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퓨전 재즈의 유혹

 재즈가 한결 친숙해지는 계절이다.

 보통 재즈라고 하면, 북유럽이나 남미를, 혹은 미국 뉴올리언스를 떠올리게 된다. 그만큼 외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장르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재즈가 외국의 전유물인 것만은 아니다. 뮤직스페이스 인재진 사장의 말을 빌자면 “재즈는 살아있는 유기체”이고, “우리 소리와 감정, 아이디어가 재즈의 비트와 조화를 이뤄 최상의 음색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나름의 색깔로 재즈의 영역을 개척하는 뮤지션들이 있다. 웨이브, 전성식, 김준성이 그들이다. 이들은 결코 외국무대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드럼과 베이스는 절제되고 건반은 따뜻하다. 한마디로 깊이가 있다.

 한국의 재즈 뮤지션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지는 말자. 그렇다고 애써 애국심을 발휘하지는 말자. 그냥 있는 그대로 듣고 감상하는 것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말이다. 잠시 후에는 국내 뮤지션들의 가능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웨이브는 국내 연주밴드로는 처음으로 4집 앨범을 내놓은 정상급 뮤지션. 데뷔 앨범을 낸 지 불과 3년만이다. 척박한 한국 재즈 현실과 열악한 음반시장을 감안하면 순수 연주그룹이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4집 앨범을 냈다는 것은 ‘작은 사건’이다.

 웨이브는 김용수(색소폰)·박철우(드럼)·박지운(피아노)·한현창(기타)·최훈(베이스)으로 구성된 5중주로 개개인 모두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연주자로 통한다. 봄여름가을겨울·신승훈·이은미 등 유명가수의 세션맨으로 활동중인 이들은 외국의 전형적인 재즈를 답습하는 것과는 달리, 앨범의 전곡을 작곡하고 프로듀싱하는 등 한국 퓨전재즈의 새로운 전범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번에 웨이브가 내놓은 4집 ‘더 스타일(The Style)’에는 이전과는 다르게 섬세하고 아름다운 서정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앨범에 담긴 10곡이 모두 자작곡. 오랫 동안의 음악적 탐색이 원숙의 경지로 접어든 듯하다.

 강렬한 비트를 버리고 얻은 음악적 대가는 크다. 곡마다의 악상을 따라가노라면 눈이 시릴 정도로 맑고 투명하다. 듣는 사람의 색깔에 따라 음악적 색깔도 달리 나타난다. 일정한 틀에 얽메이지 않는 웨이브의 자유로움과 음악적 실험의식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영롱한 비브라폰으로 앨범의 문을 여는 ‘Autumn Maple’, 비온 뒤의 청명함을 그린 ‘After The Rain’, 황량한 바람소리로 시작하는 ‘Winter’ 등 자연과 대화하는 웨이브의 목소리는 나직하고 아련하다.

 한국 최고의 베이시스트 전성식도 최근 ‘트와일라이트(Twilight)’라는 앨범을 내놓았다.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재즈 기타리스트 울프 바케니우스와 협연한 음반이다. 전성식이 6곡, 울프 바케니우스가 1곡, 드럼과 비브라폰을 맡은 크리스 바가가 1곡을 만들어 총 8곡이 수록돼 있다.

 재즈의 두 고수가 빚어낸 서정은 지나칠 정도로 아름답다. ‘트와일라이트’이라는 음반 제목처럼 음반 전편에 흐르는 느낌은 아득하고 쓸쓸하다. 미지의 것에 대한 동경과 인생에 대한 관조적인 시선들로 충만하다. 베이스가 조용히 말을 건네면 기타는 속삭이듯 화답한다. 드럼과 비브라폰은 이들을 그윽히 지켜보며 감싼다. 트리오가 교직하며 만들어내는 음들은 한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김준성도 주목받는 신예 뮤지션이다. 지난 10월 내놓은 ‘어느 아침(On a Morning)’에는 소박하고 진솔한 그의 음악세계가 그대로 담겨 있다. 음악적 의미를 찾기보다는 가족과 친구를 연결시켜주는 한잔의 차와 같이 서로의 정을 나누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그의 말처럼, 이 앨범은 소박하지만 편안함이 있다.

 

 <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