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 마라토너 CEO 2인

 마라톤과 CEO의 공통점은 고독하다는 점이다. 단체경기와 달리 마라토너는 42.195㎞를 ‘혼자서’ 달려야 한다. 마라토너들은 달리는 중간중간 수없이 포기 유혹을 받지만 완주자는 결국 자신의 의지로 그 유혹을 이겨내야 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최고경영책임자(CEO)도 어떤 문제에 대해 때로는 직원과 때로는 임원진과 그리고 주주들과도 상의를 하지만 결국 결정은 자신의 몫임을 잘 알고 있다. 책임도 그가 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CEO는 사내에서는 가장 고독한 사람일 수 있다. 이처럼 고독하고 힘들다는 공통점 때문에 그 많은 CEO들이 포진하고 있는 IT업계에서 마라톤을 즐기는 CEO들이 드문 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멀티캡의 김인철 사장(48)과 대만 에이서의 국내 노트북 총판업체인 오엔씨테크놀로지의 박종범 사장(50)은 자타가 공인하는 마라톤 마니아다.

 현대멀티캡의 김 사장이 마라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ROTC 장교였던 군대 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그는 “우연히 부대에서 완전군장 구보대회를 개최해 참가했는데 2등을 했다”며 “그래서 내 자신이 마라톤이나 달리기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그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이를 까마득히 잊고 살았으나 건강이 안좋아지자 다시 찾은 운동이 마라톤이었다. 그가 달리기를 다시 시작한 것은 지난해 1월부터다. 지난해 춘천마라톤을 시작으로 그가 2년 동안 참가해 완주한 마라톤만 하프코스 8회, 풀코스 8회 등 총 16회에 이른다. 마라톤대회 일정이 겹쳤을 때는 2주간격으로 풀코스를 뛰기도 했다. 풀코스 기록은 3시간 57분 정도다.

 김인철 사장은 “마라톤은 육체 건강에도 좋지만 정신건강에 더욱 좋은 운동”이라며 “달리는 4시간동안 평소에 정리하지 못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며 마라톤이 사색의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농단조로 “앞으로 명함에다 마라토너라는 용어를 집어넣을 계획”이라며 “직원들에게도 마라톤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며 활짝 웃는다.

 오엔씨테크놀로지의 박종범 사장은 달리기를 ‘생활처럼’ 즐기는 달리기 마니아다. 지난 88년부터 건강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조깅이 그를 달리기 마니아로 이끌었다. 그는 대략 일주일에 3회 이상씩 5∼10㎞ 정도 달린다. 그렇지만 마라톤을 완주해 본 경험은 지난 4월에 실시된 IT마라톤대회가 처음이었다. 하프코스를 신청해 1시간 54분에 완주했다. 그리고 이달 초 진행된 중앙일보 마라톤 대회에 전직원과 함께 참가를 신청했으나 급한 출장 때문에 정작 본인은 빠지게 돼 직원들로부터 불평(?)을 받기도 했다.

 박 사장은 “달리기가 좋은 이유는 스트레스를 푸는데 이것만큼 좋은 운동이 없기 때문”이라며 “특히 2시간에 이르는 사색의 시간동안 그동안 막혀있던 생각이 솔솔 풀리기도 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며 두뇌활동을 촉진시키는 역할도 톡톡히 한다며 마라톤예찬론을 편다.

 그는 “달리기를 함으로써 좀더 신중히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됐다”며 “한번 생각할 것을 달리면서 2번, 3번 생각하게 됨으로써 결정적 순간에 보다 신중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한다”고 덧붙였다.

 박 사장은 내년에 하프 2회, 풀코스 1회 등 총 3회의 마라톤을 기획하고 있다. 풀코스 완주 시간 목표도 4시간 30분으로 잡았다.

 그리스 병사가 마라톤 평원을 달려 승전보를 알렸듯이 이들도 IT침체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직원들에게 승전보를 전하고 싶은 마음에 오늘도 마라톤을 준비하고 있는지 모른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