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국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정보화기술연구소장(u코리아포럼 준비위원장)
컴퓨터는 왜 이토록 사용하기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존재일까. 오늘날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어머니로 불리는 제록스사 팰러앨토 연구센터의 마크 와이저(M Weiser) 박사도 바로 이같은 소박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했다.
그와 동료들은 똑같은 환경에서 아마추어 연주자는 끊임없이 악보와 주법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전문 연주자는 단지 음악의 완성도에만 신경쓰는 사실에 주목했다. 예컨대 이용자에게 최상의 도구란 전문 연주자처럼 그 도구를 이용하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에만 집중함으로써 업무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보았다. 바로 이 전문 연주자의 모습에서 마크 와이저는 ‘향후 10년 내지 20년 이후의 컴퓨터는 어떻게 될 것인가, 아니 어떤 모습이 돼야 하는가’라는 명제에 유비쿼터스 컴퓨팅이란 개념으로 대응한다.
그 결과 미국의 대표적 과학저널의 하나인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91년 9월호에는 컴퓨터 과학자들이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원전이라 부르는 ‘21세기를 위한 컴퓨터(The Computer for the 21st Century)’라는 와이저의 기념비적 논문이 실린다. 이 논문에서 그는 “미래의 컴퓨터는 우리들이 그 존재를 의식하지 않은 형태로 생활 속에 파고들 것이다. 하나의 방에 수백개의 컴퓨터가 자리잡고 그것들이 케이블과 양방향 무선 네트워크로 상호 접속될 것”으로 예견한다.
그로부터 10년, 미국을 비롯해 일본, 유럽 등 세계 각국에서는 ‘모바일, 브로드밴드, 극소형 컴퓨터, IPv6’의 세계가 창출해내는 유비쿼터스 혁명이야말로 새로운 지식정보국가 패러다임이란 전제아래 정부, 기업, 연구소가 유비쿼터스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IT혁명의 패권국가로서 미국은 국가기관, 유수 대학 연구소, 첨단기업 등을 앞세워 유비쿼터스 혁명을 선도하고 있다. 미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대기업의 자금지원하에 몇몇 대학에서 수행하고 있는 유비쿼터스 프로젝트는 근미래의 경제사회시스템의 근간이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예를 들어 UC버클리의 ‘스마트 먼지(Smart Dust)’ 프로젝트는 먼지처럼 작고 가벼워 공중에 떠다닐 수 있는 입자에 컴퓨터, 센서, 태양전지 등을 탑재함으로써 자율적인 센서 네트워크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극소형 칩 개발을 목표로 한다. 이 시스템이 개발되면 군사 및 첩보 용도는 물론이고 제품품질이나 유통경로 관리에 일대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대학의 유비쿼터스 컴퓨팅 연구로는 MIT 미디어랩의 생각하는 사물(Things That Think)프로젝트를 비롯해 21세기 바코드라고 할 수 있는 자동ID센터의 스마트 태그 프로젝트, 그리고 컴퓨터과학연구소(Computer Science Lab)이 수행중인 옥시겐(Oxygen) 프로젝트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옥시겐 프로젝트는 컴퓨터가 산소와 같이 풍부해져 우리의 환경 자체로 파고드는 인간중심의 컴퓨터 환경을 추구한다. 특별한 지식 없이도 언어나 시각 등 자연 인터페이스를 매개로 언제 어디서나 사용자 요구(needs)에 맞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컴퓨팅 환경을 구현하는 것이다. 산소는 집의 지하실, 사무실 벽, 차의 트렁크 등에 심어지는 내장형 컴퓨터 중심의 ‘E21s’, 어디서나 사용자의 의사소통 및 컴퓨터 이용을 지원하는 핸드헬드 디바이스 형태의 ‘H21s’, 그리고 주변 환경변화에 맞게 스스로 설정이 가능한 네트워크로서의 ‘N21s’, 환경이나 사용자의 요구 변화에 맞는 적절한 서비스를 지원하는 소프트웨어를 지칭하는 ‘O2s’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같은 환경은 이용자에게 아무런 부담을 지우지 않고 하인처럼 묵묵히 생활환경의 대부분을 지원한다.
한편 미국 기술표준의 총본산인 국가표준기술원(NIST)의 정보기술응용국(ITAO)은 첨단 기술 프로그램(Advance Technology Program)의 일환으로 퍼베이시브 컴퓨팅(pervasive computing) 을 지원한다. ITAO가 지원하는 퍼베이시브 컴퓨팅은 ‘누구나 쉽게 접속 가능한 무수한 컴퓨터 디바이스들이 유비쿼터스 네트워크에 연결돼 있는 컴퓨터 환경’으로 정의할 수 있다. 예컨대 컴퓨터나 센서가 수많은 디바이스, 기기, 장치, 가정, 사무실, 공장 심지어 양복 등 모든 곳에 존재하는 상황을 말한다. 이같은 장치들은 초소형이면서도 분산되고 때로는 내장 디바이스와 대화하기 위해 통일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요구한다. 무엇보다 미국은 자국 정보산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는 일상활동과 컴퓨터간의 통합을 위한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기술과 표준 개발을 관건으로 보고 있다. 이밖에도 MS의 이지라이빙(EasyLiving)과 HP의 쿨타운(CoolTown) 프로젝트 등이 차세대 디지털라이프를 구현하는 대표적 유비쿼터스 프로젝트다.
일본의 유비쿼터스 컴퓨팅 연구는 ‘어디에나 컴퓨터 환경’이라는 미래를 겨냥한 신기술 체제의 확립을 목표로 지난 84년 도쿄대학 사카무라(坂村 健) 교수가 중심이 돼 제안한 TRON(The Realtime Operating System Nucleus ) 프로젝트에서 출발한다. 사카무라 교수는 모든 컴퓨터의 기본 소프트웨어(OS)를 공통화, 메이커, 기종의 종류에 상관없이 호환성을 실현하는 환경을 구축한다는 기본개념을 바탕으로 전뇌빌딩, 전뇌주택, 전뇌도시, 전뇌자동차망 등의 응용 프로젝트를 활발하게 제안하고 있다. 현재 일본은 모든 일상 사물과 생활공간에 다양한 기능을 갖는 마이크로 컴퓨터 칩들을 탑재한 지적물체(intelligent object) 개발에 전력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자국이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모바일, 광섬유망, 가전, IPv6 그리고 부품 및 재료, 정밀가공 기술 등과 연계시킨 포스트 e재팬 전략 차원에서 유비쿼터스 혁명에 대응하고 있다. 이에 따라 총무성은 2001년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기술의 장래 전망에 관한 조사연구회’를 출범시켜, 관련 기술개발에 관한 국내외 연구동향 등을 조사 및 분석함과 동시에 몇 가지 중점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먼저 의복, 서류, 유가증권, 브랜드 제품에 마이크로 칩을 내장시켜 수백억개의 단말간 협조·제어가 가능한 네트워크 기술을 개발하는 ‘초소형 칩 네트워크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있다. 또 비접촉카드를 사용해 순식간에 어떤 단말이라도 마치 자신의 단말처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무엇이든 MY 단말 프로젝트’, 언제 어디에서도 네트워크에 연결, 사무실과 동일한 통신환경을 실현하게 해주는 ‘어디서든 네트워크 프로젝트’ 등을 핵심 전략과제로 추진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최근에는 총무성 주관으로 민간, 대학 전문가 그리고 통신사업자와 가전메이커 등으로 구성된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포럼을 발족시켜 유비쿼터스 국가기반 구축에 정부와 산·학·연이 공동으로 대응하는 방안도 모색중이다.
◆EU의 ‘사라지는 컴퓨팅’ 프로젝트
유럽은 2001년에 시작된 정보화사회기술계획(IST)의 일환으로 미래기술계획(FET)이 자금을 지원하는 ‘사라지는 컴퓨팅 계획(Disappearing Computing Initiative)’을 중심으로 유비쿼터스 혁명에 대한 대응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정보기술을 일상사물과 환경 속에 통합해 인간의 생활을 지원하고 개선하고자 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일상 사물에 센서·구동기·프로세서 등을 식재해 사물 고유의 기능에 정보처리 및 교환기능이 증진된 정보 인공물(information artifacts)을 개발하려는 것이다. 동시에 정보 인공물 상호간의 지능적이고 자율적인 감지와 무선통신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과 가치를 창출하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일상활동을 지원 및 향상시킬 수 있는 환경구축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연구소·대학·기업이 공동으로 사물의 지능화를 위한 ‘Smart Its’ 프로젝트, 센서가 포함된 투명한 잉크를 이용해 기존 종이의 용도를 증진하는 시스템 개발을 위한 ‘Paper++’ 프로젝트, u커머스와 관련한 ‘Grocer’ 프로젝트 등 16개의 독립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스위스 연방기술연구소(ETH)를 비롯한 독일의 TecO, 핀란드의 국립기술연구소(Technical Research Center-VTT) 등이 공동으로 진행중인 ‘Smart Its’ 프로젝트가 가장 눈길을 끈다. 이 프로젝트는 일상사물에 소형의 내장형 디바이스인 ‘Smart-Its’를 삽입해 감지, 인식, 컴퓨팅 및 통신기능을 지닌 정보 인공물 개발을 목적으로 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 지능화된 사물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협력적 상황인식과 활동이 가능한 새로운 환경을 구현하고자 한다.
이같은 프로젝트의 실현을 위해 TecO가 개발중인 ‘미디어 컵(Mediacup)’은 일반 머그컵에 Smart Its를 보이지 않게 탑재함으로써 컵에 대한 정보를 인식·처리·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이같은 미디어 컵을 이용해 회의실의 사용 여부를 파악하고 사용자와 관련한 정보를 알 수 있으며 손목시계형 컴퓨터를 통해 내용물의 온도·분량 등 정보도 교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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