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콘텐츠가 미래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라는 인식이 점차 확대되면서 이를 국가의 핵심 전략산업으로 육성하려는 노력도 활기를 띠고 있다. 특히 올해는 국산영화의 방영비율이 크게 높아지고 국산 온라인게임이 세계시장에 진출하는가 하면 영화 ‘취화선’과 애니메이션 ‘마리이야기’ 등이 세계무대에서도 인정을 받는 등 나름대로의 성과도 거둬들였다.
하지만 국내 문화콘텐츠 산업은 미국이나 일본 등과 비교하면 이제 시작단계에 불과해 세계시장을 무대로 높은 경쟁력을 확보, 실질적인 수익상품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아직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에 본지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은 지난 16일 우리 문화콘텐츠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정부와 관련단체 및 학계와 업계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전문가 토론회’를 실시했다. 최성모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본부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는 김성일 문화관광부 문화콘텐츠진흥과장과 심상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구문모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최혜실 KAIST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김창헌 고려대 컴퓨터학과 교수, 박지영 컴투스 사장 등이 참여해 국내 문화콘텐츠산업 현황 및 전망과 과제를 비롯해 시장확대 방안과 수출활성화 방안, 인력양성방안, 창작기반 구축을 위한 방안 등을 놓고 폭넓은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사회(최성모)=올해는 문화콘텐츠산업 분야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본격적인 토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올해 있었던 중요한 사안들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
△김성일 과장=문화콘텐츠산업 관련 정책과 제도가 정비됐다. 또 정부차원에서 문화콘텐츠진흥기금과 정보화촉진기금을 포함해 총 1000억원 규모의 콘텐츠 지원자금도 조성,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침으로써 가시적인 성과도 거둬들이고 있다.
△구문모 연구위원=단연 온라인게임 ‘리니지’에 대한 등급판정을 둘러싼 파동을 꼽을 수 있다. ‘리니지 파동’은 그동안 고속성장을 거듭해온 게임산업이 사회적 충격을 통해 재정비되는 계기였다.
△심상민 연구원=지난 6월에 벌어진 ‘월드컵’이 올해 문화관련 히트상품 1위로 꼽힌 것이다. 월드컵응원축제문화를 통해 문화콘텐츠에 관한 국민적 관심과 열망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우리만의 독특한 놀이문화를 전세계에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특히 세계 변방에 위치해 있던 한국은 이를 계기로 문화의 중심지로 이동할 수 있었다.
△박지영 사장=올해는 모바일게임이 하나의 산업으로까지 성숙한 해였다. 하지만 저작권 로열티 문제와 콘텐츠의 질적인 문제 등 아직 해결해야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는 실정이다.
△사회=국내 문화콘텐츠산업에서 올해는 분명 매우 의미있는 한해였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문화콘텐츠산업이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이나. 덧붙여 이와 관련한 새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구문모 연구위원=그동안의 산업기조는 기술이 시장을 만들어가는 전형적인 ‘기술푸시정책’이었다. 예를 들어 모바일콘텐츠 시장은 좋은 하드웨어 보급이 확대되면서 창출됐다. 이제는 수요가 시장을 창출하는 ‘수요풀정책’을 구사할 때다. 이를 위해서는 시장수요자인 소비자의 문화와 소득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또 앞으로 열릴 문화경제 시대에는 문화의 이면에 숱한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는 관계로 국제통상 측면에서 문화산업을 바라보고 이에 따른 정책을 내놔야 한다. 오는 2005년부터 향후 10년 동안은 문화산업이 통상문제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김성일 과장=그동안 문화콘텐츠산업이 양적으로 성장해왔다면 이제는 질적으로 거듭나야할 때다. 좋은 콘텐츠 개발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월드컵 붐도 흥미진진한 콘텐츠가 있기에 가능했다. 정부가 나서서 투자조합을 만들었지만 적합한 투자대상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도 좋은 콘텐츠가 없기 때문이다.
△심상민 연구원=초고속 인프라부터 디지털 기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하드웨어 수준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제는 소프트웨어에서 역량을 발휘할 때다. 올해 ‘마리이야기’ ‘취화선’ ‘오아시스’ 등 다양한 작품들이 국제무대에서 우리나라의 문화역량을 과시했으나 모두 흥행에는 실패했다. 디즈니 영화나 일본 애니메이션처럼 문화산업계의 영원한 숙제인 작품성과 흥행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최혜실 교수=새로운 산업이 등장한 만큼 새로운 법과 제도가 따라줘야 한다.
△사회=시장차원에서 접근해보자. 내년도 문화콘텐츠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최혜실 교수=콘텐츠를 이용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제도개선책이 총체적으로 연구돼야 한다. 현재 디지털 콘텐츠 유료화는 아날로그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소비자들에게 정당한 요금을 지불한다는 생각보다 돈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기업들이 이윤을 추구하는 방식도 정보공유라는 인터넷 기본정신에서 크게 위배되지 않는 윈윈 전략이 필요하다. 소비자가 요금을 어떻게 쉽게 지불할 것인가. 프라이버시는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등의 문제에 관한 고민이 필요하다.
△심상민 연구원=콘텐츠 이용요금 자체가 소비자에게 부담을 준다. 각종 통신요금에다 부가요금, 미디어 요금까지 합치면 월이용료가 20만원을 훌쩍 넘어버린다. 통합포털을 통해 콘텐츠를 유통·배분하는 등 소비자들에게 요금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정책적 혜안이 필요하다. 이는 앞으로 진행될 통신방송융합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구문모 연구위원=사회학자나 심리학자 등 인문학자들이 중독이나 폭력성·음란성 등 제반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실체를 규명하려는 노력도 진행돼야 한다. 현재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 참고할 수 있는 지침이 없다. 인문학에서는 물론 기업도 이를테면 게임이 왜 부정적인 것이 아닌지 연구결과와 논리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상이다.
△사회=올해도 문화콘텐츠 수출진작을 위해 각계각층이 노력해왔다. 수출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위해 어떤 전략이 요구되나.
△심상민 연구원=아이템 하나씩을 파는 단타성 수출전략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를 들어 할리우드에서 자본을 댔지만 아시아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영화 ‘와호장룡’의 경우처럼 해외 비즈니스 거점을 활용한 수출전략을 짜야 한다.
△김성일 과장=코비즈니스(co-business), 코파이낸싱(co-finacing), 코프로덕션(co-production) 등 각국의 강점을 제대로 조합해낼 수 있는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 아이디어로 해외 바이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프리세일(pre-sale) 전략도 주효하다. 현재 역동적인 한국 콘텐츠에 대한 해외업체들의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에서는 시장권역별, 장르별 진출 전략을 모색해야 하고 각 업체들은 국가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비즈니스 전략이 필요하다.
△구문모 연구위원=그 지역의 문화를 모르고는 문화상품을 팔 수 없다. 아랍권, 유럽권 등 지역에 대한 연구가 구체적으로 진행돼야한다.
△김창헌 교수=기존 무역진흥공사 등을 통해 진행됐던 정부주도의 수출전략이 문화상품에도 적절한지 따져봐야 한다. 정부와 기업의 역할 구분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정부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수출할 수 있도록 지원자로서의 역할을 해야한다.
△심상민 연구원=프랑스 문화원의 경우 프랑스 알리앙스나 각종 문화행사를 통해 전세계인들이 프랑스 문화에 전략적 우군이 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우리 정부도 현재 고도화되고 있는 한류 열풍을 바탕으로 해외에서 한글을 무료로 가르치거나 디지털기기 체험관을 마련, 국가이미지를 높이는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사회= 내수시장이나 수출이 확대되려면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문인력 양성이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물론 창작기반 구축 및 지방문화 활성화 등도 필요하다. 좋은 콘텐츠 개발을 위한 방안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구문모 연구위원=국내에 스필버그와 같은 흥행을 보증할 수 있는 대가들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두가지다. 하나는 내수시장이 미국에 비해 매우 작고 콘텐츠 제작업체들이 너무 영세하기 때문이다. 수익이 확대되면 대가들이 나올 가능성은 커진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로 우리나라 교육이 아직도 창의적인 인물 양성을 가로막고 있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심상민 연구원=문광부·교육부·산업자원부 등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인력양성에 관한 대계를 세워 시행해야 한다. 새 정부가 들어서는 시점이기 때문에 지금이 문화콘텐츠 인력양성에 관한 마스터플랜을 세우기에 가장 적절한 때다. 새 정부의 공감대와 역량이 변수다.
△박지영 사장=모델을 삼을 수 있는 스타플레이어가 나타나야 한다. 우리나라 정서상 튀는 것을 싫어해서인지 단 한번의 실수와 실패를 용납해주지 않는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려워한 나머지 공격적인 플레이를 멈추는 경우도 왕왕 있다.
△구문모 연구위원=문화콘텐츠 분야에도 대학원 이상의 전문인력이 대거 투입돼야 한다. 콘텐츠의 질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대학의 사정상 이런 전문인력을 길러낼 수 있는 교육기관으로 변모하기에는 제약점이 많다. 정부가 리드하는 콘텐츠 대학을 만들어 우수한 교원과 학생을 흡수해야한다.
△심상민 연구원=지방이 R&D센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한다. 대구, 광주, 청주 등 각 지역별로 특색있는 분야의 집성지를 만드는 이른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지방마다 R&D센터의 거점을 만든다면 지역경제도 활성화하고 좋은 콘텐츠도 도출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기술에 대한 헤게모니를 정부나 대학기관이 무조건 쥘 필요는 없다. GE의 사내대학처럼 실무적인 교육과 R&D센터와 직장이라는 세 개념이 합쳐진 새로운 시스템이 이제 부상할 때도 됐다.
△김성일 과장=지방마다 고유의 문화와 기술을 발달시키는 집성지 전략이 처음 의도했던 것과 달리 지방마다 차별화가 잘 안되는데다가 예산문제로 사업이 지지부진한 경우가 많았다. 정부는 각 지역이 실제로 차별화된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확실히 검증하려고 한다. 검증된 지역에 대해서는 세제혜택 등 확실한 지원정책을 펼 생각이다.
△사회=문화콘텐츠 산업과 순수예술, 인문학 분야와 밀접한 상호작용이 요구된다는 지적도 많다. 하지만 아직은 순수예술과 문화콘텐츠간에 괴리감이 느껴진다.
△최혜실 교수=인문학과 순수예술 분야의 인력과 대중문화 부분의 인력이 서로 협력한다면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된다. 현재는 두 분야 인력간 간극이 너무 크고 서로 융화되지 않으려는 경향이 심하다. 서로 상대방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한데 정부가 이 두 분야의 만남을 주선하는 조정자 역할을 해야한다.
△김성일 과장=순수예술은 문화콘텐츠 산업을 위한 저수지다. 제도적으로 물터주기를 해주면 산업적인 가치는 얼마든지 생성될 수 있다. 성공사례가 계속 나오면 봇물은 터질 수 있다. 미국의 작가협회에는 4만개의 시나리오가 모이는 등 저변 인프라가 엄청나다.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로 채택되면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이제 우리 문화콘텐츠산업이 본궤도에 오를 수 있는 시기가 됐다. 내수시장 확대와 더불어 해외시장 진출을 위해 관련기관과 협조하에 정진을 해야한다. 이를 위해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도 산업계와 긴밀한 협조체계를 마련해 산업발전의 기반을 닦아 나가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정리=류현정기자 dreamsho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