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부터 서서히 진행돼 온 세계 경제의 지역블록화가 21세기 들어 급류를 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국의 이익을 쫓아 블록간 경계를 넘나드는 합종연횡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경제 블록간 무역을 중시하면서도 시장과 자본을 찾아 새로운 파트너를 물색하고 동맹하는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의 양상이 21세기 세계경제의 대표적 구도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미래 세계산업지도를 바꿔나가는 동력은 21세기 경제성장 추진엔진인 IT다. IT산업의 발달은 이같은 블록간 그리고 시장과 자본간 이뤄지는 복잡한 합종연횡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같은 ‘新IT춘추전국시대’의 중심에는 수십년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는 중국이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재도약하고 있는 아시아경제는 NAFTA와 EU 등을 빠르게 추격하며 세계 경제성장의 중요한 동력원으로 부상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의 행보는 곧바로 아시아지역 내 산업구조조정으로 이어져 아시아 경제통합 논의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세계 경제에 가장 급격한 변화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 바로 IT이자 이를 바탕으로 한 산업의 e비즈니스·정보화다. 위탁가공산업을 바탕으로 성장하던 중국이 최근 IT에 역량을 집중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세계가 잠재시장을 활용한 중국의 비약적인 IT산업 성장세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NAFTA와 EU에 비해 아시아권의 IT역량은 상대적으로 작다. 그러나 중국이 잠재시장을 바탕으로 IT분야에 할당된 세계 자본을 삼키면서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더욱이 이같은 중국의 세계 자본 블랙홀 추세는 최소한 20년 이상은 지속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중국과 아세안은 향후 10년 이내에 중국-아세안 자유무역지대(FTA) 창설에 합의한 상태로 이는 장기적으로 일본과 한국 등 동북아를 포함한 아시아 자유무역지대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상황이 현실화되면 NAFTA·EU 중심의 IT산업 구도는 다강체계로 급속히 전환될 전망이다.
전세계 인구는 60억명, 세계 GDP는 30조달러 정도다. 이 가운데 미국·캐나다·멕시코 등으로 형성되는 NAFTA는 인구가 세계의 12분의 1도 안되지만 GDP는 세계 3분의 1을 넘어선다. 현재로서는 세계 최대시장이자 세계를 리드하는 IT선진 권역이다.
더욱이 미국은 NAFTA를 형성하면서도 이스라엘·요르단 등과 FTA를 체결했고 칠레·모로코·싱가포르 등과도 추진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선진국, 신흥공업국, 저개발국 등에 걸쳐 서반구 34개국을 아우르는 미주자유무역지대(FTAA) 형성에 역점을 두고 있다.
유럽연합(EU)도 만만치 않다. 인구 3억8000만명, GDP가 8조5700억달러 규모인 EU는 NAFTA와 거의 비슷한 시장을 형성하면서 세계 최대 경제무역 공동체로 자리잡고 있다. 더욱이 인터넷 사용자수와 성장률이 북미지역을 상회하는 등 IT수요는 어느 권역에 비해 빠르게 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EU는 옛 소련에 속한 독립국가연합(CIS)과 지중해 연안국, 북아프리카 등까지 포함하는 자유무역지대로 확대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는데 이는 25개 회원국, 인구 5억5000만명의 세계 최대경제권으로 부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시아권은 아직 한국·일본·중국으로 묶이는 동북아권의 경제역량이 이 지역을 대표하고 있다. 이 지역은 전세계 첨단제품의 테스트마켓이자 세계 비즈니스 정보의 집산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나 GDP는 6조6000억달러 정도로 NAFTA·EU에 비해서는 미약하다. 그러나 중국의 급부상과 이에 힘입은 권역경제의 활기 그리고 동북아·ASEAN을 아우르는 아시아 자유무역지대 탄생 가능성 등은 세계 경제구도의 변화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계산업지도는 이런 권역화와 더불어 철저하게 국가간 이익을 우선하는 합종연횡 양상을 반영하고 있다. 잠재시장을 무기로 세계 자본을 삼키고 있는 중국 그리고 세계 선진국들의 중국에 대한 구애가 이같은 양상을 방증한다. 더욱이 세계산업지도의 재구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중국의 IT분야에 대한 관심은 향후 세계 IT산업 구도의 급속한 변화로 이어질 것이 확실하다.
이같은 변화를 함축하고 있는 新IT춘추전국시대의 도래는 우리나라에 기회이자 위기로 작용한다. 사실 역사는 힘의 균형 논리가 지배한다. 일단 동북아를 세계 경제의 한 축으로 세워나가면서 그 중심에서 우리의 역량과 입지를 키워나가는 것이 기회를 극대화하는 방편이다. 우리 정부가 ‘동북아 허브론’과 ‘동북아 중심국’을 주창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월드와이드 경쟁에서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경쟁자도 없다. 줄 것은 주고 챙길 것은 챙기는 것이 이념을 초월하기 시작한 세계 각국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FTA움직임이나 상호인정협정(MRA) 추세가 이를 말해 준다.
세계는 자신의 경제권에서 블록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는 것 못지 않게 새로운 시장, 새로운 강자에 대한 관심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따라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우리가 세계에 내 놓을 수 있는 대표 제품·기술을 확보해 놓고 IT춘추전국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아쉽지만 우리나라는 외세에 의한 침략과 그로 인한 개방을 되풀이했던 역사를 갖고 있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우리의 목소리는 너무도 미미했다. ‘新IT춘추전국시대’ 또한 우리를 중심으로 열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IT강국 코리아는 과거 그 어느때보다 무겁게 세계 속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각 대륙의 IT산업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