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 일등국가’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IT정책 구상이 새 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흔들리고 있다. 대선기간중 청와대에 IT수석을 둬 각 부처에 산재한 IT정책을 조정하겠다는 당선자의 공약은 사실상 공수표가 됐으며 국정과제를 마련중인 대통령직 인수위에선 IT분야에 정통한 전문가가 전무해 IT정책이 국정과제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IT산업계는 “아직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을 단계는 아니지만 당선자측 움직임을 봐선 IT를 중시하겠다는 노 당선자의 구상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선 당선자의 IT관련 공약이 대폭 축소 또는 백지화쪽으로 기울고 있다.
정보화를 비롯한 IT정책을 범정부 차원에서 조율하기 위해 만들겠다고 한 IT수석 신설 공약은 비서실 기능의 축소방침에 따라 사실상 실현이 불가능해졌다.
이에 대해 당선자측의 한 관계자는 “당선자가 IT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여러 흐름상 IT수석의 신설이 힘든 상황”이라면서 “다만 비서실내에 IT정책을 보좌할 비서관이나 TF를 두는 방안을 장기과제로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당선자측은 또 국무총리 산하의 국무조정실에 강력한 힘을 부여해 IT정책을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하지만 IT비서관이나 TF 신설은 장기적인 연구과제로 설정돼 있어 당분간 실현될 가능성이 없으며, 신설된다 해도 현 정부의 의사결정 구조로 봐선 IT정책 조정기능을 수행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무조정실에서 IT정책을 조율하는 방안도 현행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데다 국무총리가 정부부처에 대한 인사권이나 예산편성권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힘을 가질 수 있을지 미지수다.
더욱 큰 문제는 당선자나 인수위에서 이러한 현안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을 정도로 전문성 있는 인사가 없다는 점이다.
인수위측 한 자문인사는 “당선자나 인수위측 사람들 가운데 ‘IT산업은 가만 놓아두어도 잘 되는데 새롭게 바꿀 게 있느냐’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면서 “인수위원들이 IT산업의 집중적인 육성과 정책조율의 시급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IT수석 신설을 건의했던 한국전산원의 정진우 박사는 “노 당선자가 청와대 비서실을 축소하고 각 부처에 자율권을 준다는 것으로 파악되나 그래도 조정기능은 필수”라면서 “굳이 IT수석이 아니더라도 이 기능을 강력히 수행할 수 있도록 체계를 바로잡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최선책으로 대통령이 정보화추진위원회의 의장을 맡고 전문성을 가진 부처에 프로덕트매니저(PM)를 맡기는 형태와 차선책으로 청와대에 1급 비서관을 두고 각 부처 기획관리실장을 CIO로 한 협의회를 구성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그간 언급을 자제했던 IT산업계에서도 점차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이강인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은 “IT정책 혼선문제는 단순 자문기구 구성만으로 해결될 성질의 것은 아니며 오히려 혼선만 빚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IT가 이제 국가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어 중요성 면에서 통일이나 외교에 못지 않은데 수석직을 신설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승모 통신사업자연합회 상근부회장은 “우리 경제성장을 달성하려면 성장엔진인 IT부문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한 정책이 많이 나왔으면 하나 현재로선 이런 방향으로 간다고 말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다른 IT관련 단체의 고위간부는 “‘IT수석 신설’과 ‘정보통신 일등국가’라는 당선자 공약이 빠진 데 대해 IT업계의 불만이 크다”고 전하면서 “인수위 위원 중에 IT와 관련한 인사가 전무한 상황에서 정보화·IT 비전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IT산업계는 IT수석을 꼭 신설하고 국정과제에 정보통신 비전을 담아야 한다기보다는 IT에 대해 중복투자를 방지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국가적인 힘을 결집시켜가겠다는 당선자의 의지가 퇴색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분위기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