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블레이드로 인지도를 높인 손오공은 완구, 게임, 애니메이션을 잘 버무려 어린이들에게 즐거운 놀이터를 만들어주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다. 하지만 ‘탑블레이드’ 이전에는 변신합체 로봇을 생산하는 업체로 잘 알려져 있었다. 그렇다고 완구만을 만들었던 것은 아니다. 96년 ‘영혼기병 라젠카’ 투자를 시작으로 ‘스피드왕 번개’ ‘붐이담이 부릉부릉’ ‘하얀마음 백구’에 이르기까지 애니메이션 작품에 투자와 제작을 많이 했다. 하지만 ‘탑블레이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손오공은 애니메이션 제작사로서 인식되기 시작했다. ‘탑블레이드’ 방영후 시청률이 오르고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팽이의 인기가 높아지는 걸 지켜 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좋은 아이템이라 히트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작품을 기획하는 동안에는 이 정도의 대히트는 예견하지 못했었다. 한국과 일본의 전통 놀이인 팽이를 소재로 한다는 발상은 좋았지만 ‘과연 요즘 아이들에게 전통놀이인 팽이가 통할까’라는 걱정은 첫 방송하는 날까지도 계속되었다. 우려를 불식시키 듯 다행히 시청률이 좋았다. 아이들이 탑블레이드 팽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탑블레이드 팽이를 손에 쥔 아이들을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날개 돋친 듯 완구가 팔렸고, 결국 2001년 한·일 히트상품으로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탑블레이드’의 성공은 한·일 합작의 승리다. 손오공의 최신규 사장을 비롯한 모든 기획자들은 탑블레이드가 히트하기 위해서는 한·일 합작을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진행하느냐에 달렸다고 보았다. 하지만 반대로 애니메이션 강국 일본으로서는 한국과 합작을 한다는 건 상당히 거추장스러운 일일 것이다. 일본 기획사 디라이츠의 카지 부장은 손오공이 30% 투자만 하고 제작은 일본이 주로 담당하기를 바랬다. 설상가상으로 일본 제작사도 한·일 합작을 좀처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길고 지겨운 줄다리기 끝에 일본의 제작사 매드하우스의 마루야마 사장이 한·일 합작 제작시스템을 받아들였다. 매드하우스는 한국측 파트너로 디알무비를 선정했다. 디알무비는 이전에 매드하우스와 ‘알렉산더’를 제작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한·일 합작은 수월하게 진행될 듯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려움이 많았다. 무엇보다 ‘탑블레이드’는 ‘알렉산더’처럼 레이아웃, 원화, 동화, 채색 촬영만 하면 끝나는 작품이 아니었다. 콘티와 캐릭터 디자인, 극본 등 프리 프로덕션까지 담당해야 했고, 제작과 동시에 일본에서 방영을 해야 했으며 한국에서는 초유의 51부작이었다. 스케줄도 없고, 인력도 귀하다는 이유로 디알무비의 정정균 사장은 난색을 표명했다. 하지만 멍석은 펼쳐졌으므로 굿은 해야 했다. 그것도 아주 성공적으로. 우여곡절 끝에 한국과 일본의 제작사들을 설득하고 나니 극본이 문제였다. 96년도에 대한민국 영상만화대상에서 스토리상을 받았던 내가 시리즈 구성을 해나가고 있었지만 프로듀서와 시리즈 구성을 하기에는 불행하게도 몸이 하나밖에 안 되었다. 젊고 신선한 작가가 필요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이가 바로 김상훈이다. 신춘문예 작가 출신인 그는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글을 잘 썼는데, 애니메이션은 물론 게임, 마케팅 지식도 해박했다. 작품 홍보는 방송 5개월 전부터 시작했다. 메인 카피 문구를 “그들의 신화는 시작됐다”로 잡았다. 주제가를 부른 락커 서문탁의 ‘GO! GO! 탑블레이드’처럼 ‘탑블레이드’는 세상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손오공 이은미PD oz@sonoko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