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사피엔스 이야기](45)스페이스로봇

 냉전종식은 미소 양대진영의 우주산업 종사자들에는 일대 재난이었다.

 주적이 사라지면서 자국의 과학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우주공간에 돈을 퍼부을 이유가 없어졌고 한때 흥청거리던 우주산업계에도 찬바람이 몰아쳤다. 러시아 우주산업은 극심한 재원부족으로 존폐의 기로에 섰고 구 소련의 로켓전문가 상당수는 이웃 중소국가로 팔려가 미사일개발을 돕는 신세로 전락했다. 미국쪽 사정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예산삭감에 시달리는 나사는 아마게돈류의 우주재난영화까지 지원하며 존재이유를 알리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우주탐사의 화려한 이벤트효과는 갈수록 약발이 떨어지는 추세다. 요즘 어린이들의 장래희망 우선순위에서 우주조종사가 사라진 지도 꽤 오래됐다. 인터넷시대에 우주산업은 더 이상 첨단과학기술의 대표주자가 아닌 것이다.

 이처럼 우주산업이 위기에 빠진 가운데 사람 대신 로봇이 외계탐사활동의 전면에 나서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매년 쪼그라드는 예산으로 외계탐사를 지속하려면 부담없이 우주공간에 보낼 수 있는 우주탐사로봇(space robot)이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나사는 지난 97년 화성에 탐사로봇 소저너를 착륙시킨 데 이어 내년에는 성능이 향상된 우주로봇 로버를 보내 화성표면을 탐사할 계획이다. 물론 사람이 직접 화성에 갈 수도 있지만 황량한 우주공간에서 조종사가 겪을 위험과 엄청난 비용부담까지 감안하면 현실성이 없다.

 현재 행성탐사로봇의 핵심사안은 혹독한 외계기후에도 거뜬히 작동하는 내구성과 스스로 장애물을 피하는 상황판단능력이다. 최근에는 드넓은 행성표면 위에서 메뚜기떼처럼 한꺼번에 날아다니는 초소형 우주비행선이나 분업화된 군집형태로 지표탐사를 수행하는 곤충로봇도 개발돼 머지않아 우주탐사활동의 효율성이 수백배 향상될 전망이다.

 로봇기술은 거창한 외계탐사 이외에 국가간 인공위성 경쟁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인공위성들은 걸핏하면 고장나거나 잘못된 궤도에 진입하는 경우가 잦다. 이처럼 고장난 위성을 회수하고 우주공간에 대형구조물을 설치하려면 강력한 로봇팔이 필수적이다. 미국을 선두로 일본, 프랑스 등도 위성사업에서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기 위해 특수로봇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한국도 이러한 위성관련 로봇기술은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이미 우주공간은 GPS위치확인에서 위성방송까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로봇기술은 우주경쟁의 주요한 축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액체추진로켓이 47㎞ 상공까지 올라갔다고 자랑이다. 하지만 나치독일은 2차대전때 고도 100㎞의 액체연료로켓(V2)을 개발했고 북한은 인공위성 발사까지 시도했으니 과히 자랑할 일도 못된다. 주변국의 견제 속에 모처럼 쓸 만한 로켓을 개발했으니 지금부터 우주 로봇개발도 차근히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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