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기피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과학기술인력 수급차질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는 과학기술인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인력을 양성하겠다고 이구동성이다. 그러나 두 후보의 공약을 바라보는 과학기술인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두 후보는 모두 과학기술입국을 외치며 대동소이한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근본적인 치유책보다는 선심성 구호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정치권과 기업 및 사회 전반에 만연된 과학기술자에 대한 냉대를 치유하지 않고는 문제해결이 안된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더욱이 두 후보 모두 과학기술과는 거리가 먼 법조인 출신이라 점은 이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또다른 이유가 되고 있다. 과학기술입국을 외치는 두 후보에게 주어진 과제는 공약 자체보다는 오히려 과학기술인들과의 신뢰회복이다.
◇구호만으로 인력양성 되나=이 후보와 노 후보는 경쟁잭으로 과학기술분야 인력양성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두 후보의 인력양성 공약은 구호에 그칠 공산이 클 것으로 과학기술인들은 예상하고 있다. 두 후보 모두 근본적인 처방책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과학기술전략분야 특성화대학 및 대학원 중점 육성, 과학영재 양성체제 구축을 실천방안으로 내놓았다. 노 후보는 이공계 대학생 3명 중 1명에게 장학금 제공, 가칭 이공계대학지원법 제정을 제시했다. 그러나 과학기술인들은 이공계 기피현상이 취업과 승진의 불이익, 힘들고 어려운 일을 싫어하는 젊은이들의 인식, 사회지도층 진입에서의 소외 등에 더 큰 원인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두 후보가 제시한 인력양성체계 개선방안은 이같은 근본원인을 치유하는 데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다만 과학기술인 국회 비례대표제에 반영, 이공계 전공자 공무원 신규임용시 임용비율할당제 도입(17%에서 50%로) 등과 같은 노 후보의 공약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에 접근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실업자 양산 되레 우려=두 후보의 거창한 인력양성 공약이 자칫 실업자만 양산하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우선 인력양성 계획이 정확한 인력수급현황에 기초했다기보다 IT·과학기술에 대한 장밋빛 청사진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과학기술분야 인력수급이 갈수록 차질을 빚을 것이 자명하지만 공급 위주의 정책만으로는 문제해결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수요 측면에서 보면 이공계 고급두뇌의 해외유출과 기업의 해외인력 우대성향이 중요한 변수다.
인력수급에 대한 정확한 예측없이 섣불리 인력만 양성한다면 이들을 받아들일 곳이 없게 되고 비록 수요가 있더라도 공급되는 인력의 질이 수요측에서 원하는 수준이 안되면 결과는 마찬가지다. 인력양성은 공급과 수요문제를 함께 고려해 추진돼야 하나 두 후보의 공약은 공급쪽에만 치우쳐 있어 자칫 실업자 양산이라는 예상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학원 문제해결이 더 중요=고급두뇌의 해외유출이나 기업들의 해외인력 선호는 이공계 대학원의 고질적인 병폐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후보들은 대학원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미국의 경우 이공계 대학원생들은 등록금과 함께 생활비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 이에 반해 국내에서는 연구비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연구활동 참여에 따른 인건비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고 대학원생들은 주장하고 있다. 열악한 대학원 환경 때문에 고급두뇌들은 대부분 해외유학길에 오르고 있다. 기업들이 해외두뇌를 우대하는 데는 대학원의 고질적인 문제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처우개선에는 호감=과학기술인들은 사기진작을 위한 과학기술인 공제제도 정착, 연금제 도입방안 검토, 과학기술인 실질적인 계약 연봉제 실현, 연구성과 인센티브 확대, 병역특례제도 개선, 해외연수, 안식년제 도입 등에는 모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공제제도 정착이나 연금제 도입을 위해서는 정부의 자금지원이 수반돼야 하기 때문에 집권 후에 약속이 지켜질지는 두고봐야 한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두 후보가 제시한 정부출연연구소의 기본인건비 상향지원은 선심성 공약에 그칠 공산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96년 정부출연연구소의 경쟁력 향상을 내세워 도입한 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PBS)는 효과 못지않게 많은 부작용을 낳아 연구원들의 원성을 사고 있지만 이의 폐지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현재 35%에도 못미치는 기본 인건비 지원비율을 대폭 상향조정할 경우 PBS의 효용성이 떨어질 수 있어 존폐문제로까지 연결된다. 이에 대한 판단없는 무조건적인 상향조정 약속은 현실성이 떨어져 보인다.
◇출연연 운영방식은 대조=과학기술인 사이의 가장 큰 논란 중 하나가 42개에 달하는 정부출연연구소 운영방식 문제다. 정부출연연을 과거대로 각 부처 산하로 복귀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기존대로 유지하되 연구회에 R&D 예산분배권을 줘 권한과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맞서고 있다. 정부는 각 부처에 소속돼있던 정부출연연구소를 주무부처의 과도한 규제, 연구분야 중복, 경쟁체제 미흡 등을 이유로 지난 99년 국무총리 산하로 일원화시키고 이를 지도·관할하기 위해 산업기술연구회 등 5개 연구회를 설치했다. 그러나 출연연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연구회가 제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와 노 후보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지만 한나라당은 출연연의 부처 복귀에, 민주당은 연구회 강화를 지지하고 있는 입장이다.
<대선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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