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은 한국·일본·중국에 특히 많은 암으로 국내에서만 연간 4만명, 세계적으로는 연간 약 100만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위암이 인류의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위암치료제 개발은 가장 시급한 연구과제지만 치료제 개발의 이론적 근거가 되는 위암 발병 원인이 최근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올해 4월 세계 최고 권위의 생명과학학술지인 ‘셀’에 위암을 치료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한 논문이 발표돼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 논문의 핵심은 위암 발병의 근본원인이 위암 억제기능을 지닌 ‘렁스3(RUNX3) 유전자’의 기능 상실에 있다는 것으로 정상인의 경우 1번 염색체에 있는 이 유전자가 활발히 활동하는 반면 위암환자의 60% 가량은 이 유전자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 결과는 위암의 발생 원인뿐 아니라 치료 가능성까지 제시했다는 점에서 세계 의학계를 들뜨게 했다.
이처럼 주목을 받은 주인공은 바로 충북대 의대 의학과 배석철 교수(44)로 그동안 홀대받던 지방대의 교수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세포는 세포분열의 억제와 세포의 자가사멸 메커니즘에 의해 암세포로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암 발병의 주요 원인은 이런 정상적인 방어기전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한 때문으로 이해되고 있다.
배 교수는 95년 렁스3 유전자를 처음 발견하고 이 유전자의 기능을 밝히기 위해 이 유전자가 제거된 생쥐를 생산한 결과 위 상피층의 세포사멸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하는 것을 관찰했다. 즉 렁스3의 발현억제가 위암의 주된 발병 원인이 된다는 것을 규명한 것이다.
이는 다양한 화학물질을 통해 렁스3를 원상복구할 경우 위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이론적인 토대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유방암 원인유전자인 ‘브라카(BRACA)1, 2’, 대장암 원인유전자인 ‘APC’, 췌장암 원인 유전자인 ‘SMAD’ 등은 최근 발견돼 해당 질병의 진단 및 치료법 개발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따라서 렁스3 유전자가 위암 발생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이 증명됨에 따라 앞으로 위암치료제 개발에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획기적인 연구성과를 얻어낸 배 교수지만 그동안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국가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응모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으며, 일본 연구진과 공동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지난 5년간 50번 가량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이런 고생에 보답하듯 배 교수는 최근 한국과학재단이 수여하는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11월상과 과학기자협회가 주는 ‘올해의 과학자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겹경사를 맞았다.
그는 “한국인을 가장 많이 괴롭히는 위암을 한국에서 우리 기술로 정복하고 싶다”며 “반드시 우리나라에서 위암치료제가 탄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약력>
△85년 서울대 약학과 졸업 △87년 서울대 대학원 약학 석사 △91년 서울대 대학원 약학 박사 △91∼94년 일본 교토대 바이러스연구소 연구원 △94∼95년 프랑스 리옹 ENS암연구소 연구원 △95년∼현재 충북대 의과대학 의학과 교수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정회원 △대한생화학회 정회원 △대한내분비학회 정회원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