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sghong@mail.kookmin.ac.kr
IT산업의 경쟁력이 창의적 전문인력의 양성에 달려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90년대에 들어 소프트웨어산업을 바탕으로 급성장한 아일랜드나 정보통신의 강소국이라 불리는 스웨덴, 핀란드 등이 모두 그들이 보유한 양질의 전문인력을 바탕으로 외국인 직접투자를 끌어들이는데 성공했거나 주요 대학을 중심으로 한 IT 클러스터를 바탕으로 발전을 이루었다. 이들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IT산업의 발전도 예외없이 세계적 수준의 창의적 전문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도 일찍부터 IT 전문인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많은 투자를 집중시켜 왔다.
정보통신부는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초중고등학교의 정보통신교육에 대한 지원은 물론 실업계 고등학교와 전문대학의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정보통신 관련 학과에 대한 지원을 추진해왔다. 또 대학의 정보통신 전문인력 양성지원과 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의 설립, 정보통신분야의 국비유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원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T 전문인력 수급이나 질적 수준의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기업들은 IT 전문인력을 구하는데 애를 먹고 있지만 대학을 졸업하는 신규인력은 일자리가 없어 고학력 실업자가 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왜 우리나라는 세계적 수준의 정보통신 전문인력을 양성하지 못하는가.
외국에서 공부한 한국 유학생의 우수성을 보면 재료가 좋지 않아 쓸만한 인재가 양성되지 못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력양성 시스템에 구조적 문제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수천억원을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데도 배출되는 인력의 양적·질적 수준이 개선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적어도 12년간 입학시험을 비롯한 각종 시험을 통해 하나의 정답찾기를 강요받아 온 학생들에게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해야 하는 창의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출신대학의 간판을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는 대다수 학생들에게 자신의 적성이나 잠재력에 관계없이 그저 입학 가능한 분야를 전공으로 선택하도록 강요한다. 사정이 그러하니 전공에 관심없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전공지식이 거의 없다. 각 대학의 특성에 상관없이 전면적인 학부제를 시행한 결과, 전공 이수 학점이 대폭 줄어들어 대충 책가방 운전을 하면서 이런저런 교양과목으로 학점을 채우면 졸업에 문제가 없다. 입학하기가 어렵지 입학만 하면 졸업에 별 어려움이 없는 대학에서 어려운 전공지식을 더 배우려는 학생을 찾기는 어렵다.
우리의 대학에서 사용하는 학생 일인당 교육비는 선진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고 그에 따라 교육환경이나 시설도 낙후될 수밖에 없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대학교육의 대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사립대학에 대해 이렇다 할 지원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대학에 똑같은 기준을 강요한다.
교수들도 학생과 사회의 수요를 반영해 과목을 개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르칠 수 있는 과목을 개설한다. 학생들은 걸핏하면 각종 행사를 핑계로 휴강을 요구하고 대충해도 학점을 쉽게 취득할 수 있는 과목을 골라 수강한다. 기업들은 이런 대학을 불신하여 지원을 외면한다. 한마디로 교수, 학생, 기업, 정부의 도덕적 해이가 팽배한 상태에서 학부제를 비롯한 제도마저 제 역할을 하지 못하여 우리의 인력양성시스템은 총체적 부실덩어리로 전락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IT 전문인력의 육성을 위해 안간힘을 쓴다한들 그 효과가 미미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결국 IT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문인력의 양성은 우리나라 교육체제와 산업인력양성 시스템 전체의 문제다. 지금까지 정부가 시행해온 각종 IT 전문인력 양성사업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인력양성시스템 전반의 개혁이 필수적이다. 정답을 찾기보다는 남과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 지금까지의 방법과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고 이를 과감히 실천에 옮기는 사람, 그리고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변화를 주도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길러낼 수 있는 유연하고 창의적인 인력양성시스템이 구축될 때 우리나라 IT산업의 미래는 밝아질 것이다.
그리하여 IBM이나 MS, HP 같은 세계적인 IT기업들이 국내에서 배출되는 인력을 활용하기 위해 우리에게 투자할 때, 한국의 IT산업은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