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세상속으로]KCC정보통신 `열린마당`

 

 어느덧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 1년간 공들인 것의 결과가 나오는 시기인 만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KCC정보통신(대표 이상현 http://www.kcc.co.kr)이 발행하는 ‘열린마당(11·12월호)’에 실린 ‘풍요로운 결실은 마지막 땀방울에 맺힌다’를 소개한다.

 필자는 3년 남짓 시골에 살고 있다. 처음 이곳에 옮겨 왔을 때는 벼와 피도 구별하지 못했다. 벼와 피를 구별할 수 있었던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지금은 농약을 살포해 피가 적지만 예전에는 논매기만큼이나 피사리(피를 뽑아내는 일)가 힘들었다고 한다.

 피는 풀이지만 곡식과 같은 종류다. 그 열매 또한 먹을 만하다. 문헌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오곡 가운데 피가 포함돼 있었다고 한다.

 피는 불량한 환경에서도 적응하는 힘이 강해 구황작물로 애용됐다. 벼가 재배되기 힘든 산간지나 북부지방의 냉수답에서 재배됐다. 평야지대에서는 거의 재배하지 않는다. 벼처럼 영양가가 있거나 맛이 좋지는 않다.

 오곡이 풍성하면 피를 먹는 사람이 없다. 흉년에야 피라도 훑어 죽을 쒀서 연명하는 것이다. 얼마나 영양분이 없으면 ‘피죽도 얻어먹지 못했나’라는 말이 있겠는가.

 우리가 사는 지금 세상은 정말이지 풍요롭다. 들판에는 오곡만 풍성하다. 아니, 오곡 가운데 기름진 벼만 풍성하다. 기장·보리·콩도 이제는 보기 어렵다.

 오곡은 우리 식생활에 중요한 다섯 가지 곡식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각자가 다 중요한 곡식인데도 지금은 벼만 남아 주곡으로 여겨지고 있다.

 지금의 농부는 볍씨만 뿌린다. 보리와 기장도 거의 재배하지 않는데 피를 일부러 심을 농부는 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피는 뿌리지 않아도 벼에 기생해 저절로 생장한다. 소외된 만큼이나 강하게 생장한다.

 벼는 어떠한가. 지금의 벼는 저절로 생장하지 못한다. 좋은 볍씨를 가려 좋은 토양에 뿌려야 한다. 생장과정에 적정한 여건을 만들어 주고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오곡이 함께 생장했던 시대에는 벼도 지금같이 연약하지 않았을 것 같다. 토양에 따라 제각기 최적의 조건을 갖춰 생장했을 것이고 큰 재앙이 없는 수확기에는 나름대로 풍성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오곡밥을 골고루 섭취해서 영양 면에서도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예로부터 ‘농자천하지대본’이라 했다. 어째서 농사일이 천하의 근본이라 했는가. 농사는 시작과 끝이 달리 없다.

 어느 농부가 한 해 농사만 짓고 마는가. 항상 같은 일을 하건만 농부는 매사에 정성을 기울인다. 볍씨를 고르는 일, 파종하는 일, 모내기, 갈무리까지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다.

 한 해 농사를 망쳤다고 해서 논을 내버려두는 일도 없다. 그들은 내년을 기대하며 인내한다. 농사일에는 요행이 없다. 그저 매사에 정성을 다할 뿐이다. 그리고 조용히 결과를 기다린다.

 ‘진인사대천명’, 그것이 농부의 본심이다. 이러한 마음이 어찌 천하의 근본이 아니겠는가. 요즈음 사람들은 하던 일이 뜻대로 안되면 그 자리에서 뒤엎기 일쑤다. 일을 시작할 때는 제법 정성을 기울이고 어느 정도 성과가 나타나면 자만에 빠진다. 그리고 안일해지고 종단에는 망치고 만다.

 마지막까지 잘 익은 벼를 거둘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쭉정이 벼는 피만도 못하다. 작은 일 하나에도 정성을 기울이는 농부의 마음으로 한 해를 갈무리하자. 한줌 알찬 벼를 움켜주고 미소짓는 농부의 충만함을 생각해보라. 이 얼마나 가상한가.

 <홍순석 강남대 인문학부 교수, 인문과학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