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가 채권단의 대폭적인 채무재조정으로 기사회생의 기회를 맞았다. 미국 마이크론과 독일 인피니온의 강력한 견제에도 불구, 채권단은 하이닉스에 줄 수 있는 마지막 최상의 카드를 건넨 셈이다.
이번 조치로 하이닉스는 회사 정상화 및 경쟁력 강화에 매진할 수 있는 결정적인 시간을 확보했다. 99년 반도체 빅딜로 15조8000억원 규모로 불어난 차입금과 연간 조단위의 달하는 원리금, 이자비용 등의 상환 압박에서 벗어나게 된 하이닉스는 한결 가벼워진 몸집으로 새로운 도약에 나설 수 있게 됐다.
하지만 2000년 이후 후퇴한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헤쳐나가야 할 난제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채무재조정에 따른 효과=채무재조정이 완료될 경우 하이닉스는 자기자본 26조원, 발행주식수 52억주에 달하는 기형적 재무구조에서 자기자본금 6조원(납입자본금 2조2000억원), 발행주식수 4억4500만주 규모로 탈바꿈하게 된다. 부채비율은 147%에서 71%로 더욱 견실해진다.
하이닉스는 반도체 빅딜 이후 지난해 말까지 만 3년 동안 시설투자와 운전자금을 뺀 차입금 상환, 이자 지급, 인수대금 지급 등에 10조원 이상을 쏟아부었다. 이에 반해 실제 산업경쟁력 유지 및 강화차원에 사용한 금액은 5조원 가량에 불과하다.
하이닉스는 채권단으로부터 보장받은 향후 3년 동안 경쟁력 강화에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절호를 기회를 잡게 됐다.
◇구조조정 가속화=하이닉스는 이른 시일 안에 자산매각과 내부 구조조정 등 고강도 자구책을 내용으로 하는 경영정상화계획을 마련, 채권단과 이행약정을 맺을 계획이다.
하이닉스는 자구계획으로 TFT LCD 사업부문 매각 3억8000만달러, 기존 분사사업부문 매각 2776억원, 유가증권 491억원, 부동산 등 2767억원 등 비핵심자산 매각으로 1조1000억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또 비메모리사업부문(시스템IC) 등 경쟁력이 미약한 비주력사업부문을 조기매각하기로 하고 현재 잠재매수자와 매각협상을 진행중이다.
이밖에도 인력·조직의 재편성과 슬림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책임경영제도를 강화해 경영부실이 재현될 경우 경영진이 퇴진하는 등의 구체마련을 확정, 추진하게 된다.
◇남은 과제=하이닉스는 지난 2년 동안 설비투자를 거의 하지 못했다. 지난해의 경우 당초 설비 업그레이드에 1조3000억원 가량을 투자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반도체 경기 지속 등으로 인해 실제 투자한 금액은 4500억원 남짓에 불과했다. 2001년의 2243억원에 비해서는 설비투자금액이 두배 가량 늘어나긴 했지만 이는 최소한의 경쟁력을 유지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또 지난해 2조7000억원 이상을 투자한 삼성전자에 비한다면 심각한 수준이다.
하이닉스는 당초 예정대로 미뤄둔 300㎜ 설비투자를 올 하반기께 시작할 경우 2조9000억원 이상의 설비투자금액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다. 하이닉스는 이 문제를 자구노력 이행과 유상증자 등으로 풀어나간다는 계획이다.
올 1분기중에는 감자 및 증자, 구조조정 등으로 하이닉스가 바쁜 시간을 보내고 상반기 시장상황을 고려해 하반기가 돼서야 본격적인 투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에 대비해 늦어도 1분기 말께는 구체적인 설비투자계획 완성과 함께 본격적인 설비발주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또한 그동안의 경영위기로 인해 지쳐 있는 직원들의 사기를 다시 고취시키고 연구인력의 추가이탈을 막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이는 채권단도 동의한 성과급제 부활로 일부 해결이 가능하다.
다만 반도체 경기회복 시점이 관건이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반도체경기 회복 예상시점은 하반기 초다. 또 가장 비관적인 시점은 하반기 말 정도다. 만약 경기회복 시점이 내년으로 넘어갈 경우 하이닉스의 미래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