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 웨이퍼는 반도체산업의 풍향계다. 반도체 제조 원재료 비중의 25%를 차지하며 소자업체들의 가동률과 칩 생산량 등 반도체산업과 경기에 가장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특히 웨이퍼는 지난해 반도체 전공정 재료시장 규모(약 120억달러) 중 41%인 54억달러 규모에 달할 정도로 반도체 전공정 재료의 핵심이다.
웨이퍼 업계에는 현재 구조조정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미 올해 초에 3위 스미토모가 5위 미쓰비시를 합병, ‘섬코(SUMKO)’를 탄생시키며 일약 2위로 부상했다.
세계 웨이퍼시장은 앞으로 선두 신에츠(shinetsu)와 섬코, 고마쓰 등 일본의 업체와 독일 바커, 미국 엠이엠씨(MEMC)간의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생존경쟁 구도로 전개될 전망이다.
이처럼 미국·일본업체의 선두경쟁 구도에 맞서 메모리 강국 코리아의 자존심을 걸고 도전장을 던진 업체가 바로 LG실트론(대표 정두호 http://www.lgsiltron.co.kr)이다.
LG실트론은 현재 경북 구미에 12인치 전용공장을 건설하는 등 세계 3대 종합 웨이퍼회사 등극을 목표로 총력전을 펴고 있다.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구미 제3공장이 내년 중순께 완공되면 월 7만5000장을 양산할 수 있어 세계적 수준의 12인치 웨이퍼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LG실트론은 이를 바탕으로 2007년까지 기업 경쟁력 1위, 매출 1조원의 초우량 웨이퍼 회사를 만들겠다는 목표다.
LG실트론은 특히 주력제품인 6인치·8인치 실리콘 웨이퍼 외에 저전력·고성능 비메모리 반도체용 웨이퍼로 주목받는 SOI(Silicon On Iinsulator) 웨이퍼를 개발, 실험 생산을 거쳐 내년 이천공장에 양산시설을 갖출 계획이다.
어닐드 웨이퍼 또한 LG실트론이 내세우는 다크호스다. 회사측은 “이 제품이 반도체 소자업체들의 0.13미크론(1㎛은 100만분의 1m) 이하의 극미세 회로 수율 및 품질개선에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세계 웨이퍼시장의 절대강자인 신에츠의 아성에 도전하는 LG실트론의 강점은 6인치 및 8인치 프라임웨이퍼(소자제작에 직접 쓰이는 웨이퍼)가 세계적인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으며 지속적인 경영 혁신활동을 통해 탄탄한 내부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지난 7월 고객관계관리(CRM)시스템을 위한 웨이퍼 전문 웹사이트(http://www.waferlg.com)를 출범시켜 생산시스템과 경영관리를 총괄하며 향후 모든 웨이퍼 매출을 웹사이트를 통해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회사측은 자원과 인력 등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최적화해 효율적인 경영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LG실트론이 한국을 뛰어넘는 세계적인 종합 웨이퍼업체가 되려면 국내 특정 업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수익구조를 혁신해야 하며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LG실트론을 포함한 후발업체들의 끊임없는 도전에도 불구, 선두를 고수하고 있는 신에츠(회장 가나가와 지히로 http://www.shinetsu.co.jp)도 지난해 시장규모가 31% 하락하는 등 극심한 웨이퍼시장 불황에도 매출은 오히려 19.4% 증가하는 등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960년 설립 이후 웨이퍼 업계 리딩컴퍼니로 확고히 자리잡은 신에츠는 투자여력이 충분해 당분간 선두자리는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신에츠의 가장 큰 경쟁력은 ‘웨이퍼 백화점’이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제품군을 확보해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이에따라 웬만한 경기침체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게 강점이다.
신에츠는 실제 반도체제조용 프라임 웨이퍼 외에도 어닐드 웨이퍼, SOI 웨이퍼, 갈륨인(GaP)·갈륨비소(GaAs) 웨이퍼 등 화합물 웨이퍼까지 거의 모든 웨이퍼 제품군을 확보하고 있다.
모 기업인 신에츠화학을 통한 반도체 전후방 재료산업과의 기술연계도 큰 강점이다. 신에츠화학은 웨이퍼 외에도 세계적인 품질의 포토레지스트, 회로보호용 봉지제(EMC), 쿼츠웨어(석영용기), BGA용 테이프, 희토류 자석, 광학재료 등을 생산한다. 이들 모두 세계시장 점유율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경쟁력 있는 제품이어서 웨이퍼사업과의 시너지효과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글로벌화면에서도 신에츠의 입지는 탄탄하기 그지없다. 이 회사는 현재 일본과 미국, 말레이시아의 현지공장에서 웨이퍼를 생산한다. 지난 7월엔 말레이시아의 8인치 웨이퍼공장 증설로 월 160만 장의 웨이퍼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차세대 웨이퍼인 12인치 웨이퍼에 대한 투자도 가속화하고 있다. 신에츠는 이미 일본 후쿠시마 시라가와의 12인치 웨이퍼 공장에 월 7만5000장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 대량 생산체제에 접어들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신에츠가 매출의 상당부분을 일본 및 아시아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점과 규모가 큰 만큼 빠른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점만 보완한다면 앞으로도 상당기간 웨이퍼 최강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에츠의 위상은 LG실트론과의 외형상 비교에서도 잘 드러난다. 지난해 신에츠의 매출은 15억달러로 LG실트론(2억2400만달러)의 6배를 넘는다. 세계시장 점유율도 무려 24.5%로 LG실트론(3.8%)과는 비교 자체가 무리다.
그러나 진짜 승부는 현재 웨이퍼업계 최대 화두인 12인치(300㎜) 시장에서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재 12인치 웨이퍼 생산능력은 신에츠가 7만5000장으로 약 1만장선인 LG실트론을 압도하고 있다. 하지만 LG실트론의 증설이 완료되면 12인치 분야에서도 대등한 경쟁력을 갖추게 돼 승부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LG실트론이 내년 하반기로 예상되는 12인치 웨이퍼시장의 도약기에 맞춰 공룡 신에츠와의 경쟁에서 얼마나 선전할 수 있을지 웨이퍼업계를 포함해 많은 반도체인들이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정두호 LG실트론 사장>
“지금까지 많은 경쟁업체들이 합병하거나 사라져갔습니다. 현재 LG실트론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7, 8위권에 머물러 있으나 2005년까지 세계 3대 종합 웨이퍼업체로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6인치·8인치 실리콘 웨이퍼에서부터 에피 웨이퍼, SOI 웨이퍼, 어닐드 웨이퍼까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가진 종합 웨이퍼회사를 지향하는 정두호 사장(58)은 세계적 웨이퍼회사로 발돋움하겠다는 목표가 분명하다.
더이상 한국내 경쟁은 의미가 없으며 기술과 가격경쟁력을 확보해 세계적 웨이퍼업체들과 경쟁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 사장이 직접 해외시장 개척에 발벗고 뛰고 있다. 그 결과 2년째 계속되고 있는 반도체업계 불황에도 불구, 올 여름부터 매출이 예년 수준을 회복했다.
“6인치 웨이퍼에서 8인치 웨이퍼 시대로 넘어갈 때 여러 회사들이 낙오했습니다. 지금은 8인치 웨이퍼에서 12인치 웨이퍼로 전환하는 시점입니다. 정확한 시기에 12인치 웨이퍼 전용공장을 건설해 향후 12인치 웨이퍼 시대를 주도할 것입니다.”
정 사장은 구미의 12인치 웨이퍼 전용공장(구미 제3공장)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경쟁 웨이퍼 업체들이 투자시기를 저울질할 때 과감하게 건설을 결정했던 것이다. 내년 5월 공장이 완공되면 신에츠, 섬코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12인치 웨이퍼를 본격 양산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LG실트론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인가라는 질문에 누구나 ‘그렇다’는 대답이 나올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정 사장은 LG실트론을 세계적인 웨이퍼 업체로 만드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정 사장은 지난 70년 럭키에 입사, 96년 LG화학 전무, 2000년 LG화학 부사장을 거처 2001년 1월 LG실트론 사장에 취임한 정통 LG맨이다.
<가나가와 지히로 신에츠 회장>
“저는 경쟁사들에 비해 몇개월이라도 빠르게 12인치 웨이퍼에 투자하는 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영감이 있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승리할 것으로 믿습니다.”
가나가와 지히로 신에츠 회장(76)은 현재 증설중인 일본 후쿠야마현 시라가와의 12인치 웨이퍼 공장의 성공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2년전 가나가와 회장의 전격 결정으로 신에츠는 업계 최초로 12인치 웨이퍼 공장을 건설했다. 현재 월 7만5000장을 양산중이며 증설 후에는 월 10만장 수준으로 생산량이 늘어나게 된다. 또 향후 증설작업을 계속해 월 30만장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12인치 웨이퍼공장 건설은 지난 12년간 ‘신에츠호’를 이끌며 거둔 성공을 바탕으로 가나가와 회장이 직접 결정한 것이다.
사실 신에츠가 웨이퍼에서 PVC까지 영위한 세계적인 종합 화학회사로 발돋움하기까지는 가나가와 회장의 역량이 가장 컸다. 업계 전문가들은 “지난 12년간 기록적인 신에츠의 성공은 76세의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가나가와 회장의 능력이 바탕이 됐다”며 “그가 은퇴하면 신에츠의 성공도 장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신에츠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제품만 육성하고 키웁니다. 경영자는 진행된 투자계획에 밀착해 연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다른 기업이 경쟁적으로 중국에 진출하고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음에도 신에츠는 일본 화학산업 기반의 3∼4가지 사업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중국 진출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 경쟁사들의 중국 투자에 대해서도 그는 “중국으로 가게 내버려 두라”고 일축한다. 이는 정치적으로 안정된 곳에 투자해야 한다는 그의 독특한 경영철학 때문이다.
<손재권기자 gjac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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