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필립스전자가 없었다면 필립스가 총 16억달러를 투자한 LG필립스LCD와 올 7월 LG필립스디스플레이간의 조인트 벤처 설립이 가능했겠습니까”라고 필립스코리아 전길홍 부사장은 묻는다. 그의 말은 비록 한국진출이 오래됐지만 소형가전 위주로 알려졌던 필립스전자의 한국내 위상과 본사의 관계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사례다.
필립스전자는 소형가전뿐 아니라 TV용 브라운관, VCR 디스플레이, 파운드리 등을 국내 전자업체에서 납품받아 필립스 본사에 수출하는 핵심축이 되고 있다. 지난 3년동안 필립스가 수출한 금액은 매년 5억달러에 달한다.
소니코리아는 지난해말 이명우 신임 사장이 취임하면서 한일 시장간 판매시기 격차를 줄이는 ‘타임투코리안마켓’을 핵심 경영 전략으로 내걸었고 이후 그랜드베가TV를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출시하고 있다. 지난 10월부터 모든 TV는 일본에서 생산된 제품을 직수입하고 있다.
일본 전자업체들의 경우 불과 4∼5년전만 해도 ‘신사참배, 역사교과서 왜곡파동’ 등 정치·문화적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긴장하곤 했다. 혹시나 반일감정이 자극돼 일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될까 우려한 데다 한창 고조되던 대일 무역역조, 눈덩이 수입, 일제가 몰려온다 등의 신문기사가 국내에 진출한 일본계 가전회사 관계자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자극제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일본 가전사들을 바라보는 국내 소비자들의 인식은 변했다.
국제화·세계화라는 경제환경의 변화에 힘입어 도시바·JVC·후지필름 등 일본기업들은 어느덧 글로벌·다국적기업으로 다가섰다. 이제 소비자들은 ‘애국심’에 기초해 ‘메이드인 코리아’ 제품을 구입하기보다는 품질과 가격 중심의 구매성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필립스·소니 등의 예에서 보듯이 한국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외국자본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국내 현지법인들의 활약상도 한국시장내 입지를 강화하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과거 본사 제품을 단순하게 수입·판매만하던 자세에서 벗어나 법인장의 역량에 따라 한국시장에 적합한 제품개발을 요구하고, 로컬화된 상품을 도입하려는 노력이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다. 실제로 최근 1∼2년새 외산기업들은 국내 판매용 제품의 라인업과 한국시장에 맞는 기능을 결합한 제품을 본사에 요구해 선택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상식이 돼버렸다. 일본 소니 전체 매출의 1% 정도를 차지하는 한국시장에 대한 세계적 가전회사 소니의 시각전환까지 가져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국내외 수입환경의 변화와 현지법인들의 외형적 매출성장은 본사의 지원확대는 물론 신규사업, 국내기업과의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 등 경영개선을 불러오고 있다.
한국후지필름의 경우 국내 유명 IT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사진영상 등 새로운 사업을 지속적으로 개발중이다.
그동안 외국가전업체의 한국지사는 외산가전을 좀 써봤다고 하는 일반인에게조차 단순 유통센터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필립스·소니 등의 예에서 보듯 이들은 어느새 국민총생산에 기여하는 수출기업으로서, 지사장의 역량에 따라 가전대국이 돼버린 한국과의 주요 파트너로 위상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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