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가 사이버 세상의 파수꾼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환경·정치·경제분야 등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시민단체들이 최근 IT분야로 활동영역을 넓혀감에 따라 신IT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 기대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YMCA,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협의회 등 기존 시민단체에서 90년대 인터넷의 대중화와 함께 새롭게 등장한 진보네트워크센터·피스넷 등 크고 작은 수백여개의 시민단체들이 올바른 IT문화 정립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신IT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저마다 주요 이슈를 정해 활동하고 있으며 때로는 수십여개의 시민단체가 모여 힘을 합치기도 한다. 특히 이들은 인터넷 검열 반대 운동, 카피레프트 운동, 직장내 인터넷 감시 반대 운동 등 소수의 목소리로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든 부분에서는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서로의 힘을 모아 대응하고 있다.
이처럼 IT분야에서 시민단체 역할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러한 시민단체의 활동에 힘을 실어줄 만한 여건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게 현실이다.
현재 시민단체 활동에 있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활동의 주 대상이 되는 정부측과의 신뢰관계가 구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2000년 정보통신부는 인터넷등급제를 시행하기 위해 콘텐츠의 유해 정도를 계량화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제정에 착수했다. 당시 정통부는 등급제가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보다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기로 하고 그 방법의 하나로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반영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정통부는 산하기관인 정보통신연구진흥원을 통해 가이드라인 제정을 위한 조사 프로젝트를 국내 대표적인 한 시민단체에 의뢰했다.
제도 시행에 앞서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담아내려 한 정통부의 적극적인 시도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지만 기대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등급제의 파급효과를 고려해 보다 신중한 접근을 원하는 시민단체측과 신속한 지침 마련을 원하는 정통부의 견해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연구작업 내내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연구작업에 참여했던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가 “정부가 내용등급제 시행을 전제로 한 후 시민단체라는 명분을 찾으려 했다”고 비난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작업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시작된 의미있는 작업이 상호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아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것이었다.
따라서 우선 신뢰관계를 회복하려는 시민단체와 정부의 노력이 절실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민단체의 특성상 정부의 정책과 대립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사안별로 대립할 때는 하더라도 서로 머리를 맞대고 협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시민단체와의 공식적인 협상 통로를 개설해 상시 운영하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를 통해 주요 이슈가 있을 경우 사전에 시민단체의 뜻을 충분히 수렴해 정부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또한 특정세력의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으려는 시민단체의 특성상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인 만큼 연구조사 프로젝트 의뢰를 통한 우회적인 재정 지원도 시민단체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꼽히고 있다.
시민단체 입장에서는 지원금을 받아 보다 충실한 연구조사를 시행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정부측에 자신들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며 정부 차원에서는 다양하고 폭넓은 의견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가지 이점이 있다.
물론 이처럼 시민단체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연구조사를 수행하는 것을 놓고 일각에서는 공정성 훼손의 우려를 들어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지만 정부가 시민단체의 연구조사 활동 및 결과물 자체에 대해서는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이뤄진다면 시민단체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국내의 경우 시민활동이 본격화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90년대 이후 새롭게 나타난 IT분야의 시민활동은 더욱 역사가 짧다.
따라서 대부분의 전문가는 시민단체와 정부 모두 서두르지 말고 동반자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다행히도 환경·경제 등의 분야에서는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정부의견에 반영되는 분위기가 정착되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듯 IT분야에서도 정부가 시민단체를 진정한 파트너로 인식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벌인다면 보다 효과적인 IT 시민활동이 전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1세기 정보시대의 진정한 파수꾼으로 불리는 시민단체를 활성화하는 방안은 다름아닌 정부가 시민단체를 건설적인 비판 세력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시민단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정부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
==(소박스)==
90년대 이후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체로 확산되면서 최근에는 시민단체의 활발한 활동에 대부분 박수를 보내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올바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단체의 모습은 각계각층으로부터 적지않은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시민단체가 한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IT관련 시민활동은 해당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되는 만큼 보다 깊이 있는 전문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IT관련 시민활동에 있어 가장 미흡한 것으로 지적받고 있는 것은 전문가 부족이다.
현재 대부분의 시민단체에서 기획 및 정책 수립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10명 안팎의 실무진들에 불과하다. 게다가 최근 시민단체의 활동이 정치·환경·경제에서 IT분야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이뤄지면서 대부분의 실무진이 2개 이상의 분야에서 활동을 벌여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시민단체가 정책 수립에 앞서 전문가들을 만나 관련정보를 수집하고 충분한 사전토의를 거치기는 하지만 이제 막 수면위로 떠오른 IT 분야에 대해 깊이있는 전문성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외국의 경우 분야별로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아온 수십여명의 전문가들이 시민단체의 일원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서로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해당분야는 물론 관련분야에 대한 파급효과까지 고려하는 총체적인 정책수립이 가능하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대부분의 시민단체가 소수의 핵심 인원을 중심으로 관련정책을 마련하다보니 정책상 오류를 범하기 쉽고 효과적인 활동을 전개하기 어려운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학계의 한 전문가는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는 대부분 한두명의 전문가만을 보유하고 있어 올바른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고 지적하며 “정부의 역량을 지적하기 전에 시민단체 스스로 전문성을 키워나가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러한 전문가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부 교육 강화가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시민단체 스스로 전문성 부족을 인정하고 내부 실무진의 전문성 확보에 힘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시민단체·산업계·정부간에 인력이 오가는 풍토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해외에서는 시민단체가 산업체에서 오랜 기간 근무해 온 전문가를 스카우트해 전문성을 보강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각 영역에서 활동해 온 인력간 활발한 교류를 통해 전문성을 확보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IT분야의 경우 워낙 빠르게 환경이 변하기 때문에 이를 쫓아가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자체적으로 외부 전문가 영입이나 자체 교육 강화를 통해 전문성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호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