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도쿄대의 교훈

◆홍대일 <대구테크노파크 사업단장 dihong@ttp.org> 

 ‘지구의 둘레는 대략 몇 ㎞나 될까’ ‘도쿄와 삿포로 사이의 직선거리는’. 이러한 질문에 비슷하게라도 답을 맞춘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것도 일본 최고의 수재들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도쿄대에서 이과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질문에서 말이다. 심지어는 직선거리 831㎞인 도쿄-삿포로간 거리를 100㎞ 이하라고 대답하거나 2㎝인 1엔짜리 동전지름을 0.1㎝로, 1㎜인 종이의 두께를 1000마이크론이라고 답한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 실제로 도쿄대 불문과와 철학과를 졸업한 저자가 1996년부터 2년간 도쿄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경험한 내용을 쓴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 다치바나가 쓴 이 책은 지난해 출간돼 일본열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정치·사회 전반의 문제를 특유의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으로 분석한 이 책에서 그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일본 경제위기의 주범은 다름 아닌 ‘도쿄대’라고 못박는다.

 주입식 교육으로 제대로 된 문장도 못쓰는 학생들이 태반인가 하면 물리학·생물학 등 기초과학을 전혀 배우지 않은 학생들이 공대·의대로 진학하거나 자격이 안되도 대충 학점만 채우면 졸업시켜 ‘도쿄대 간판’을 단 실력 없는 사회지도층 인사를 양산함으로써 오늘날 일본 경제붕괴의 위기를 몰고 왔다는 작가의 예리한 지적을 읽고 있노라니 놀라움을 넘어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이는 바로 남의 이야기가 아닌 ‘교육개혁’이란 미명하에 진행돼 온 우리의 교육현실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주입식 교육의 폐해와 함께 기초과학교육의 황폐화 결과가 바로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청소년들의 기초과학 및 이공계 기피현상은 결국 산업 전반의 붕괴를 불러올 수 있고 나아가 국가의 앞날에 큰 암운을 드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려워진 경제환경 속에 ‘부실벤처 퇴출’ 등 이래저래 몸살을 앓고 있는 벤처업계의 상황은 ‘이공계의 위기’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지방은 또 어떤가. 얼마 전 마무리된 국회 국감자료를 통해 보면 지난 6월 현재 벤처기업 확인업체 가운데 72.7%가 수도권에 밀집했고, 이들 중 62.2%는 서울업체인 반면 지방업체들은 겨우 27.3%에 불과해 지역 균형발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국회의원들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벤처투자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비수도권 지역에는 자금·인력·정보 등 인프라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이 같은 지역편중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며,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됨으로써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은 가속화되고 지방은 고립된 상황에서 자기성장의 한계에 빠져 황폐화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경제 활성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바로 첨단산업의 육성과 더불어 전통산업의 기술고도화가 한 해법이 될 수 있다. 축적된 자원과 역량을 활성화시키는 동시에 신기술을 도입하고 창출하는 일에 있어 테크노파크는 첨단산업의 기반조성과 전통산업의 국제적 연계에 큰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테크노파크는 명실공히 지역혁신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지방정부, 대학과 연구소, 기업간의 연계를 주도하고 사람간에 원만한 소통이 이뤄져 상생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 결과는 중앙정부의 기능을 보강시킬 뿐 아니라 지역경제의 활성화로도 이어질 것이다. 이제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자식들이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지 않도록 유능한 젊은이들이 일할 수 있는 직장을 우리의 터전에 창출해야 한다. 아무리 벤처환경이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 벤처 빌딩에는 오늘도 24시간 불을 밝히고 땀을 쏟으며 연구에 몰두하는 젊은 두뇌들이 있다. 이들이 있기에 우리의 내일이 밝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