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콘텐츠는 미래 국가경쟁력이다]해외편-미국(중)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대규모 자본과 세계적인 배급망을 갖춘 몇몇 메이저 스튜디오에 의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니버설스튜디오, 워너브러더스, 월트디즈니, 파라마운트, 팍스소니 등 소위 메이저 5사로 불리는 업체가 그들이다. 이들 메이저 스튜디오는 창작그룹으로부터 상품화할 소재를 소싱해 수직계열화된 하청업체에 제작을 맡긴다.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대규모 자본과 전세계를 꿰어놓은 배급망을 바탕으로 기획단계에서부터 전세계를 대상으로 마케팅 및 프랜차이즈 전략을 수립, 작품이 설사 훌륭하지 않더라도 전세계 시장에 내다팔고 있다.

 또 이들간의 관계는 전문 에이전트가 맡아서 해준다. 에이전트들은 제작과 배급 및 유통을 위한 계약체결을 중심으로 작품이 만들어지고 배급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연결해준다.

 한마디로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거대 자본과 창작그룹 및 제작그룹·유통그룹·에이전트 등이 환상적으로 결합해 만들어낸 산물이다. 이같은 구조는 창작과 기획 및 제작자 모두가 자신의 업무에만 충실할 수 있는 집중력으로 이어져 세계적인 경쟁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이런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애니메이션 분야를 중심으로 독립제작사들이 급부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제작사가 바로 ‘스폰지밥’ ‘심슨가족’ 등으로 유명한 클라스키추포(Klasky-Csupo)다. 클라스키추포는 메이저 스튜디오와 관계없이 어린이채널을 확보해 방영함으로써 독립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가운데는 최대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했다.

 ‘몬스터주식회사’를 제작한 픽사(Pixar)와 드림웍스 등도 최근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독립 애니메이션 제작사다. 이들은 기존 소재를 우려먹는 상태인 기존 메이저 업체와는 달리 독창성을 가미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끊임없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 나가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소수의 메이저 스튜디오가 독점하다시피해 온 할리우드 내에서도 신선한 변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메이저 기업들이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기존 창작물 시장에서 검증된 것을 중심으로 소싱하는 리메이크 작업을 늘리고 있는 것도 할리우드의 변화된 모습이다. 할리우드의 경우 영화가 성공할 확률이 무려 24%에 달할 정도로 높기는 하지만 평균 제작비가 7800만달러로 막대하므로 실패했을 경우 입을 피해가 크기 때문이다. 이는 할리우드에도 아이디어 고갈현상이 심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들어 할리우드의 대형 제작사들이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성공한 작품을 미국판으로 리메이크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한국인 2세인 로이리씨가 주선한 일본 영화 ‘링’의 리메이크 작품인 ‘더링’이 흥행에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최근 미국 미라맥스 영화사가 ‘조폭마누라’의 리메이크 권리를 100만달러에 사들였고 워너브러더스도 ‘시월애’ 리메이크 권리를 매입, 조만간 미국판 제작에 돌입할 예정이다.

 특히 디지털기술은 이미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화두로 등장했다. 디지털기술이 영화·방송프로그램·애니메이션·게임·음악 등 모든 엔터테인먼트 상품의 제작과 배급에 일대 변혁을 몰고 온 것이다. 3D기술을 활용한 특수효과는 영화나 게임·방송프로그램 등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미국에서 개봉된 블록버스터급 영화 20편 가운데 19편이 디지털기술을 활용해 촬영했을 정도다.

 또 초고속 인터넷과 모바일 매체도 새로운 유통채널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도 중요한 변화 가운데 하나다.

 이와 관련, 워너브러더스를 비롯한 메이저 스튜디오와 계약, 인터넷 영화 서비스를 하고 있는 시네마나우(CinemaNow)의 브루스 데이비드 아이젠 부사장은 “아직 미국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20% 정도에 불과, 인터넷 기반이 작지만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월 150만명의 유저가 이용하고 있어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한국 애니메이션산업 변해야 산다

 “한국의 애니메이션 제작기술이 세계적이라는 것은 잘못된 이해에서 나온 말입니다. 미국 애니메이션 업체들이 한국 애니메이션을 보는 시각은 단순히 ‘부지런하고 스케줄 개념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에 불과합니다.”

 미국 LA에서 만난 신경섭씨는 상당히 충격적인 얘기를 들려준다. 미국이 생각하는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은 단순 제작 부분에 대한 하청을 주기에 적합할 뿐이며 원화나 기획 등 핵심 부분에 대해서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신경섭씨의 얘기는 그가 한국 애니메이션계의 원로인 고 신동우 화백의 조카이자 지난 60년대 말 국산 애니메이션인 ‘홍길동’과 ‘호피와 차돌바위’를 제작한 신동헌씨의 아들이라는 배경을 떠나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한 한국 유학생 1호라는 데 우리에게 많은 점을 되새기게 한다.

 신 감독은 워너브러더스(WB)사를 거쳐 현재는 미국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필름로만(Film Roman)에서 조감독을 맡고 있다.

 다음은 신 감독이 지난 10년 가까이 미국 애니메이션 업계에 몸담아오면서 느낀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문제점과 과제다.

 ◇질적 업그레이드=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은 지난 30년 동안 단순히 인력을 투입해 진행하는 OEM 제작에 안주, 질적 변화가 거의 없었다. 특히 완벽한 동작을 구현하기 위한 노력과 투자가 너무 부족해 틀에 박힌 듯한 동작만을 반복하거나 등장인물의 표정변화도 많지 않아 딱딱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한국 애니메이션 업체들의 경우 당장 활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손으로 그리는 재주를 강조하는 경향이 짙어 능력있는 아티스트를 양성하기 위한 환경도 제대로 조성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미국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동작과 표정이 주는 느낌을 매우 중시한다. 때문에 한 동작을 그려내는데 있어서도 해당 캐릭터의 성향과 상황에 맞는 느낌을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몇번이고 동작을 시켜보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더구나 초기에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마치 조각품을 만들 듯이 3차원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캐릭터를 바라보는 각도 변화는 행동에 구애됨없이 항상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동작을 연출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인력 양성을 위한 과정에도 라이트닝과 음악이 필수과목으로 들어있는 등 영상 아티스트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손 재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는 점은 한국 애니메이션 업체들이 미국과의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개발의 핵심은 스토리=미국은 모든 엔터테인먼트 작품과 마찬가지로 애니메이션 분야에서도 ‘스토리’를 개발의 핵심으로 여기고 있다. 특히 시나리오도 비즈니스 차원에서 만들어 나가는 등 개발과정의 일부로 인식한다.

 그러나 한국 작품은 대부분 시나리오가 작가의 글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텍스트 위주의 틀에 박힌 대사를 많이 써 거슬리는 경우가 많다. 한국도 앞으로는 시나리오를 만들 때 글로 쓰기보다는 녹음기에 대사를 녹음하는 습관을 들여 살아있는 대사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제작방식 개선=애니메이션 산업을 효자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프로덕션 제작방법부터 아티스트에 의존하지 않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한국의 경우 기획 및 제작단계를 주도해온 특정 아티스트가 빠지면 제작 자체에 상당한 타격을 받는다.

 미국 업체들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일단 원화만 그려지면 그 이후의 과정에서는 어떤 사람이 작업을 해도 균일한 질이 유지된다.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이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작품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산업의 틀과 메커니즘을 다시 짜야 한다.

 그러나 3D 부문에서는 한국 업체들도 높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IT기술이 발전한 덕택에 2D에 비해 미국 등 선진국과의 격차가 작다. 특히 모션캡처 기술을 활용해 동작을 매끄럽게 해줄 수 있어 이같은 3D 기술을 적극 활용한다면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도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로스앤젤레스=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