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2차전지사업을 진두지휘하는 홍순용 상무(49)는 요즘 미국·유럽 등지로 해외출장이 부쩍 잦아졌다. 차세대 세계 일등상품으로 꼽히고 있는 2차전지를 수출시장에 내다팔기 위해서다.
2차전지시장이 일본의 독무대였던 만큼 홍 상무의 해외출장 스케줄도 대부분 대형 이동통신단말기업체 구매 담당자와의 미팅으로 짜여져 있다.
그의 출장 특징은 담당직원을 대동하지 않은 단독 출장이란 점. ‘실무자와 함께할 경우 시장흐름에 대한 정보는 쉽게 얻지만 자신마저 그 흐름에 매몰돼 ‘새로운 흐름’을 놓칠 수 있다’는 그만의 독특한 ‘출장철학’ 때문이다.
홍 상무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세계적인 기업 다우케미컬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그 덕에 해외에 다양한 휴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그가 해외출장시 유명 2차전지 소재업체와 2차전지 수요처인 모바일기기 업체의 구매 담당자들과 사적인 만남을 자주 갖는 것도 결코 짧지 않은 해외생활을 통해 얻어진 인적 네트워크 형성 노하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홍 상무의 이같은 숨은 노력으로 LG화학은 지난해 컴팩·애플 등에 ‘LG’브랜드에 의한 2차전지를 공급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이는 산요·소니 등 일본의 아성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기에 의미가 컸다.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일본의 벽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그 때문인지 LG의 세계 시장점유율 순위도 세계 7위권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사업 이후 지속됐던 적자행진도 멈추고 영업흑자로 전환됐다.
그는 이런 추세라면 2005년께는 세계 2차전지 빅3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더 나아가 “2010년이면 일본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세계 2차전지 넘버원으로 우뚝설 수 있을 것”이라고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올해도 나홀로 출장을 계속 강행할 생각입니다.” 그는 우리나라가 휴대폰 강국으로 부상, 내수시장도 만만치 않지만 진정한 지존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세계시장을 뚫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국내 2차전지산업이 극일(克日)을 넘어 반도체, 디스플레이에 이은 또 하나의 세계 일등제품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동종업계간 상생(相生)의 관계구축이 긴요하다”고 강조한다. 특정업체의 성공만으로 세계를 제패하기엔 일본의 아성이 너무 탄탄하다는 것이다.
홍 상무는 그래서 올해만큼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협력업체와의 관계개선 등을 위해 많은 관심과 시간을 투입할 작정이다. 그는 “국내 2차전지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열심히 외국에 내다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재·부품의 자급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잦은 해외출장덕에 때아닌 홀아비 신세로 살아가고 있다는 그는 내일도 미국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에게 “지구를 100바퀴 돌면 지존자리에 오를 수 있다면 오늘 당장이라도 100켤레의 구두를 사 지구를 달리고 싶다”며 2차전지산업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였다.
<박지환기자 daeba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