전문가 회의도 범정부차원의 정책보다는 각 부처의 입장에서 일방적인 정책방향을 제시, 일의 진행을 어렵게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책개선 방향=바이오산업 관련정책을 펴고 있는 곳은 과학기술부, 산업자원부, 보건복지부, 환경부, 농림부, 해양수산부, 교육부 등 모두 7개 부처다.
이들 부처의 정책을 조율할 기구인 바이오기술산업위원회가 지난해 설치돼 각 부처의 정책을 종합하고 조정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바이오기술산업위의 설치에도 불구하고 각 부처의 정책혼선은 계속되고 있다.
업계는 정부 바이오정책의 명실상부한 조정기구인 사업위의 위상정립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업계는 산자부의 경우 바이오 제품의 상품화와 제품 표준화 부분에, 복지부는 각종 허가규제 마련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 과기부는 신약개발 등 장기적 안목의 연구투자와 국제 공동연구 참여 등 과학기술 외교에 힘써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업계 반응과 요구=바이오업계는 BT산업은 IT산업과 달리 오랜 시간과 막대한 자금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정부의 허가와 지원 등 법적 규제, 지원책 여부에 따라 산업의 방향이 좌우되는 특성이 있다. 바이오산업의 성공확률은 도박에 비교될 정도로 희박하지만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을 비롯해 비아그라와 같은 신약이 개발되면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바이오산업계는 이제 막 싹을 틔우기 시작해 충분한 수분과 영양분을 필요로 하는 시기로 산업에 대한 기본적인 구조파악이 선행돼야 할 시점이다. 이와 함께 국내 바이오계는 선진 바이오기업들이 개발하고 있는 저분자 약물보다는 진단시약, DNA칩, 천연물 신약 등 틈새시장을 노리고 있다.
한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DNA칩을 비롯한 세포치료제, 유전자치료제 등 첨단 바이오상품이 개발돼도 이를 허가해 줄 법적 장치가 매우 미흡하다”며 “다른 나라에서 허가기준을 만들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우리 정부가 나서서 관련 기준을 만들 수 있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업계는 말로만 내세우는 거창한 바이오 육성책보다는 1%의 바이오벤처 성공 가능성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산업인프라 구성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김인순기자 ins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