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경쟁력이다](47)해외편(3)-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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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명의 일본인이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연이어 거머쥐자 일본 열도는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아사히신문을 비롯한 언론들은 “일본 과학계의 실력을 세계가 인정했다”며 일제히 갈채를 보내는 한편 독창성이 약하다고 지적받아온 일본 과학계가 그동안의 설움을 말끔히 씻어냈다고 환호했다.

 일본이 과학부문에서 받은 노벨상은 이번이 모두 아홉번째. 특히 ‘3년 연속 노벨화학상 수상’ ’물리학상과 화학상 동시 수상’은 경제불황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인들에게는 큰 낭보가 아닐 수 없었다.

 일본의 잇따른 노벨상 수상 소식은 이웃인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이 노벨상 수상자를 연속 배출하며 과학강국의 위상을 굳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학계는 묵묵히 자신의 연구과제와 씨름하는 과학두뇌의 층이 두껍다는 점을 첫번째 이유로 꼽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를 5명 배출한 교토대의 나가오 마코토 총장은 “자신이 연구하고 싶은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고들도록 존중하고 도와주는 학풍이야말로 가장 큰 정신적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학교의 교육 풍토만으로 노벨상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정부의 과학기술 육성은 눈여겨 볼 만하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지난 96년 향후 5년간(2000년까지) 총 예산 17조2000억엔을 투자하는 ‘제1기 과학기술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젊은 과학인력 1만명 지원, 해외 우수두뇌유치, 과학연구환경 개선 등이 이때부터 추진됐다. 이어 지난해부터 시작된 ‘제2기 과학기술 5개년 기본계획(2001∼2005년)’에서 일 정부는 ‘지식의 창조와 활용으로 세계에 공헌하는 나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무려 24조엔(240조원 가량)을 과학 진흥에 투자한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이는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1%에 해당한다. 이 계획에는 ‘향후 50년간 노벨상 수상자를 30명 배출한다’는 수치목표도 설정됐다. 노벨상에 목표를 정하는 것을 놓고 비판여론도 있었지만 그만큼 일본 정부의 과학기술 강국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일본 정부는 또 올해 5월 ‘오키나와섬에 세계 최고의 자연과학전문대학원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발표했다. 이를 위해 6억달러(약 7700억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생명과학분야에 전문성을 갖게 될 이 대학원은 오는 2005년 개강하며 모든 수업은 영어로만 진행한다. 일본 정부는 이 대학원 교수의 절반 이상을 외국인으로 채울 계획이다. 또 노벨상을 수상한 석학을 학장으로 초빙키로 하고 내년부터 세계 여러나라를 돌며 초빙교수 교섭을 벌일 예정이다.

 대학원 설립을 담당하고 있는 오기 고지 과학기술·오키나와북방담당 장관은 “학장의 보수는 본인이 요구하는 최고액 수준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원 설립에 일본 정부가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타 지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진 오키나와 지역의 개발과 연구인력 확보에 둔감한 일본 대학들의 개혁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이와 관련, 그레고리 베르다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자연과학 분야에서 이같은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것은 처음이며 이는 대단한 사업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같은 일본 정부의 과학기술 육성 노력은 ‘정보화’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경제대국·과학강국 이미지를 어느정도 구축한 일본이지만 정보화에서만은 여타 선진국에 비해 더딘 움직임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 일 정부는 국가경쟁력의 핵심인 제조기술이 90년대초까지는 미국과 동등한 수준이었으나 중반 이후 미국의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원인을 뒤늦은 정보화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관련 정부부처를 포괄한 IT기본법(고도정보통신네트워크사회형성기본법)을 지난 2000년 마련, 범정부적 차원에서 지원체제를 구축했다. 이를 토대로 IT전략본부(본부장 총리)와 IT전략회의(의장 이데이 노부유키 소니 회장)를 설치해 총리를 중심으로 민간과 정부가 함께 강력한 정보화 및 IT육성정책을 추진 중이다.

 이에 앞서 99년 일본 정부는 정보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범국가적 추진계획으로 ‘e재팬 프로젝트’도 내놓았다. 이를 통해 최우선적으로 일본 전역에 IT기반을 구축하고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정보에 접근해 경제의 효율성을 제고한다는 것이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IT인’의 양성이 향후 경제 전쟁의 핵심이라고 보고 능력있는 IT인력 교육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e재팬의 바탕에는 현재 일본이 미국 등에 비해 IT활용도가 낮고 기존 고급 IT인력이 국제경쟁력 강화를 요구하는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이에 따라 일 정부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국민 모두에게 자유롭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반 환경을 구축함과 동시에 ‘IT분야의 고급기술자와 전문연구인력을 긴급히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고급 IT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일본의 노력은 대학 교육 개혁에서도 알 수 있다. 문부과학성은 각 대학이 보다 자율적인 환경에서 IT관련 교육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자율적 강좌 편성과 학과 설치 및 폐지 등을 허용해 대학이 유연하게 사회의 필요에 대응하도록 하고 있다. 또 IT관련 전공의 입학정원도 늘렸다.

 문부과학성은 또 미래사회의 핵심가치가 될 우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육성도 추진하고 있다. 광대역 인터넷에 걸맞은 콘텐츠 개발을 위한 개발 툴 및 개발 환경을 지원하고 산학협동을 통해 오는 2005년까지 시장규모를 99년 대비 2배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콘텐츠 산업 육성을 위해 내년까지는 100개 정도의 벤처기업 창설을 지원하고 2005년까지는 전국에 50여개의 관련 인큐베이터를 설치할 예정이다. 또 IT와 경영에 정통하고 경영자의 입장에서 경영전략 입안부터 시스템 구축까지를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IT코디네이터’ 1만명을 2005년까지 양성한다는 전략이다.

 문부과학성뿐만 아니다. 후생노동성은 100만명을 대상으로 IT기능 습득을 지원하고 있다. 실업자뿐 아니라 재직자·미취업 졸업자도 지원 대상으로 약 200억엔이 투입된다. 후생노동성은 이의 일환으로 우선 공공직업훈련시설 등지에서 50만명이 PC강습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자습용 PC를 배치한 후생노동성 산하 단체시설을 토요일과 야간에 개방하고 있다.

 총무성도 고급 IT인력을 4000명 정도 육성하기 위해 민관 공동으로 ‘고도IT인재육성센터’를 최근 설립했다. 여기서는 행정절차를 온라인화하는 전자정부의 실현에 필요한 인재나 지방자치단체, 벤처기업 등의 IT화에 기여할 수 있는 우수 기술자 확보가 주목적이다. 궁극적으로는 오는 2005년 세계 최고 수준의 IT국가 실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이밖에도 경제산업성은 IT인력에 요구되는 능력을 국제적으로 표준화해(정보기술처리기술자시험) 해외 우수 IT인력을 보다 쉽게 수입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혁했다. 외무성은 외국 전문인력들에게 발급되는 미국 H1B 비자와 유사한 노동허가증 발급기준을 크게 완화하고 내년까지 약 3만명의 외국 IT전문인력에게 비자발급을 계획하고 있다.

 

 소박스/ 일본의 대표적 과학·IT인력 육성책들.

 

 ◇IT기본법=지난 2000년 제정된 이 법은 IT전략본부와 IT전략회의를 통해 추진되고 있다. IT기본법은 기본적으로 정보화를 통한 IT산업의 수용창출에 목적을 두고 있다.

 주요 내용은 △고도 정보통신 네트워크 사회의 정의 및 모든 국민이 정보통신 기술의 혜택을 향유할 수 있는 사회 실현 등 6대 기본이념 제시 △시책책정에 관한 기본방침으로 세계 최고수준의 고도 정보통신 네트워크 형성, 전자상거래의 촉진, 교육 및 학습진흥과 인재의 육성 등에 대한 규정 △IT국가전략의 추진체제로서 IT전략본부 설치 등 조직 및 소관사무 규정 △전략본부가 책정하는 중점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나 소요사항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과학기술기본계획=1·2기로 나눠 총 10년동안 추진되는 과학기술개발과 인력양성을 위한 로드맵. 지난 99년 밀레니엄을 앞에 두고 기술개발 촉진을 위한 밀레니엄 프로젝트로 착수됐다. 정보화·고령화·환경대응 등 3개 분야에 대해 기술혁신 중심의 산학관 공동연구프로젝트를 구축해 밝은 미래를 개척하는 핵으로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이를 위해 기존 과학기술청이 문부성과 통합돼 문부과학성으로 발족(2001)됐으며 같은 시기 종합과학기술회의도 설치됐다. 이 회의의 의장은 총리이며 의원은 관방장관, 과학기술정책담당 대신, 총리가 지정하는 관련장관, 유식자(7명 이상) 등으로 구성됐다.

 제1기(1996∼2000년)때에는 과학기술 관련예산으로 총 17조2000억엔을 투자, 연구자 유동성을 촉진시키기 위한 임기부임용제를 도입하고 젊은 연구원들의 창의적 연구에 집중 지원했다. 국립대들의 노후화 개선으로 3313억엔, 대학원생들의 연구공간 마련에 1000억엔 이상을 투입했다. 또한 연구개발의 평가시스템도 도입했다.

 제2기(2000∼2005년)부터는 과학기술정책위원회 산하에 4개 워킹그룹을 설치해 정책지원의 성과를 심의하고 있다. 제2기의 기본방침은 ‘과학기술시스템의 개혁’이며 세부적 추진사항으로는 성과를 낼수 있는 경쟁적 환경 정비, 국가적·사회적 과제에 대응한 연구개발분야에 자원 중점화, 산학관 협력에 의한 산업기술력 강화, 장기적 관점의 인재정책 중시 등이 있다. 총 예산은 24조엔이다. <명승욱기자 swmay@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