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호 정보가전부 차장 shyu@etnews.co.kr
지금은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지난 70년대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의 일이다. 무슨 교과서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하여튼 인체를 배우던 때다.
인체는 필요한 각종 영양소를 고루 지녀야만 건강할 수 있다며 나무로 만들어진 물통 그림을 그려놓았다. 그 나무 물통은 나무 막대기들을 가지런히 원형으로 쌓아 만든, 당시 시골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나무 물통의 그림 밑에는 각 영양소는 필요 이상을 아무리 섭취해도 더이상 물통에 담기지 않고 물처럼 밖으로 흘러나와 버린다고 쓰여 있었다.
그런데 교과서 그림에는 영양소 이름이 각각 적혀 있는 막대기마다 높이가 다른데도 영양소마다 해당 막대기 높이만큼 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그 그림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무 물통은 막대기의 높이가 똑같은 게 상식이다. 그래야 물을 많이 담을 수 있다. 그 중 하나만이라도 높이가 낮으면 그 높이 이상으로 물을 담을 수 없다.
어린 나는 그 그림이 나타내고자하는 속뜻보다 높은 막대기에도, 중간쯤의 막대기에도, 가장 낮은 막대기에도 서로 다른 높이의 물(영양소)이 어떻게 가득 찰 수 있나 하는 의아심만 들었다.
교과서를 만든 사람은 균형의 중요성을 알기 쉽게 나타내고자 그런 그림을 비유로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높이가 서로 다른 나무 막대기로 만든 물통을 예로 드는 바람에 물리학적으로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화제를 지금으로 돌리자. 우리 경제를 나무 물통으로 그린다면 아마 IT 막대기의 높이가 가장 높을 것이다. IT는 국내총생산(GDP)의 12% 이상, 수출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그 비중이 크다. 가장 수출이 잘되고 돈을 잘버는 품목을 생각나는 대로 꼽으라면 누구나 반도체·휴대폰을 떠올릴 것이다. 다음으로 생각나는 게 자동차 정도다. IT분야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 가슴 뿌듯한 일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지나치면 아닌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듯 지나친 IT 의존은 우리 경제의 안정성을 해치게 된다. 반도체 가격 폭락으로 겪은 심각한 경제불안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휴대폰도 얼마나 좋은 시절을 더 구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경제에는 균형과 안정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IT의 비중을 떨어뜨리기 위해 잘나가는 IT의 발목을 잡으라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타분야의 비중을 빨리 끌어올려야 된다는 얘기다. IT가 잘되는 만큼, 아니 그 절반만이라도 타분야가 뒷받침해줘야 IT도 살고 경제도 산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신산업 벤처 붐이 한꺼번에 꺼져 버린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타분야가 지나치게 낙후돼 있기 때문이다. IT에는 소비재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사실상 생산재에 더 가깝다. 타산업이 활성화돼야 IT의 수요가 창출된다. 다행히 반도체나 휴대폰같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품목들은 해외시장 개척으로 살 길을 찾아가고 있지만 IT에는 아직 그렇지 못한 분야가 더 많다.
IT산업 육성도 중요하지만 뒤진 전통산업을 되살리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통신산업을 발전시켜 오늘날의 휴대폰산업을 있게 했듯 전통산업을 되살려 더 많은 제2, 제3의 휴대폰을 만들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