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차기정부에 바란다

국내 정보기술분야 산·학·관·연 전문가 모임인 ‘정보통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회장 한상기 벤처포트 사장)’ 11월 월례 조찬 토론회가 26일 오전 서울 강남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렸다.

 학계 및 산업계의 전문가 15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는 송관호 한국인터넷정보센터 원장이 ‘아·태지역의 IT허브 구축’, 김준형 경희사이버대학교 학장이 ‘IT인재 제대로 육성하자’, 정태명 성균관대학교 정보통신공학부 교수가 ‘IT벤처 정책과 문화운동’이라는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했다.

 세계적으로 IT경기 불황의 골이 깊은 가운데 차기 정부의 IT정책의 가이드를 제시하고자 마련된 이날 모임에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다. 이날 모임의 주제발표 및 토론내용을 요약한다.

 

 ◇서진구(코인텍 사장):지난 11월초 정보산업연합회 주최로 개최된 대선후보들의 IT정책 토론회에 참석한 경험이 있다. 그때 받은 느낌은 대선후보들이 IT에 대한 이해없이 챙겨준 자료만 읽는 것 같다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IT산업은 생산비중으로는 전체의 30%, 수출비중으로는 32%를 차지할 정도로 확실한 기간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주자들이 IT산업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참으로 아쉬웠다.

 사실 현정부는 정보인프라의 구축측면에서 인터넷 대중화라는 성과를 일궈냈다. 차기정부도 이 기반을 계속 발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물론 판을 다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갖춰진 틀을 강화하면서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할 것이다. 구축된 인터넷이나 정보인프라를 바탕으로 국가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해야한다.

 ◇오재철(아이온넷 사장):진정한 수준의 벤처 지원정책이 절실하다. 최근 우리회사에서 일본에 20억원 어치 제품을 수출한 일이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에 1억6000만원을 받고 팔 수 있는 제품이 한국에서는 4000만원도 받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만큼 플레이어가 많기 때문이다. 얼마전까지 벤처기업들은 프라이머리CBO를 비롯한 각종 벤처정책자금을 지원받았다. 문제는 일부 곧 쓰러질 것 같은 기업도 이같은 종류의 자금을 받았으며 이런 자금을 제품개발보다는 인건비로 써버린다는 사실이다. 망해야할 기업들은 망해야하는데 정책자금 덕에 운영비를 확보하게 되고 그런 기업들이 출혈경쟁을 하면서 잘되는 기업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시장을 조성하기 위한 자금이 오히려 시장을 망치는 데 사용되는 셈이다.

 ◇김준형(경희사이버대학교 학장):양성 성장에 초점을 맞춰 추진됐던 IT투자정책이 질적성장으로 바뀌어야 한다. 물론 질적 성장은 투자에 비례해 아웃풋이 나오는 양성 성장과는 달리 아웃풋이 잘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엄청난 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져야하는 것이다. 일례로 우리가 미국식 교육을 이기려면 투자비가 두배 세배는 돼야할 것이다. 교육분야도 사회의 변화속도에 맞춰 민첩해야할 것이다. 문제는 60∼70년대 성장기 시대의 사람들이 정책의 결정권자들이라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개발시대 논리가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조직의 인적구성의 재편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상기(벤처포트 사장):정보화 정책에 대한 평가는 국가 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정부의 IT정책이 대단하다고 칭찬하는 사례가 많다. 비약적인 발전의 원동력으로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가. 안에서는 불만과 모순만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시각과 차이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잘 알다시피 미국은 산업에 대한 정책이 없다. 기업들이 다 알아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해외경쟁력 면에서 매우 취약한 입장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정책 없이 경쟁력을 만들 수 있는지 우리의 수준을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정태명(성대 정보통신공학부 교수):사실 정보통신부는 정책과 자금을 바탕으로 일정부분 성장을 이끌어냈다. 지금까지의 정책은 정부주도하에서 단기적인 성장은 거뒀지만 앞으로는 어떨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지금까지는 실패보다는 성공적인 측면이 더 많았다. 그러나 이같은 방식은 더 이상의 진보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때문에 현재의 위치를 냉정하게 파악한 후 정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장세탁(BnC-Global 사장):현재 대선주자들은 집권했을 때 차기정부에서 갖고갈 IT정책을 지금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다면 또 현재의 상황을 답습해서 그대로 유지해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공약을 보면 IT나 과학기술에 대한 논의가 연계되지 않은 채 따로따로 논의되고 있다. 준비를 안하고 있다는 증거다. 대선캠프에서는 공약을 남발하기보다는 가능하면 국가 전체적인 미래정책에 대한 윤곽을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대선주자들은 글로벌 무역환경의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해야한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시장은 크게 넓어진 것 같지만 오히려 시장은 줄어들었다. 글로벌화되다 보니 시장 참여자간의 경쟁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 미래전략의 핵심 기틀인 IT에 대해 대선주자들은 글로벌 환경은 생각하지 않은 채 단순한 전자정부와 같은 지엽적인 부분만 생각하고 있다. 별차이 없는 공약 내세우기보다 집권후의 정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송민정(한국통신 선임연구원):대선주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IT를 인터넷과 동등하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IT화하면 단순히 무슨 사이트 하나 만들고 그속에서 거래를 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현재 전통적인 기업의 경우 인터넷이 매출의 2% 정도밖에 커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터넷을 다른 비즈니스로 봐왔기 때문이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전통산업의 변화다. 그것은 단순한 인터넷 사이트 개설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기업의 변화가 이루어질 때 산업 역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장병수(KT 서비스개발연구소 BM개발팀장):우리나라에 과연 산업정책이 있는가 의문시된다. 또 IT정책이 별도로 존재해야하나라고 하는데도 부정적이라는 생각이다. 또 대통령이 바뀐다고 정책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IT든 전통기업이든 기업은 성립요건만 갖추면 된다. 이보다는 글로벌화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필리핀에서 의과대학 나오면 모든 나라에서 의사할 수 있지만 이것이 적용되지 않는 나라는 한국이다. 또 햄자격증을 취득하면 다른 나라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지만 일본만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안된 가장 단적인 사례다.

 IT인력의 국제화가 전혀 돼있지 않다. 우리의 학력과 경력을 외국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사실 IMF이후 많은 우수 인력이 해외로 빠져나갔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의 근무경험과 현격히 차이나는 일을 하고 있다. 교육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내부에서만 경쟁해봐야 발전이 없다. 국내에 없다면 해외인력이라도 경력을 인정해 들어와야 국내 인력시장의 선순환을 위해서도 좋다.

 얼마전 컴덱스에 참관하기 위해 미국을 찾았다 깜짝놀란 적이 있다. 6개월 전에 봤던 아이디어가 제품화돼 출품된 것이었다. 세계는 대단히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대단히 오랜 시간을 필요로할 것이다. 정책당국이나 기업들도 자기위주의 사고에서 벗어나야한다.

 사실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우리만의 생각일 수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 사이트에 가보면 엄청날 정도로 방대한 자료가 쌓여있다. 단지 인터페이스 부분에서만 대중화가 안돼있을 따름이다. 시기적인 문제만 있지 그들은 정보화나 글로벌화에 뒤떨어지지 않았다.

 ◇한상기:국가 중장기 기술정책을 고민해봐야 한다. 차기정부는 그 다음 정부가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차기정부는 인터넷 사용하는 문화의 왜곡을 바로잡는 것이 관건이다. 날로 저급화, 황색화해 가고 있는 인터넷을 더이상 방치하면 안된다.

 ◇김준형:인터넷의 확산이 정통부와 업계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컴퓨터를 두대 사용하고 있지만 모두 아이들이 사용한다.숙제를 하기 때문에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이다. 인프라를 깔아놨다고 인터넷이 확산되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니까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컴퓨터와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새삼 부처간의 역할과 협조체제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한다. 인터넷 콘텐츠가 부족하다고 하는 것은 부처가 따로 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면 시너지효과는 있을 수 없다.

 ◇하원규:그래도 IT분야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사실 IT분야는 내놓을 수 있는 청사진이 많다. 축구에 비유하면 지난 5년 우리나라가 IT 혁명의 선도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전반전의 성과를 살려 후반전 계획을 잘 마련하면 가능성 많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차기정부가 해결해야할 몫인 것이다. 물론 많은 문제도 있었지만 그런 부분을 총체적으로 해결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도록 노력해야한다.

 ◇김원식(정보통신부 중앙전파관리소소장):예전에는 정책에 대한 건의가 거의 한 방향으로 모아지는 모습을 보였으나 최근에는 의견이 다양해지고 있다. 거기에 따라서 정책도 세밀하게 튜닝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방향을 다시 짠다기보다는 분야별로 다듬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추진방향도 지원정책보다는 룰 메이킹에 치중해야할 것같다.

 ◇이준수(맥슨텔레콤 사장):예전에는 기술의 발전이나 트랜드가 명확하게 보였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자본을 모은다음 투자를 하는데 고민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술발전이 너무 빠른데다 인터넷을 통해 다양하게 개진되기 때문에 정책을 입안하는 것이 사실 어려울 것이다. 결국 시장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은 기업들이 스스로 찾아야 할 것이다. 자기에게는 관대하면서 정책적인 지원을 요구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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