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중·일 3국의 정보통신부분 협력의 효과가 강조되고 있다. 지난 9월 말라케시에서 열린 ITU전권위원회에서 3국의 정통부 장관들은 상호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사진 왼쪽부터 이상철 정통부 장관, 가타야마 도라노스케 일본 총무성 장관, 우지촨 중국 신식산업부 장관.
영국의 유력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11월 “높은 컬러 휴대폰 보급률, 데이터서비스 사용률 등으로 아시아가 유럽을 제치고 이동통신의 새로운 패권자로 등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한·중·일 등 동아시아 지역이 소비진작과 탄탄한 외환보유고 등을 근거로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커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중·일 3개국은 첨단기술의 시연장으로, 세계최대의 시장으로 세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통신분야에서 화려한 왕위에 오른 적은 아직 없다. 아시아지역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고 있는 3세대 이동통신 기술도 이른바 ‘미국식(cdma2000)’과 ‘유럽식(WCDMA)’ 표준으로 나뉜다.
◇한·중·일은 차세대 이동통신의 중심=전세계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자중 37%인 3억8000만명은 아시아지역에 몰려있다. 이중 한·중·일 3개국만 2억8000만명에 달한다. 2000년 말까지 세계 1위였다가 2위로 밀려난 서유럽 지역(2억9000만명)과 맞먹는 수다. 1억4500만명의 북미시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중국의 전체인구당 가입자수 비율이 15%에 불과해 큰 시장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유럽지역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다. 확고한 세계최대 시장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무엇보다 무선인터넷 부분의 매출이 급증하는 우리나라와 일본, 가파른 가입자 증가세를 기록하는 중국 등 역동적인 시장이 큰 장점이다. 기술 부분도 시장규모에 걸맞는다. 유럽, 북미지역 사업자들이 하나같이 3세대 이동통신 서비스를 미루는 반면, 세계 최초의 3세대 사업자 NTT도코모를 필두로 일본과 우리나라의 대다수 통신사업자들이 서비스를 시작했거나 내년에 시작한다. 최대시장을 무기로 자체 기술을 세계 차세대이동통신규격으로 승인받은 중국도 만만치 않은 행보다. 중국은 자체기술인 TDS-CDMA에 가장 넓은 주파수대역을 부여, 시장을 매개로한 기술주도권 확보 전략을 명확히 하고 있다. 우리나라로서는 CDMA기술을 상용화하고도 요소기술이 없어 ‘재미를 못 본’ 과오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한·중·일이 시장과 기술을 갖췄다면 필요한 것은 바로 전략이다.
◇전략적인 협력이 필요=한·중·일이 차세대 이동통신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표준선점이 필요하다. 자체표준을 버리고 세계 표준에 보조를 맞추기로 한 일본과 자체표준을 세계표준으로 승인받은 중국, 이동통신 강국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우리나라는 모두 표준선점에 눈독을 들이고 있지만 세계시장에서 크게 위협적이지는 않다. 아시아지역의 표준화 기구인 ATP는 이렇다할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고 3세대 이통기술은 유럽주도의 3GPP와 미국주도의 3GPP2가 세력을 양분하고 있다. 지난 11월 중국, 일본 표준화기구와 차세대이동통신(4G), 차세대통신망(NGN), 차세대인터넷(IPv6) 부분에서 상호협력을 체결한 정보통신기술협회(TTA)의 김홍원 국제협력부장은 “한·중·일 3국이 배타적권리인 특허 등 각자의 지적재산권(IPR)을 선점표준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힘을 가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 지역적, 문화적으로 가까운 3국의 동반자적 역할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김 부장은 “3국의 공통분모는 이동통신분야에서 국가적 차원의 연구개발(R&D)을 수출지향적으로 추진한다는 점”이라며 “차세대 표준선점과 이용측면에서 3국이 협력한다면 퀄컴 등 미국, 유럽 업체가 선점한 요소기술의 힘을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SK텔레콤 차세대기술팀 이동학 과장은 “차세대통신표준 선점과정에서 3국이 합작한 IPR나 표준을 세계시장에 공개한다면 아시아시장을 기반으로 북미, 유럽시장에 진출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표준선점뿐만 아니라 주파수, 위성, 로밍, 무역협정, 공동통화권 등에 공동보조를 맞춤으로써 생기는 시너지효과에 대한 기대도 크다. J폰의 이마무라 미카 총괄부장은 “한국은 일본인이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많이 방문하는 국가”라며 “로밍서비스 협력에 관심이 크고 2∼3년후에는 렌털 베이스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도 있다”고 밝혔다.
◇경쟁속 협력확보가 관건=한·중·일 3국에 각자는 협력 대상인 동시에 잠재적 경쟁상대다. NTT도코모와 KDDI, SK텔레콤, KTF 등은 이미 무선인터넷 솔루션과 콘텐츠 수출을 놓고 유럽, 동남아시아, 중국 등지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이들 한국과 일본 사업자의 기술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미국, 유럽 사업자와 자체 기술을 활용해 견제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통신시장이 하나로 묶이는 3세대 시장이 본격적으로 도래하면 이와 같은 경쟁과 견제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3국간에는 아시아의 리더자리를 놓고 벌이는 주도권 싸움, 역사적인 경쟁관계 등 변수가 추가된다. “아시아지역 표준회의에서 일본은 지나치리 만큼 자기의 입장만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고, 어께에 힘이 잔뜩 들어간 중국과, 일본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도 만만치 않다.” 세계표준회의에 참석해온 한 전문가의 말이다. 그는 “3국이 협력한다고 해도 세계표준 작성에 기술적으로 얼마나 큰 공헌을 하느냐가 관건이므로 만만치 않은게 현실”이라며 “3국이 경쟁을 넘어선 밀접한 협력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일본과 중국을 매개하는 우리나라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베이징=김용석기자 yskim@etnews.co.kr>
◆`경쟁과 협력` 한국 주도여부 통신강국 진입 시험대될 것
세계는 지금 경제블록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기업이 인수합병(M&A)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려 하듯이 국가도 힘을 키우기 위해 블록을 형성하고 있다. 주도권 장악의 방식이 단독 드리블에서 팀워크 플레이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통신산업의 경우는 특히 국가자원의 성격이 강해 경쟁과 협력의 논리가 크게 작용한다.
이 곳 베이징은 내년 상반기쯤으로 예상되는 4개 종합통신사업자의 등장이 통신업계 화두다. 얼마전 뉴욕증시 진출에 성공한 차이나텔레콤을 비롯해 차이나모바일, 차이나유니콤, 차이나넷컴 등으로 압축되는 4개 종합통신사업자가 중국 대륙의 통신서비스시장을 이끌어갈 것이라는 얘기다. 또 이를 주축으로 해 통신장비와 단말기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 일단 어떠한 외풍에도 흔들리지않는 방화벽을 구축하려는 게 중국 통신정책의 근간이다.
중국은 이를 전제로 한 한국, 일본과의 협력를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대등한 협력이나 리더의 위치를 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의 통신서비스를 벤치마킹하면서 음성에서 데이터로 급변하는 통신환경에 발빠르게 적응, 향후 전개될 글로벌 경쟁과 블록화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전략이다.
도쿄는 어떤가. 아직 각국의 울타리를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현재 일본 시장에서 전개되고 있는 통신서비스경쟁을 보면 가히 위협적이다. NTT도코모, KDDI, J폰 등 3대 이동통신서비스사업자간 경쟁은 한국의 이동통신시장경쟁과 비교가 안될 정도다. 2, 3위 사업자간 가입자수가 수시로 변하고 있으며 1위 사업자인 NTT도코모도 한국의 SK텔레콤처럼 부동의 위치가 아니다. 일본 이동통신사업자들은 한국의 단말기 보조금 규제정책에 부러움을 나타낼 정도로 출혈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해외진출도 이미 시작됐다. 아직 빨간불로 받아들이고는 있지않지만 NTT도코모의 경우 이미 세계 8개국 6개 이동전화사업자와 손잡고 자사 무선인터넷인 i모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해외에 직접 플랫폼을 구축하고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통신시장은 중국의 철저한 계획경제와 일본의 시장경제 중간쯤에 해당한다. 정부의 우산을 기본 전제로 시장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복합화 양상을 띠고 있다. 이는 자칫 우물속의 한국이 될 수도 있고 성공모델로 승화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부 통신사업자를 중심으로 이제 막이 오른 해외시장 진출은 이런 점에서 한국의 통신산업을 국제적으로 평가받는 사례가 될 것이다.
이제는 삼국삼색의 한·중·일 통신산업이 앞으로 어떠한 경쟁과 협력 구도를 그려내느냐 하는 게 관건이다. 동북아 통신블록이 북미와 서유럽을 제치고 세계속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하느냐, 아니면 종속화되느냐 하는 것은 오로지 한·중·일 3국 스스로에 달려있다. 조만간 3세대 통신시장이 열리면 더욱 더 경쟁과 협력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특히 한국은 동북아 통신블록을 이끌어가면서 통신강국으로 진입할 수 있는가 하는 시험대에 이미 올라있다.
<베이징=이윤재 IT산업부장 yj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