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유럽의 게임종주국인 영국은 콘솔게임이 전체의 60%를 장악할 정도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버진 매장이 콘솔게임 판촉 차원에서 마련해 놓은 코너.
유럽과 북미지역은 ‘Grand Theft Auto(GTA4)’ 열풍에 휩싸여 있다.
런던 번화가 피카딜리서커스의 버진(Virgin) 2층 매장.
대박 게임인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를 제치고 ‘GTA4’가 판매순위 1위에 올라 있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인 ‘The Times’도 11월 26일자에서 GTA4에 대해 발매 일주일 만에 영국에서 25만장, 북미에서도 100만장이나 팔린 기록적인 게임으로 소개하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플레이스테이션(PS)2용 비디오게임인 ‘GTA’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콘솔게임이 인기를 끌고 있는 외국에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게임이다. 작년 10월에 선보인 ‘GTA3’의 경우 영국 120만장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800만장이나 판매됐다. 영국의 전체 PS2 보급률이 270만대인 것을 감안하면 PS2를 보유한 가정의 절반이 이 게임을 구입한 셈이다.
‘GTA’의 인기비결은 뛰어난 게임 기획력과 완성도 때문. 더구나 ‘GTA4’는 ‘GTA3’가 발매된 지 불과 1년 만에 출시됐음에도 불구하고 전편에 못지 않은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위를 놀라게 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게임타이틀이 조명을 받는 이유는 영국의 저력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GTA4’는 미국 록스타가 배급을 맡고 있지만 영국 DMA사에서 개발한 작품. 미국과 일본이 전체 게임시장의 판도를 좌우하는 가운데 영국의 힘을 드러낸 셈이다.
실제로 영국은 체중은 ‘경량급’에 속하지만 뿜어내는 힘은 ‘중량급’ 이상이다. 스크린다이제스트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영국 내수시장은 전체의 8.7%인 11억파운드(2000년, 2조2000억원)이지만 세계 게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3%로 미국(44.1%), 일본(35.3%)에 이어 3위다. 그만큼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얘기다. 2001년 세계 판매량 10위권의 게임타이틀만 보더라도 콘솔게임인 ‘GTA3’ ‘드라이버2’와 PC게임인 ‘롤러코스터 타이쿤’ ’심 딤 파크’가 모두 영국이 개발한 작품들이다.
그렇다면 영국의 이런 힘인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바로 창의성(creativity)이다. 영국은 셰익스피어부터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인 문호를 배출한 국가다. 또 뮤지컬과 영화, 각종 음악회로 유명한 나라가 바로 영국이기도 하다. 이런 문화적인 인프라는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게임 시나리오 기획력과 창작력을 돋우는 든든한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영국 5대 게임개발사 중 하나인 쿠주엔터테인먼트 이안 바버스탁 사장도 “영국의 힘은 바로 우수한 창의력에서 나온 개발기술”임을 강조한다.
전세계 게임 시장의 35.6%를 미국 시장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영국이 영어권 국가라는 점도 게임산업 발전에 무시할 수 없는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독일이나 프랑스가 언어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것과 달리 영국은 영어권 국가의 특성상 좋은 게임을 만들면 별도의 작업 없이 미국 시장에 바로 내다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가 전세계 공용어이기 때문에 영국은 전세계 시장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영국 자체 게임시장의 규모가 큰 것도 영국의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배경이다.
실제로 영국은 나라 크기에 비해 게임시장이 큰 축에 속한다. 2000년 기준으로 영국 게임시장은 11억파운드로 전체의 8.7%에 달했다. 미국(35.6%), 일본(19.2%)에 이어 세 번째로 규모가 크다. 유럽만 놓고 보면 전체의 26%로 1위를 차지해 유럽의 게임종주국이라는 평가가 무색하지 않다.
영국의 게임 내수시장에 대해 김성덕 판타그램 유럽법인 사장도 “해마다 40% 이상 성장하고 있고,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이라며 전망을 밝게 내다봤다.
특히 영국은 시장의 60%가 비디오 콘솔게임일 정도로 콘솔게임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PC게임은 전체의 10% 내외에 불과하다.
이는 영국의 고유한 가족문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영국인들은 업무가 끝나면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여가시간을 같이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게임 역시 이런 가족문화DHK 맞물려 ‘건전한 놀이문화’의 하나로 정착한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인터랙티브TV(iTV) 게임이 널리 보급돼 있다는 점. 스카이디지털(SkyDigital)의 경우 전체 가입자의 56%가 게임스타 서비스로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의 25%는 매주 정기적으로 게임을 하며, 전체의 40% 이상이 여성층이다. 스카이디지털은 올해 이 게임서비스에서만 2700만파운드(540억원) 가량의 매출을 내다보고 있어 영국 내에서의 인기를 실감케 하고 있다.
물론 최근 들어 영국 거실에도 미국 게임이 침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렉트로닉아츠나 THQ·어클레임 등 미국 퍼블리셔들이 커지면서 에이도스(Eidos)를 위시한 영국 퍼블리셔는 입지가 위축되고 있는가 하면, 영국 게임개발사들도 미국에 속속 인수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영국에서 개발된 게임이 전세계 시장의 15.3%나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에이도스 등 영국 퍼블리셔들을 통한 매출은 6억4500만파운드(1조2900억원)로 전세계 시장의 5.72%에 불과하다(2000년 기준). 게임 스케일이 방대해질수록 대규모 자금이 투자돼야 하는 것을 감안하면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미국의 영향력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하지만 영국은 이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지금까지 영국 게임산업이 회사의 자생적인 노력으로 성장, 발전했다면 앞으로는 산학연이 함께 할 전망이다.
영국 정부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투자유치에 나서는가 하면 브리티시텔레컴(BT)도 3년내에 초고속망 가입자 100만명 실현에 도전하고 있다. 학계에서도 양질의 게임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시스템 마련에 노력하고 있다. 게임 개발사들도 영국 게임산업을 세계 1위 반열에 올려놓기 위해 협회를 결성하는 등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만큼 영국 게임산업은 다시금 고속성장엔진을 달고 비상을 준비중이다.
■Tiga, 정부에 세금감면 요구
최근 영국 게임개발사들은 정부에 세금을 감면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영국 게임산업이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움직임을 주도하는 곳은 작년 3월 발족된 Tiga(The Independent Games Developers Association)다. Tiga는 영국의 전 통상부 장관인 패트리샤 휴이트가 개발사의 권익을 보호하고 투자유치를 위해 만든 단체로 현재 80개 게임개발사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Tiga가 세금감면을 요구하고 나선 근본적인 이유는 전세계 게임시장이 직면한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최근 들어 게임 개발기간이 평균 2년이 넘는 데다 개발비도 100만∼200만파운드(20억∼40억원)를 훌쩍 넘는다. 게임개발에 대한 위험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FIFA·해리포터 등 스포츠나 영화·TV프로그램 각종 라이선스 비용과 게임타이틀 마케팅비도 개발사간의 치열한 경쟁에 따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비용부담이 가중되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게임시장에서도 영화나 음악과 마찬가지로 히트상품이 전체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해버리는 이른바 ‘대박 아니면 쪽박’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게임업계를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Tiga의 프레드 해슨 회장은 “유럽 제1의 내수시장과 전세계 시장점유율 15.3%를 자랑하는 영국도 이런 문제를 겪고 있다”며 나름의 해법찾기에 나선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영화산업의 경우 초창기에는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규모가 컸지만 제대로 된 정책지원을 받지 못해서 미국에 주도권을 내주는 위기에 봉착했다”며 “지금 영국 게임산업은 영화산업과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이 해슨 회장의 주장이다.
“유럽의 게임 종주국인 영국의 게임산업도 제때 투자와 지원을 받지 못하면 유럽 제1의 게임시장을 다른 나라에 내줄지도 모른다”는 해슨 회장의 주장은 전세계 게임산업이 유사한 문제에 봉착해 있는 현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지인터넷카페, 전세계 인터넷 보급에 일조
우리나라 게임산업이 몇 년 사이 급속하게 성장하게 된 배경 중 하나로 PC방의 활성화를 꼽는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동네마다 3∼4개씩 들어선 PC방은 스타크래프트 열풍과 온라인게임 붐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큰 PC방도 세계 최고의 PC방 산업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업체가 가지고 있을까. 정답은 아니다. 영국 벤처기업 이지에브리싱(Easyeverything)그룹이 만든 전세계 PC방 프랜차이즈 업체 ‘이지인터넷카페(EasyInternetcafe)’는 세계에서 가장 큰 PC방 기네스 기록을 갖고 있다. 미국 뉴욕의 경우 컴퓨터가 800대에 이른다.
이 회사 설립자인 스텔로이스 회장은 ‘커피, 도넛, 다운로드’라는 참신한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전세계 대형 PC방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런던 토튼햄커튼 로드. 주홍빛 간판이 유난히 눈길을 끄는 이지인터넷카페에 들어서면 역시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대형 도서관을 연상케 하는 100평이 넘는 실내공간에 컴퓨터 수도 350여대에 이른다.
PC방에서 파는 커피조차 네슬레만을 고집할 정도로 쾌적한 실내환경을 자랑하며 컴퓨터도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니면 비치해놓지 않는다. 우리나라 PC방이 동네 시장만을 보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때 이 회사는 전세계에 고급 PC방 체인점을 만들고 있었던 것.
요금도 시간당 요금, 종일제 요금, 붐비는 시간별 요금, 월정액제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지인터넷페이스의 한 점원은 “정액제의 경우 월 9파운드에 불과해 점심시간만 넘기면 인터넷을 하려는 사람들로 만원을 이룬다”고 인기를 전했다.
이용자들의 대부분은 아직 인터넷 서핑이나 e메일 확인을 주로 많이 이용하지만 온라인게임, 음악파일 다운로드 등 온라인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산업의 중요한 인프라로서 이지인터넷카페의 잠재력은 크다.
영국의 한 젊은 기업이 만든 이 PC방 체인점의 수가 현재 런던·파리·뮌헨·바르셀로나·마드리드 등 유럽에만 20개가 넘어서면서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가 낮은 각 나라에서 사람들이 인터넷을 접속할 수 있는 일종의 관문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런던(영국)=정은아기자 eajung@etnews.co.kr
류현정기자 dreamsho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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