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IT과제](9)현실과 동떨어진 법률의 정비

 기존의 법·제도가 급변하는 디지털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은 이제 식상하기까지 하다. 규제와 간섭을 기본으로 하는 법의 생리, 정책의 입안은 다소 느리더라도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는 정부의 입장 등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최근들어 일선업계의 IT환경과 현행 법·제도 사이의 간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크게 벌어지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렇게 규제개혁했다’는 투의 홍보성 구호에 그치는 개선책, 그나마 졸속으로 ‘개악’되는 개정안. 모두 새정부가 짊어지고 풀어야 할 짐이자 과제다.

 ◇법·제도의 그늘=골드로드21은 수년에 걸쳐 인터넷 웹기반의 통관 EDI 솔루션을 개발해 놓고도 본격적인 서비스를 못하고 있다. 현행법상 무역자동화사업은 납입자본금이 50억원 이상인 업체만 사업자로 지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금용 골드로드21 사장은 “12년 전에 폐쇄적 VAN환경을 기반으로 해 제정된 ‘무역자동화촉진에관한법률’에 의거한 지정사업자 제도는 문제가 있다”며 “현재와 같은 WEB기반 환경에서는 무역자동화사업을 하는데 대규모 전산장비나 자본금이 필요없다”고 강조한다. 문희철 충남대 교수는 “현행 무역자동화법 제5조 1항의 ‘지정사업자 제도’는 무역업체들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무역자동화기술의 선진화마저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입법예고 상태에 있는 ‘전자금융거래법’ 역시 전자화폐 관련업계의 성토가 높다. 신설 법은 모든 거래에 대한 자료의 보존을 의무화하고 있다. 소액결제 위주인 관련업계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조치다. 선수금에 대한 지나친 요건강화도 태동단계인 전자화폐 업계에 버거운 조항 중 하나다. 결국 관련 법이 없을 때는 시장환경에 따라 자유롭게 성장해온 전자화폐 산업이, 오히려 전자금융거래법 제정으로 존립기반마저 흔들리게 된 셈이다.

 지난 2001년 4월 개정된 대외무역법은 시행된 지 1년도 못돼 재개정 논의가 이뤄진 대표적 졸속개정 사례. 특히 전자무역중개기관 지정과 관련된 조항은 모호하게 명문화된 요건과 역할 탓에 결국 사문화된 상태다. 산업자원부는 이의 대안으로 올해 무역 e마켓플레이스 업체를 대상으로 ‘e무역상사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 역시 법적 근거가 없어 제대로 된 시행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게 관련 업계의 우려다.

 이밖에 지난해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리니지 파동’은 아직까지도 국내 게임업계에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청소년보호법 부칙 제4조 ‘불량만화’에 관한 부분 역시 만화를 청소년 유해오락물로 취급하면서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 자체를 크게 퇴보시키는 원흉이 됐다. 이는 현재 일본만화가 국내에 범람하게 된 근원적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특별법 제정, 대안될 수 있나=IT관련 산업은 여러 요소간 문제가 다면화돼 복합적으로 표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기존 법·제도 체계로는 빠르게 변하면서 동시에 멀티적인 측면이 강한 IT분야를 감당할 수 없다는 한계의식이 정부부처나 관련기관 사이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핵심 논의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특별법’을 통한 이른바 ‘대통합적 조율’이다.

 현명관 민간전자무역추진위원장은 “전자무역의 경우 수출입 단계별로 수많은 관련 법과 해당 부처가 얽혀있어 현행 대외무역법이나 무역자동화법으로는 이들에 대한 정교한 교통정리를 기대하기 힘들다”며 전자무역육성특별법령(가칭)의 제정을 촉구했다.

 산자부도 지난 연말 각 부처 지원체계의 통합을 골자로 한 ‘산업정보화특별법’(가칭) 제정을 주장하고 나섰다. 비IT산업에 대한 정보화 지원이 현재 산자부, 중기청, 정통부 등으로 분산돼 있어 추진력이 약하다는 게 산자부의 판단이다. 특히 산자부는 정보화촉진기금 중 산업정보화 부문을 신설, 매년 1000억원씩 10년간 1조원의 관련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특별법의 제정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특별법의 남발을 경계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입법기관의 한 관계자는 “특별법이 갖는 태생적 매력에는 동감하나 남발될 경우 기존 법체계의 붕괴가 우려된다”며 “새정부의 법·제도 정비사업 역시 비교적 손쉬운 특별법 제정보다는 힘들지만 해당부처간 토론과 합의를 거쳐 이해 당사자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업을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경동기자 ninano@etnews.co.kr>

   

 ▲도움말 주신 분=문희철 충남대 교수, 안병수 서울디지털대학 교수, 현명관 전자무역추진위원장, 이창우 글로벌커머스협회장, 김준동 산자부 전자상거래지원과장, 권태경 EC21 사장, 백외문 몬덱스 차장, 한학희 KTNET 기획마케팅팀장, 장금용 골드로드21 사장