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후반 들어 불붙기 시작한 정보화 열기 덕분에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탄탄한 IT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이동전화 가입자 3200만명,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1000만명, 전자정부 출범 등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IT 인프라는 IT대통령을 자처하며 IT 복지국가 건설을 공약으로 내놓은 노무현 당선자에게 ‘기회’이자 ‘위기’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IT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충분한 기반을 갖췄지만 극복해야 할 장벽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IT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노 당선자가 특히 관심을 가져할 분야는 정보격차 해소다. 정보화라는 청사진 뒤에는 계층간·지역간·세대간 정보격차라는 우울한 그림자가 자리잡고 있다.
정보격차는 빈부격차·평등권 박탈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될 개연성을 갖고 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된다. 정보격차가 사회적 불평등을 확대시키고 재생산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이는 빈부격차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의 평등권과 행복하게 살 권리 등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
노 당선자가 건전한 IT 복지국가 건설과 정보문화 창달을 위해 정보격차 해소에 최우선 정책과제를 둬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정보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쉽게 통신망과 컴퓨터를 보유하고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통신망이 미비한 농어촌 지역 주민, 컴퓨터 구입 및 통신비 지출이 부담스러운 저소득계층, 컴퓨터 이용이 서툰 주부와 노인, 그리고 컴퓨터를 쉽게 이용할 수 없는 장애인 등은 정보취약집단으로 남을 수밖에 없고 정보화가 진전될수록 이들의 사회적 소외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국민의 정부는 2차 국가정보화기본계획인 사이버코리아21(99년 3월)을 수립하고 지식정보사회의 낙오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장애인, 주부, 실업자, 농어민 등 정보화 취약계층에 대한 다양한 지원정책을 제시했다. 또 2000년 4월에 열린 제4차 정보화전략회의에선 ‘함께하는 지식정보강국 건설계획’을 확정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지난 2000년 12월에는 정보격차해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이에 따라 2001년 9월에는 ‘디지털 복지사회’ 건설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전국민이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 건설과 모든 국민이 경제적·신체적·지역적 여건 등에 구애됨이 없이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환경조성을 목표로 한 ‘정보격차해소를 위한 5개년 종합계획’이 수립되기에 이르렀다.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잘 이용하는 선도집단과 그렇지 못한 취약집단의 정보접근 및 활용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한국인터넷정보센터가 올해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사무직 종사자의 81.2%가 인터넷을 이용하는 반면 생산직 및 판매·서비스직 종사자 가운데는 29.2%와 39.7%만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다.
세대간 정보화 격차는 휠썬 더 심각한 상황이다. 10대와 20대의 인터넷 이용률은 각각 93.4%와 86.0%로 미국의 68.6%와 65.0%보다 높지만 50대 이상의 이용률은 9.6%에 불과해 미국의 37.1%보다 휠씬 낮은 수준이다.
또 한국정보문화센터의 자료에 의하면 장애인 계층 역시 정보화 취약집단으로 남아있어 장애인의 인터넷 이용률은 22.4%에 불과하고 이는 외국과 비교할 때 상당히 낮은 수치다.
이런 문제들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도시화·산업화로 인해 야기된 노인과 장애인의 소외 및 세대간 단절, 도시와 농촌간 격차심화, 정보활용 디지털 집단과 정보를 활용하지 못하는 아날로그 집단간 단절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정보 및 서비스의 양과 질이 확대될수록 이를 이용하지 못하는 집단의 소외는 더욱 심화될 것이며 이러한 단절은 집단간 갈등으로까지 발전할 것이다.
노 당선자는 “정보화의 혜택을 전국민이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IT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노인, 여성, 장애인, 농어민이 21세기 정보사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정보격차해소 방안을 강구해 차별없는 평등사회를 구현할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노 당선자는 우선 정보격차해소사업이 경제적 이해를 기대할 수 없는 사업이므로 서로하고 싶어하는 사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정부와 기업, 시민단체 등을 아우르는 전담기구를 두지 않는다면 유능한 인력확보, 사업수행 담당자의 사기진작, 사업의 지속성 확보 등이 곤란하다.
그동안 한국정보문화센터를 비롯한 많은 단체가 정보격차해소사업을 집행하고 있으나 구심이 되는 법적 기구가 없어 사업의 체계적인 추진이 어려웠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또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정보통신사업자의 협력을 이끌어내야 하는 것도 노 당선자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농어촌 지역의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및 장애인의 이용이 가능한 정보통신기기나 서비스 제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보통신기기 제조 및 서비스 제공자가 장애인의 접근이 가능한 제품을 생산하고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며 통신사업자들이 농어촌 등 오지 지역에도 초고속정보통신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므로 민간사업자와의 파트너십 형성 없이는 취약계층의 정보격차 해소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사업자로서는 쉽게 이런 사업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민간사업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의 당근 정책도 필요하다.
건전한 정보문화 창달을 위해 ‘신정보윤리운동’을 전개하고 투명성과 공정성을 기반으로 부정부패가 없는 깨끗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노 당선자의 공약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여성, 장애인, 노인, 저소득층 등 정보소외계층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정보통신기기 보급, 정보화교육, 콘텐츠 확보 등을 위해 여러 주체간의 연계, 조정 및 지원, 그리고 필요한 관련연구 수행을 독려해야 한다. 정보격차 해소는 모든 국민이 정보화에 따른 혜택을 함께 나누는 디지털 복지사회를 여는 지름길이다. 또 정보취약계층 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생산적 복지구현의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정보이용집단간 단절 및 갈등을 예방하고 나아가 정보사회의 실현을 앞당기고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수단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노 당선자와 차기 정부에 주어진 숙제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kr>
◇선진국 정보격차 해소정책 어떤게 있나
그동안 정부가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전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정보격차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정보화의 양적인 성장에만 치중해 온 나머지 질적인 측면에서는 소홀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선진국은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다양한 접근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
새 정부는 선진국의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노력과 정책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이를 우리 실정에 맞게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미국=정보격차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포털(http://www.digitaldividenetwork.org)을 운영하고 이를 통해 재정지원단체, 정책, 민간사업자의 정보격차 해소활동 등을 자세하게 제공하고 있다.
학교에 컴퓨터를 기부하는 기업에 대한 세금감면 혜택과 정보화 취약지역 학교에 컴퓨터 기부하는 기업에는 제공된 PC시장 가격의 50%만큼 세금공제 혜택을 준다.
또 전화요금에 일정액의 분담금을 부과해 이를 기금으로 조성, 저소득 및 농어촌지역 주민의 음성전화요금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농어촌 진료기관이 시외회선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경우 한 달에 30시간을 시내요금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해주고 모든 초·중학교 및 도서관을 대상으로 형편에 따라 20∼90%의 차등지원 방식으로 인터넷접속 및 구내정보통신망 구축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영국=영국은 특히 낙후지역 가정에 인터넷을 보급하는 시범사업(wired up communities)을 실시하고 있다.
시범사업을 통해 저소득 주민에게 현재 제공되는 다양한 기술 가운데 무엇이 최적인지를 파악하며 민간사업자가 어떻게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지,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저소득지역 주민의 구직 및 생활개선을 위해 정보통신기술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또 취약계층의 정보이용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1000개의 ICT 학습센터 구축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일반예산에서 2억5200만파운드(약 4675억원), 그리고 복권협회의 뉴 오퍼튜니티 펀드(New Opportunities Fund)를 통해 지원되는 커뮤니티 액세스 투 라이프롱 러닝(Community Access to Lifelong Learning) 프로그램에서 2억파운드(약 3710억원)를 지원할 예정이다.
◇일본=일본은 ‘매력적인 일본 건설’의 장애요인으로 정보격차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지난해 시행된 IT기본법에 따라 설치된 IT전략본부가 만든 ‘e재팬전략’에는 모든 사람에게 IT 교육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계획이 담겨있다.
이 계획에 의하면 연간 550만 성인을 대상으로 IT기초 기술교육을 제공하고 50만소비자·중소기업 관리자에게 IT교육을 제공할 예정이다.
나아가 140만 근로자에게 IT직업훈련을 제공하며 또한 7000개 도서관 및 공공장소에 IT장비를 보급해 주민을 위한 정보화교육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주민의 정보 이용능력 함양, 정보접근 장애 없는(barrier-free) 정보사회 실현, 원격근무 촉진, 지방의 통신망 구축지원 등을 제시하고 있다.
◇스웨덴=정보통신분야에서 가장 앞선 나라가 되겠다는 계획의 일환으로 고용주가 종업원에게 컴퓨터를 제공할 경우 제공한 컴퓨터 가격만큼 세금감면 혜택을 주고 근로자에게도 이렇게 제공받은 컴퓨터에 대해서는 소득세 부과를 면제해주는 제도인 컴퓨너 포 올(Computer for All)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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