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뀌면서 한때 각광받던 전문직종의 위상이 잇따라 추락하고 있다.
이른바 ‘사’자로 끝나는 고소득 직업군(변호사, 의사, 공인회계사 등)의 인기가 예전만 못한 것이다. 실제로 사법고시를 패스하거나 의사자격증을 따는 것만으로 안정적인 생활보장이 어려운 사례가 속출하면서 미혼여성들의 일등신랑감 선별기준도 크게 바뀌는 추세다. 개인적으로 변호사들의 월수입이 ‘수백만원대’로 떨어지고 회계사(CPA)의 취업이 힘들어지는 상황에 대해 동정하고픈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의사계층의 사회적 위상이 땅에 떨어지는 세태는 국민건강과 직결된 문제라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잠재적인 환자이며 언젠가 의사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직종의 인기가 떨어지는 배경은 의약분업과 낮은 의료수가로 경제적 수입이 감소한 탓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의료서비스에서 힘든 육체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높기 때문이다.
주사를 놓고 반창고를 붙이는 간단한 치료에서 몇 시간씩 걸리는 대수술까지 모든 치료과정은 사람의 손길이 없으면 돌아가질 않는다. 이 중 몸속에서 병든 부위를 잘라내고 꿰매는 외과수술은 고도의 집중력과 체력이 요구되는 중노동이다. 힘든 일은 기피하는 신세대 의사들은 흉부외과, 응급의학처럼 노동강도가 센 전공분야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이런 추세라면 몇년안에 수술받으러 외국에 나가는 환자행렬이 길게 이어질 전망이다.
최근 의료계에는 어려운 수술작업에 사람 대신 로봇을 활용하는 사례가 확산되고 있다. 이른바 로봇닥터(수술용 로봇)가 등장한 것이다. 이들 수술용 로봇은 대부분 의사가 원격조정하는 형태로 작동되는데 특히 뇌나 심장, 뼈조직을 파고드는 정형화된 수술에서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장점을 지닌다. 수술을 담당하는 의사가 전날 과음하거나 컨디션이 안좋을 경우 손끝이 미세하게 떨려 환자의 생명이 오락가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수술용 로봇은 몇시간씩 수술대에서 작업을 해도 신체적 피로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항시 고도의 정밀성을 유지한다. 또 절개부위를 최소화시켜 수술부위에 흉한 칼자국을 거의 남기지 않아 환자 회복에도 매우 유리하다. 미국에서 실용화된 수술로봇 다빈치의 경우 가슴부위에 1㎝ 정도만 절개한 상태로 여러 차례 심장수술을 성공시킨 바 있다. 상당수 의사들은 수술과정에 로봇이 참여하는데 거부감을 보이지만 이미 국내 의료계에도 로봇기반의 첨단수술기법은 확산일로에 들어선 상태다.
그렇다면 로봇닥터는 병원에서 의사들의 노동강도를 일정부분 감소시킬 수 있을까. 로봇닥터는 수술현장에서 의료스태프의 수는 줄이겠지만 피고름을 짜내고 응급환자를 진정시키는 역할 따위는 절대 못할 것이다. 21세기 병원에서도 의사란 매우 힘든 직종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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