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산업이 한국경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실력 있는 젊은 인재가 창업전선에 나서고, 대기업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기술혁신형 기업이 속속 들어서 기술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벤처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대되고는 있지만 그래도 상당수의 사람이 한국경제의 희망을 벤처에서 찾고 있다.
차기 정부에 가장 당부하고 싶은 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했으면 한다. 그동안 일부 벤처기업인과 벤처금융인의 부정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기술혁신형 벤처기업은 여전히 한국경제의 새로운 희망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차기 정부가 추진할 경제정책의 방향이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현재의 벤처산업 기반을 완전히 거스르는 정책이 돼서는 안된다.
다음 정권에서는 벤처와 관련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다시 대기업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나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를 믿지 않는다. 이제 한국경제에서 벤처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의미를 고려할 때 벤처를 버리는 정책이어서는 안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차기 정부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가 벤처캐피털 시장에 대해 시장경제 중심의 정책을 추진하되 정부가 담당할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의 벤처정책은 일선 벤처기업에 융자·채권담보부증권(CBO) 등의 직간접 금융을 무차별적으로 제공하는 형태였다. 이런 정책은 벤처산업 초기에 창업열기를 높이고 중견 벤처기업이 시장에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벤처산업 전반에 구조조정이 필요한 지금 정부의 직간접적인 재정지원은 부실벤처의 기업생명을 연장시키고, 결과적으로 정상적인 시장기능을 위태롭게 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코스닥·벤처투자 등 민간 벤처금융 시장에서 자금순환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차원에서 역할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다만 시장논리에 맡긴다는 것이 정부가 벤처지원정책을 아예 포기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벤처산업을 시장논리에 맡긴다는 것에는 충실해야 하지만 민간 벤처투자재원이 효과적으로 조성되고 벤처투자의 선순환이 이뤄지도록 하는 역할은 오히려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할 부분이다.
특히 민간 벤처캐피털의 여건이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에 비해 열악한 실정임을 감안해 각종 연기금의 벤처투자를 유도하고 코스닥 등록 및 퇴출 시스템을 재조정하는 역할은 더욱 절박한 과제다.
벤처산업 장기간 침체의 여파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벤처캐피털들이 자금 선순환 구조를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코스닥 등록에만 의존하고 있는 투자수익 회수창구를 M&A나 구주매각 등을 통해 보다 빨리 현금화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방안도 모색돼야 한다.
미국의 경우 벤처캐피털 투자수익의 50% 이상이 기업공개(IPO) 이전의 M&A 등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벤처 M&A시장을 조성하기 위해 비상장 기업간 또는 상장기업간 기업가치를 공정하고 신뢰성 있게 평가할 수 있는 전문평가기관의 설립도 추진해야 한다. <곽성신 벤처캐피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