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 SI시장은 지난해보다 양적으로 15% 증가가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매출액이 1조원 내외에 근접할 것으로 보이는 기업도 지난해 1개사에서 3개사로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이같은 실적에 걸맞게 과연 SI업계가 내실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업계 종사자들조차도 의문을 던지고 있다. SI분야에서 세계 10위권은 고사하고 20위권에도 드는 기업이 한곳도 없다는 현실이 업계의 취약한 대외경쟁력을 방증해주고 있다. 한 마디로 ‘우물 안의 개구리’인 셈이다. 대기업의 경우는 이런 상황이 심화돼 소속그룹내에서 마저 외면받는 경우가 다반사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상당수의 SI업체들이 소속그룹이 발주하는 전략수립이나 IT구축 프로젝트를 외국기업들에 빼앗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기업 계열의 SI회사들은 대부분 외형만 그럴듯할 뿐 적자를 면하기에 급급한 상태다. 최근에 SI업계가 받아들 성적표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속빈 강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건비를 빼면 남는 게 없는 실정이다.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 공공연하게 나도는 ‘평균 이익률 4%’ 설이다. 그런데도 업체간 과당 수주경쟁은 조금도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실제 올 들어서도 수백억원대의 프로젝트 수주전에서 원가에도 못미치는 가격대의 덤핑 입찰을 강행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이에따라 사업예산 대비 프로젝트 낙찰 가격 비율이 40∼50% 이하로까지 급락하는 사태도 비일비재하다.
‘프로젝트 수주=적자’ 등식이 형성되다 보니, 공공부문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공공 사업을 수주하지 않는 것이 적자를 내지 않는 방법”이라는 웃지 못할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과열경쟁은 채산성 악화로 이어지면서 SI업계 전체의 수익성 저하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S사의 공공사업담당 임원은 “SI업계는 그동안 덤핑수주에 ‘피멍’이 든 상태”라며 “사업 수주를 놓고 업체간 진흙땅 싸움이 계속될 경우 대외 경쟁력은 모두 뒷걸음칠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소속그룹에 대한 의존성이 너무 높은 것도 경쟁력 향상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꼽힌다. 30대 SI기업들은 그룹 계열사들의 물량인 ‘선점 시장(captive market)’을 바탕으로 전체 매출의 70∼80% 가량을 채우고 있다. 한 관계자는 “그룹에서는 계열사들이 SI자회사들에게 시스템관리(SM) 서비스 단가를 원가에다 7% 안팎을 더 쳐주고 있다”고 전했다. SI업체들은 이렇게 그룹에서 지원해준 ‘탄알’을 바탕으로 덤핑 입찰을 강행하며 SI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30대 SI기업의 이같은 ‘선점 시장’ 구조가 자율 경쟁을 통한 기업 역량 강화를 저해하는 동시에, 선진 SI 프로세스 도입과 확산을 지연시키는 게 주범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프로젝트 계약·관리 능력 부족과 프로세스가 표준화돼 있지 않은 점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예컨대 아웃소싱 프로세스 측면의 서비스수준협약(SLA) 도출 능력을 비롯, 성과측정 및 관리 체계 등에 있어서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연구개발 활동의 부족도 저부가가치 사업구조를 지속시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기업들이 많은 경험과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있으나 눈앞의 경영실적에 급급해 연구개발 투자는 소홀히 취급하고 있다”며 “기존 경험과 외부의 전문 지식을 연계하여 자체 방법론으로 체화할 수 있는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정부 차원의 계약제도나 수요자측의 SI에 대한 인식부족도 시급히 개선돼야 할 부문이다. 정부는 세제 지원 강화를 비롯해 SI 조달 체계의 개선, 공정한 경쟁 기반 조성에 적극 힘써야 한다는 게 업계의 요구다.
한 외국계 컨설팅회사 대표는 “한국의 SI업체들은 초기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난립하던 500여개의 회사가 치열한 경쟁 끝에 빅3로 재편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사업의 질적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온기홍기자 kho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