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프라이즈 컴퓨팅과 네트워크장비 업계는 어느 때보다도 어려운 한해를 보냈다. 그동안 IT 투자를 견인해온 통신과 금융 등의 대형 업체가 불요불급한 투자를 자제하면서 소폭 성장한 중대형 서버 분야를 제외하고는 전 분야가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패키지 SW를 비롯한 일부 분야의 경우 사상 최악의 불황기를 맞아 혹독한 한해를 보내야 했다.
그동안 이 산업의 성장을 이끌어 주력 시장이 침체하면서 관련 업체들은 새로운 시장과 수요 창출에 적극 나섰으며 엔터프라이즈 컴퓨팅 분야의 SMB(Small&Medium Business), 네트워크장비 업계의 VDSL과 같은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는 성과도 낳았다.
◇하드웨어 소폭 성장, IA 서버 부상=올해 IA 서버를 포함한 전체 서버 시스템 시장은 작년 대비 5% 정도 늘어난 1조5000억원 규모를 보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은 추정치는 올해 초 업계가 전망했던 10% 이상의 성장률에 비하면 목표치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성과다.
중대형 시스템 업계에서 가장 큰 이슈는 구 컴팩코리아를 인수한 한국HP의 급부상. 통합 한국HP 출현으로 인해 시스템 시장은 한국HP와 한국IBM의 2강을 중심으로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 한국유니시스, 한국후지쯔 등으로 이어지는 판세를 보였다.
인텔 64비트 칩 아이테니엄 기반의 서버가 하나로통신·데이콤 등 실제 사이트에 공급되는 등 본격적인 시장 형성기를 맞은 것도 이슈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월 평균 4000여대 판매, 전체 5만7000여대 규모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측되는 IA서버 시장은 리눅스 붐을 타고 개미 군단을 형성한 국내 화이트박스 업체들의 부진한 대신 서버사업을 정비한 삼성전자와 인텔코리아의 채널들이 시장의 대표 주자들로 부각됐다.
스토리지 시장은 약 8000억원 규모로 외장형 스토리지만 5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IDC를 비롯한 시장조사기관들은 △스토리지 가격 하락폭 심화 △대용량 저장장치 애플리케이션 수요 급증 △NAS 판매 성장 △OS390 점유율 증가 △재해복구 및 백업 수요 급증 △서버업체의 스토리지 시장 진입 성공 등을 주요 이슈로 분석했다.
이밖에 효성인포메이션을 필두로 한 LG히다찌·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 등 히타치 계열의 시장 지배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도 큰 특징으로 볼 수 있으며 NAS 시장을 중심으로 국산 스토리지 업체들의 광범위한 포진도 주목할 만하다.
◇솔루션 분야 SMB와 웹이 핵심 이슈=올해를 기점으로 대기업과 공공기관에 집중됐던 정보화 수요가 중견·중소기업으로 확산되면서 SMB솔루션이 침체된 정보기술(IT) 시장의 돌파구로 부상했다. 우선 한국IBM, 한국HP, 한국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SAP코리아 등 다국적 IT기업들도 SMB 매출비중을 20%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파상공세를 펼쳤다. 이에 대응해 중견·중소기업용 솔루션 분야에서 시장입지를 다져온 토종 IT기업들의 자구노력이 전개됐다.
기업용 솔루션의 기능과 사용영역을 웹으로 옮겨가기 위한 웹애플리케이션서버(WAS), 기업애플리케이션통합(EAI) 분야에서도 시장 선점을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WAS시장에서는 BEA시스템즈코리아와 한국IBM이 선두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한국오라클·티맥스소프트·한국후지쯔 등의 추격이 이어졌다. 특히 국산업체인 티맥스의 선전이 두드러졌고 WAS사업을 접은 HP가 BEA, 오라클과 공조체제를 구축해 시장구도의 변화를 예고했다. 이와 함께 한국썬·한국후지쯔 등이 무상 번들탑재 전략을 발표해 향후 시장에 미칠 여파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기업내 이기종 전산환경의 IT 자산을 통합하기 위한 EAI시장은 대형 프로젝트들이 내년으로 연기되면서 예상보다 저조한 시장규모를 형성했지만 전사 EAI프로젝트에 대비한 부분적인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고속성장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밖에 올해 시장 도입기에 들어선 콘텐츠관리시스템(CMS)은 다큐멘텀·인터우븐·파일네트·비넷 등 외국계 업체와 아이브릿지·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 등 국내업체가 시장선점 경쟁에 나선 가운데 MS와 한국IBM 등이 시장에 진입해 무려 40여개에 달하는 경쟁구도를 형성했다.
◇패키지 리눅스 사상 최악=패키지SW 업계의 2002년은 한 마디로 최악의 불황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국적 SW기업들은 2001년 SW 불법복제 단속으로 인한 특수가 부재했던 데다 전반적인 IT업계 경기 침체, 일반 사용자들의 패키지SW 수요 포화 등으로 전년에 비해 극심한 매출 부진에 허덕였으며 이에 따라 매출목표 하향 조정, 인력 감축, 신규 사업 등이 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10월에는 코스닥 상장 SW 유통기업인 소프트윈의 부도로 인해 불거진 IT업계 대규모 유통 사기설이 업계를 강타하면서 소프트뱅크 등 주요 IT 유통기업이 사업 중단 위기를 맞은 것을 비롯해 유통업계의 대대적인 재편이 촉발됐다. 이같은 불황 속에서도 국산 대표 SW 기업인 한글과컴퓨터는 지난 상반기부터 사활을 걸고 준비해온 차세대 오피스 프로그램인 한컴오피스2003을 오랜 기간에 걸쳐 개발, 발표하고 MS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져 오피스 시장에서 국산 대 외산의 본격적인 대결이 이슈로 부각되기도 했다.
국내 리눅스 전문업체들에도 올 한해는 혹독한 시련기였다. 국내 리눅스 선두기업으로서 주목을 받아온 리눅스원이 대규모 적자로 초대사장을 교체하고 인원을 대폭 줄인 것을 시작으로 자이온리눅스시스템즈가 리눅스 사업을 철수했으며 레드햇, 수세 등 외국계 리눅스 기업들도 국내 사업에 대한 투자를 축소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국리눅스협의회는 이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리눅스 전문 전시회인 리눅스엑스포코리아를 성공리에 개최해 업계는 물론 리눅스 사용자들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통신장비 NGN과 VDSL 기대주 부상=통신네트워크장비 시장은 경기 불황의 여파로 침체된 분위기가 이어졌지만 몇몇 새로운 분야에서 성장세가 두드러지면서 내년 시장 전망에 대한 기대를 높여주고 있다. 네트워크장비 분야에서는 NGN과 VDSL이 새로운 성장주로 자리잡은 한해였다. KT가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NGN 전면 도입에 착수하면서 향후 수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NGN사업이 전체 네트워크장비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VDSL도 네트워크장비 시장에서 각광받았다. ADSL의 뒤를 이어 차세대 초고속인터넷 솔루션으로 관심을 모은 VDSL은 KT를 중심으로 도입량이 늘어나면서 국내 중소벤처기업들의 숨통을 열어주었다. 이밖에 메트로이더넷장비 분야에서도 통신사업자들의 발주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시장에 활력소로 작용했다.
반면 올초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무선랜 시장과 광전송장비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됐던 MSPP(Multi Service Provisional Platform) 및 광회선분배기(OXC) 시장은 기대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동통신장비 시장은 이동통신사업자들의 2.5세대 이동통신망 구축이 조기에 완료되면서 전체 시장 규모는 예년에 비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KT아이컴, SKIMT 등의 3세대 이동통신사업자가 본격적인 장비 도입에 나섬으로써 회복세를 예고했다. KT아이컴이 하반기들어 LG전자로부터 1300억원 규모의 장비를 도입한 데 이어 SKIMT도 5개 국내외 업체를 대상으로 현재 공급업체 선정작업을 진행하고 있어 관련 업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올 화제의 인물들-고급인력 엑소더스
시장 재편기를 맞아 엔터프라이즈 컴퓨팅과 네트워크 분야에서는 고급 인력의 엑서더스가 눈에 띄었다.
이 분야의 IT기업들이 경기침체를 타개하고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구조조정과 비즈니스 모델의 수정에 나선 데다 HP와 컴팩의 통합, IBM의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흡수와 같은 대형 인수합병(M&A)이 성사되면서 인력 대이동이 이루어졌다.
21년간 한국HP에 몸담았던 유원식 부사장이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 신임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유 사장과 함께 한국HP의 대기업 영업담당이었던 천부영·최동출 상무까지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로 옮겼다.
컴팩코리아의 수장였던 강성욱 전 사장은 한국HP에서 서버를 포함한 기업용 시스템 비즈니스를 총괄하는 ESG 사장직을 맡았다가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미 시스코시스템스의 아태지역 부사장으로 새출발했다.
기업용 솔루션 분야의 인력이동 바람은 더욱 거셌다. 한국IBM과 프라이즈텍을 거친 한의녕 사장이 최승억 전 사장의 바톤을 이어받아 SAP코리아의 신임 지사장으로 임명되면서 기업용 솔루션업계에 얼굴을 알렸다.
김재민 전 유니시스 사장이 국산 전사적자원관리(ERP)기업인 더존디지털웨어의 전문경영인으로 영입돼 관심을 모았으며 한국형 고객관계관리(CRM)를 주창해 온 장동인 DNI컨설팅 사장은 비즈니스인텔리전스(BI) 전문기업인 SAS코리아의 영업·컨설팅담당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상섭 전 한국HP 이사가 CRM기업인 유니보스로 이직했고 박명근 전 이사도 한국스토리지텍 글로벌사업부에 새 둥지를 틀었다.
국산 패키지업계의 대표주자인 한글과컴퓨터는 올초 전하진 전 사장의 뒤를 이어 김근 전 MS 아태지역 마케팅 이사를 새 사령탑으로 세워 침체된 한컴의 3기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기도 했다. 한컴은 김 사장 취임 이후 역시 MS 출신의 허한범씨를 마케팅 총괄이사로 영입하는 아이러니한 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소프트웨어업계의 침체는 다국적기업의 지사장은 물론 국내 중소기업 대표의 잇따른 교체로 표면화되기도 했다.
올해 극심한 판매부진에 시달려온 한국매크로미디어는 지난 7월 최성환 전 지사장 퇴임 이후 9월 취임한 이경봉 신임 지사장이 3개월을 못 채우고 다시 사표를 제출했다.
이창현 소프트뱅크씨케이콥(SBCK) 전 대표는 소프트윈 부도에 따른 피해에 대해 관리상의 책임을 지고 해임됐으며 문규학 신임 사장이 대표직을 맡았다.
리눅스업계에도 인력교체가 빈번했다.
초창기부터 리눅스업계에서 주목을 받아온 김우진 리눅스원 초대 사장은 적자 및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장직에서 물러나 업계에 적잖은 충격을 던져줬다. 한병길 자이온리눅스시스템즈 사장과 박용 레드햇코리아 지사장도 매출감소와 사업부진으로 인해 리눅스업계를 떠나야만 했다.
네트워크 장비업계에서는 어바이어코리아의 이수현 전 사장이 ‘2002 한일 월드컵’의 공식후원사로서 성공적인 월드컵 마케팅을 이끌어낸 후 돌연 사의를 표명,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어바이어코리아는 12월까지 후임 사장이 결정되지 않았다.
이밖에 주니퍼네트웍스코리아의 강익춘 신임 사장, 에릭슨코리아의 황진수 신임 사장 등도 외국계 기업의 새로운 사령탑을 맡으면서 업계의 관심을 모았다.
<엔터프라이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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