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회생길 열린 하이닉스

 하이닉스반도체를 살리기 위한 구조조정방안이 발표됐다. 우선 6조원이 넘는 채무부담을 줄여서 정상화를 시도한 뒤에 새로운 주인을 찾겠다는 계획이다. 이로써 마지막 남은 부실기업 하이닉스는 올해부터 4년간 4조4000억원의 설비투자 여력을 확보하는 등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하이닉스반도체의 실사를 맡았던 도이체방크가 5개월여의 장고 끝에 지난 26일 발표한 구조조정방안의 주요 골자는 채권단의 채무재조정과 사업구조조정이다. 부채탕감과 상환유예 등 채무를 재조정하고 비핵심부문을 매각하는 강력한 사업구조조정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인 후 매각에 나서겠다는 것으로 회사 정상화가 급하다는 현실론과 매각이 불가피하다는 원칙론을 절충한 것이라고 본다.

 잘 알다시피 하이닉스는 해외에 팔자니 살 사람이 없고 청산을 하자니 채권단의 손해가 막심한 골칫덩어리다. 5조원의 빚을 지고 있으며 지난 9월까지 매달 1100억원꼴로 적자를 냈다. 신규투자는 고사하고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 상반기에는 부도날 것이라는 전망이 심심치 않게 나오는 등 자본시장에서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하이닉스가 오는 2006년이면 정상화될 것이라는 도이체방크의 분석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물론 전제조건이 있다. 금융권 부채 4조3000억원 가운데 무담보 채권의 절반인 1조9000억원을 보통주로 출자전환하며 3조원에 이르는 나머지 여신의 만기를 2006년까지 연장하고 잔여여신 금리를 3.5%에서 3.2%로 낮춰 이자부담을 경감시킨다는 채무재조정과 1조1000억원에 이르는 비핵심자산 및 비메모리사업(시스템IC)을 매각하는 등 강조높은 사업구조조정이 그것이다.

 2조원을 출자전환으로 탕감하고 나머지 3조원의 상환을 4년간 유예시키는 채무재조정을 통해 하이닉스의 재무구조와 현금흐름을 개선하겠다는 구조조정안은 바람직한 선택이라고 본다. 이자가 감면되면 매년 1800억원의 현금이 확보되는 등 신규자금을 지원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시설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우선 120여 채권금융기관으로 구성된 채권단협의회가 도이체방크의 구조조정안을 수용하느냐 하는 것도 불투명하다. 하이닉스에 대해 충당금을 약 80%씩 쌓아놓아 출자전환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은 은행권과는 달리 투신권에서 채권회수율 등을 지켜봐야 한다며 조건부 수용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또 있다. 앞으로의 반도체 가격 추이와 부채탕감에 대한 WTO의 견제다. 채무재조정이 채무부담을 덜어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현금창출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 반도체업계의 심각한 경영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시장상황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채무재조정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는 등 반도체 가격의 향방이 회사운명을 가름하게 된다.

 물론 도이체방크의 구조조정방안대로 실행된다고 해도 하이닉스가 2006년에 정상화된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당장 쓰러뜨리는 것보다는 채무상환을 유예해주는 것이 낫다고 본다. 채무재조정과 강도높은 사업구조조정을 통해 하이닉스 경영정상화가 차질없이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